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의 42년 서예 사랑

독곡동에서 제자 기르는 창봉 김경식씨

2010-06-03     강경숙 기자

초등교 선생님께 첫 사사
40년 넘게 인연 이어져
마음과 자세가 바르면
모든 학문 성취할 수 있어

한 여성작가의 서예사랑이 뜨겁다. 12살 때부터 42년 동안 꾸준히. 서예의 도인이 있다면 실력은 그 수준과 맞먹을 듯싶고 배출해 낸 문하생들의 작품도 서예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나의 일을 몇 년 동안 하기도 쉽지 않은데 42년 동안 이어지는 서예사랑이랴! 수준은 도인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창봉 김경식 서예작가(54)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여성작가다. 웬 여성 이름이 ‘김경식?’. 사연이 있다. 김 작가까지 네 명의 딸을 둔 진위면의 한 김 씨 일가는 아들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딸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었다. 그 뒤로 김 작가에게는 두 명의 남동생이 생겼다. 딸의 이름을 남자 이름으로 지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을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아무튼 그랬다.

김 작가는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서예계에서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전초대작가이면서 (사)한국서예협회 초대작가다. 유명한 작가가 되기까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노력도 있겠지만 초등학교 담임인 효당 김훈곤(70) 작가의 지도가 먼저다. 효당은 4, 5대 대한민국서예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고문 자리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42년 전부터 지금까지 효당의 지도를 받고 있다는 인연에 상당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효당의 제자 발견 시각은 틀리지 않았다. 서예에 남다른 어린 제자, 효당은 중고등학교가 끝나면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교로 달려오는 제자를 반가이 맞았다. 지도시간의 그 반가운 만남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정받는 작가가 된 이후에도 창봉이 한 달에 두 번 씩 효당에게 아직도 작품 지도를 받는다. 참 보기 드문 인연이고 부러움을 살 정도로 창봉 인생의 가장 큰 복이다.

“바른 마음, 바른 자세, 바른 글씨, 바르게 지도하면 모든 학문을 성취될 수 있다”고 가르친 효당이었다. 그 교육을 그대로 이제는 창봉이 제자들에게 전한다. 몇 평 되지도 않는 독곡동 라이프 아파트 상가 건물 학원에서.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세계적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실력을 쌓고 그런 문하생들이 배출됐나?’ 할 정도로 허름하면서도 볼품없어 보이는 작은 공간이다. 하지만 빼곡히 들어차 있는 서책이며 반듯이 놓여 있는 서예물품들 속에서 효당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창봉의 기본이 보인다. 자식같이 가르친 지도, 글씨뿐만이 아니라 분위기까지 그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어떤 마음이면 이렇게 오랜 기간 서예를 사랑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글씨 쓰는 것이 좋아서 서예를 시작했습니다. 좋아서 쓰다 보니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쓰다 보니 무아경에 이르더라구요. 오체를 제대로 배우고 익힌 덕에 창작글씨가 나도 모르게 나옵니다. 마치 구름 탄 기분이 들고 강약조화가 이루어지는 속에서 작품이 탄생됩니다.”        

여덟 살의 가장 어린 아이에서부터 여든 살의 가장 많은 나이의 제자들 30여명을 가르친다. 제자들의 급수 시험이 있을 때는 토요일, 일요일이 없다. ‘그런 속에서 국내외적인 작품 활동은 언제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네 시간을 자는 창봉은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목욕재계. 먼저 몸이 정갈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 다음으로 불경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쓴다. 마음의 정리를 시키는 과정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준비가 되면 4시부터 7시까지 작품 작업에 임한다. 매일. 굳이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준비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은 먹칠에 불과하다는 마음 때문이다. 오래 쓰면 쓸수록 글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끼고 글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아 행복하다는 창봉이다.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혼신해서 자신의 몸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서 거치는 과정이다.

실력이 다른 제자들을 지도하는 방법은 다 제각각이다. 먼저 제자의 성향이나 성격이 어떤지를 파악한다. 기초를 가르치다 보면 ‘선’, ‘획’ 등에서 성격이나 성향이 어떤지가 파악된다. 그러면 그에 맞춰 맞는 방법으로 서예를 지도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동아예술대전에서만 3명의 제자가 우수한 성적으로 휩쓸었다. 27세의 나이에 여러 협회에서 출품작가로 인정받는 소성 서유리씨가 특선을 받았다. 서유리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창봉에게서 서예를 배운 제자다. 지금은 안양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창암 최영삼씨와 백야 차현성씨가 특선을 받았다. 대한민국 시서화전에서는 자운 송점희씨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자운은 80세의 나이로 제자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다. 12년 동안 창봉에게서 배웠다. 작은 학원에서 전국적인 작가들이 배출, 지역의 서예수준을 높이고 있다. 

“서예는 마음이 다스려지면서 모두를 포용하게 됩니다. 정통 우리문화 속에서 전해지는 정신과 향기는 붓을 잡으면서 다스려집니다. 바쁘고 힘든 삶이어도 현대인들이 한두 자라도 잡고 살면 생활과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자신합니다. 마음의 여유 속에서 자신과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석가탄신일이 지난 일주일, 음력 4월15일은 하안거결재의 날이다. 이날부터 불가에서는 100일 동안 수양에 들어간다. 고기와 생선을 금하고 파, 마늘을 포함한 오체를 삼간다. 자기를 비우고 부처님처럼 임해보는 수련이다. 창봉이 하안거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서예를 하면서 수련해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봤는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물었다. 창봉은 붓을 잡고 사회에 더불어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자신이 죄를 지을 때도 더러 있다면서 불경을 사경하다보니 거짓말, 망언, 사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스님처럼 해보려 한단다.
자신과의 싸움에 수련의 수련이 거듭되는 삶으로 다가왔다. 정하면서도 ‘정’이 넘치는 스승이요, 마음의 정함을 더욱 다져가려는 한 여성작가의 삶이 상당히 강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