[강상헌 칼럼] ‘문장격차’ 또는 ‘텍스트 디바이드’가 오고 있다.

강상헌 <본지 논설주간>

2010-06-24     평택시민신문
▲ 강상헌<논설주간>

자신의 일과 경험, 생각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글은 ‘글로 밥을 버는 사람’이나 글재주 있는 사람이 만드는 ‘특별한 제품’이었다. 문학가나 학자 등 전문가들의 전유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지고 있어 이제는 글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인터넷 시대가 처음 열릴 때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인터넷 격차’ 등의 말이 유행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인터넷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물취급을 받기 십상이고, 결과적으로 직무는 물론 돈벌이에까지도 지장이 온다는 말이었다. 이는 인터넷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물결에 대한 일반의 여러 정서가 함축된 일종의 용어였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디바이드’라는 말이 떠돈다. 아이폰 열풍이 불러온 말이다. 컴퓨터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 스마트폰의 여러 편리하고 신기한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하는 사람 간의 격차가 ‘디지털 디바이드’와도 같은 파고를 부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스마트폰의 유행은 대세다. 그런데 이 대세와 함께 세상을 휘감고 있는 또 하나의 ‘물결’이 있다. ‘트위터’라는 서비스다. 스마트폰이 있어서 더 화끈하게 디지털 세상을 달구고 있는 이 미국산 서비스는 ‘내 생각’을 담은 140자 이내의 글을,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전파하는 희한한 힘을 가졌다.

토종 포털 사이트들도 비슷한 역할의 ‘미투데이’니 ‘요즘’이니 하는 서비스를 서둘러 출범시켜 대세에의 편승을 시도한다. 이런 것을 요즘 말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고 한다.
이것 못하면 한다하는 사람들 틈에 낄 수 없다고들 한다. 어린 친구들은 말할 것 없고, 상당수 장년 노년층까지도 이 ‘물결’에 휩쓸린다. 재벌 총수 누구도 한다던가?

의사소통도구로 많이 이용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기껏해야 50자 정도 분량인데 비해 SNS는 그 3배 정도인 140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 문자메시지로는 이모티콘이나 암호 따위를 섞어 대충 의사표시를 할 수 있었는데, 트위터 미투데이 요즘 등은 ‘다르더라’는 얘기가 많이 나돈다.

친구 같은 가까운 사이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대상까지도 생각하며 짓는 글이기 때문에 보다 격식있고, 완성도 높은 문장이 필요한 것 같다는 얘기다. 짧아도 제대로 된 글이라야 인기도 얻을 수 있고, 바라는 바 목적도 달성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유행이 뜻밖에도 ‘글’의 필요성을 새롭게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나 화제가 나오는 이유는 ‘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가 대부분인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숙제를 내주면 초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거의 모두가 인터넷에서 비슷한 주제의 글을 찾아 ‘편집하고’ 자기 이름을 써서 내는 ‘따붙이기 기법’으로 해결한다. 대학에서는 더 심하다. 이제 지도하는 이들마저 그러려니 한다.

손수 글을 쓰는 학생을 보기 어렵게 됐다. 리포트는 청산유수인 학생이 작성한 시험답안을 보면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컴퓨터 없이는 자기를 소개하는 글 하나도 못 짓는 경우가 많다. 한자와 한자어의 오용과 남용도 심각하다. 그냥 쉬쉬하며 지나갈 일은 아닌데 워낙 고질이 되어 치료할 엄두조차 못 낸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당연한 기능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대단한 사람’이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바로 이런 생각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별 것 아닌 정보나 생각도 글재주만으로 잘 버무리고 마케팅만 잘하면 일시적으로나마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이다. 

글을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실은 하늘보고 삿대질하기나 제 얼굴에 침 뱉기 같은 부끄러운 고백이다. 그러나 이 현실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 후배 세대를 이런 나락에서 건져낼 방안은 무엇일까. 이런 상황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사이렌을 울리는 역할이나마 누군가는 해야 한다.

또 하나, 글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과도하게) 누리고 있는 혜택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필요가 있다. 글 쓰는 능력은 (어느 정도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단지 원석(原石)을 다듬지 않았거나, 자신 안의 귀중한 광맥(鑛脈)을 스스로 포기한 결과가 ‘실질적 문맹 상태’를 초래한 것임을 새롭게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문장격차(文章隔差)’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텍스트 디바이드(text divide)’ 쯤 되겠다. 세상 보는 안목 가진 이라면 이 문장격차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다. ‘문장 특권층’이 있다는 얘기다.  
‘문장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진다. 그 격차의 본질을 아는 것이 당신과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경쟁력을 확인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왜 내가 실패했을까?’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여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은 누구나 써야[作文]하고, 다 쓰는[使用] 우리 모두의 연장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이제 새롭게 텍스트(글)를 요구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가 웬만한 언론기구의 ‘파워’를 능가하는 상황도 빚어지는 시대이다. ‘저작권’의 존재가 글을 비롯한 다른 사람이 지은 모든 콘텐츠를 베끼는 것을 또한 막아서고 있다.
이제 당신도 서둘러 ‘당신의 문장(文章)’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