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 읽어 주기

‘한책 하나되는 평택’ 릴레이기고

2010-06-17     평택시민신문
▲ 곽노숙<동화 읽는 어른모임 회원>

언제부터인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담벼락을 타고 피어난 넝쿨 장미꽃과 향기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두며 그들에게 잠시 동안의 여유로움과 기쁨을 준다. 나 역시 활짝 피어난 장미꽃의 모습을 통해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버려 이름까지도 희미해진 친구와 초등학교 6학년 때 모르는 이의 집 울타리에 핀 장미를 가슴 두근거리며 한 아름씩 꺾곤 했었다.

그 꽃을 기쁘게 받으시던 선생님을 뵈며 행복해 하던 어릴 때의 추억이 생각나곤 한다. 남의 집에 예쁘게 핀 꽃을 몰래 꺾어오던 일은 집 주인에게 들키며 5~6번으로 끝을 맺게 됐지만 어린아이가 남의 집 울타리에 핀 꽃을 열심히 꺾어야 했던 이유를 굳이 이야기 한다면 내 어린시절 선생님의 책 읽어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책이 많지 않던 시절, 좋아하는 책을 읽어 오시고는 늘 책속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고 새롭게 각색해서 들려주시던 그 고마움의 표시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이후 선생님의 책 읽어 주시던 모습은 나에게 책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꿈, 희망들을 갖게 해 주었다.

어린 시절 선생님께서 해주신 책 이야기들은 질풍노도와 같은 나의 사춘기를 온통 책속에 파묻혀 지내게 했다. 학교에서의 공부보다 책 읽기를 더 열심히 하며 만났던 수많은 책속의 주인공들과 그때의 그 가슴 벅차 오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내가 아이를 키우며 책 읽어 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집에서 그냥 내 아이에게만 읽어 주던 일을 학교에서 지역아동센터에서도 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며칠 전 한 지역센터에서 책을 읽어 주는 날이었다. 한 이이가 센터를 오는데 그만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단다. 나는 센터에 미리 도착해서 책 읽어 주기를 시작한 상태이고 그 아이는 평소 자기가 다니던 길이 아님을 직감하고는 전화로 어떻게 해야 그 곳으로 갈 수 있느냐 물어 물어서라도 오겠노라고, 그리고 수중에는 버스비도 없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목적지까지 오라고 했더니 그냥 뛰어서 오겠단다.

먼저 온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다가 전화로 오는 길 알려 주다를 반복 하다 보니 나중에는 책 읽어 주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발 무사히 잘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상태였다. 어른들이 걷기에도 꽤 먼 거리를 그것도 아주 낮선 그 길을 그 아이는 온몸이 땀범벅이 되도록 뛰어 한 시간 만에 나타났다. 그러면서 하는 말 “제가요 오늘따라 슬리퍼를 신고 나왔지 뭐예요. 글쎄. 뛰는데 자꾸 벗겨지고 불편하잖아요. 그래서 양손에 슬리퍼를 들고 얼마나 열심히 뛰어 왔나 몰라요. 책 읽어 주는 게 끝날까봐서요”하며 씩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표현하기 어려운 전율과 대견함과 책을 향한 아이의 열정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 아이 역시 책에 대한 즐거움과 기쁨을 알기에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낯설고 두려운 그 길을 이겨내고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이에게는 책이 그냥 단순한 종이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책 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찾는 사람에게는 위의 아이처럼 자기의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던 시간이었다. 먼 훗날 책읽기의 즐거움을 그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을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난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