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호 물은 잔잔하게 움직이는데
사람들은 왜 빨리 왔다 빨리 가나

김혜경 기자, 자가용 놔두고 버스로 평택호 다녀오다

2010-03-25     김혜경 기자

안내소에서 예술관까지 넉넉잡아 40분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수변 데크를 따라  천천히 걷다보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날아간다
버스 오려면 3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아까 보던 책을 다시 폈다

요즘 사람들 다리에 모터를 달았는지 허둥지둥 바쁘게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딜 가더라도 ‘빨리 갔다 와야지’하는 생각으로 차를 몰고 쌩~하니 갔다 온다. 가족과 함께 소풍을 가더라도 말이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 느끼는 설렘은 어디로 갔는지…. 느낌이 흔적조차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 갑자기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평택호관광지를 가보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궁금했다.
워낙 먼 곳이라 시청에서 평택호로 가는 버스시간표를 모두 알아봤다. 의외로 1시간에 1대씩 시간만 얼추 맞으면 손쉽게 갈 수 있을 법도 하다. 평택역에서 평택호관광지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딱 한 대 있었다. 죽백동에서 12시50분에 출발하는 95번(현 55번) 버스를 기다리며 괜한 짓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많았다. 약 20분을 기다리고 신한고등학교 앞에서 버스를 올라탔다.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 좌석을 메우고 있다.


맨 뒤에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으니 노곤노곤 잠이 온다. 버스를 이용해서 가는 평택호는 처음이라 두 눈을 부릅뜨고 정류장 하나하나를 다 살핀다. 동고2리를 지나면서 시내에선 다 녹은 눈을 봤다. 40분이 훌쩍 지나 오성면사무소를 지나 안중터미널에 도착했다. 안중시장도 꼬불꼬불 지나간다. 방앗간을 지날 땐 구수~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현덕면사무소를 지나고 평택호가 가까워 오면서 내릴 손님들도 다 내려 남아있는 사람이라곤 나와 어떤 할머니뿐이다.
출발한지 1시간이 지나고 2시10분 쯤 평택호관광지에 도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관광안내소로 내려오는 길이 어딘지 몰라 헤매다 도로를 따라 내려왔다. 탁 트인 호수의 전경이 보인다. 저쪽에 보이는 곳은 아산인가? 눈이 아직 녹지도 않았다. 평택호관광지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호수와 잘 어울리는 파란색으로 벽면을 채웠다. 2층에 올라가니 버스를 탄 피로를 녹일 수 있는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다.


가져온 책이 빛을 발할 순간이 왔다. 휴식도 취할 겸 책도 읽을 겸 좋은 자리를 잡아 햇살을 받으며 책 삼매경에 빠져버렸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아직은 차갑지만 바람도 맞아보고 싶어 문화관광해설사님과 짧은 얘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출발하고 2시간이 지났다.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시간이 참 빨리도 간다.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수변데크를 따라 한걸음씩 천천히 걷다보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도 날아간다. 복잡했던 생각들도 하나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을 발견했다면 자전거로 천천히 바람을 맞았을 텐데. 아쉽기도 하고 천천히 걸음을 걸으니 등에 땀도 나고 즐겁기도 하다.
관광안내소에서 예술관까지 넉넉잡아 40분. 가는 길엔 호수의 바람을 느끼고 예술관에 갔을 땐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들이 나를 아쉽게 한다. 하나라도 예쁘게 피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흔한 개나리 하나도 없다. ‘조금 있으면 필거야’라는 생각으로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다. 전시회장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오늘따라 운치 있다. 폴짝대며 나무계단을 밟아가니 대추리에서 온 파랑새 등 조형물들이 빽빽하다.


1층 전시실에선 수채화 전시를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온 부부가 그림에 대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그 얘기가 궁금해 잠시 옆으로 가서 그림 보는 척 얘기를 들었다.(무슨 얘기인지는 비밀이다) 시간을 보니 벌써 4시가 다가온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시간도 꽤 걸린다. 조그만 마을도 보이고 하얀 진돗개가 자꾸 나를 따라온다. 왕왕 짖어대는데 무서워서 발걸음을 빨리했다. 지금 가면 버스가 있을까? 이번엔 인도를 찾아보려고 한참을 돌아다녔다. 샛길이 보였는데 인도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더니 와~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왔지만 한 가지 빼먹었다. 가는 시간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어떤 할아버지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오려면 3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아까 보던 책을 다시 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반가운 버스가 오고 있다.


평택호에서 평택까지 바로 가는 버스시간은 5시45분이라 4시50분에 안중으로 가는 81-1번 버스를 선택했다. 오는 버스에서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느림은 모든 나이와 계절을 아주 천천히, 경건하게, 주의 깊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 하루 천천히 지낼 수 있다면 뭐든 좋다.
천천히 지내기로 했으면 큰맘 먹고 평택호관광지에 버스를 이용해 반나절의 소풍을 떠나자. 가족과도 좋고, 연인과도 좋다. 혼자 떠난다면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기엔 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