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기적
한 도시 한 책 읽기 릴레이 기고-49
박정애 안중도서관 독서치료 강사
요즘 서점에 가서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살펴보면, 자꾸 눈에 들어오는 책들은 너무 처절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아니면 잘 죽는 이야기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웰빙(well-bing)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웰다잉(well-dying)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삶과 죽음의 현상을 숙명으로 보았던 과거의 인식에서 이제는 삶과 죽음의 질을 고민할 만큼 우리의 삶과 죽음의 욕구는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의 기사를 보면 ‘누군가의 죽음’이 실리지 않는 날이 거의 없고, 그것도 때가 되어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소식보다는 잘 못 죽은 사람들의 기사가 대부분이니 어느새 나의 의식에도 삶과 죽음의 문제가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IT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게임이 하나의 놀이가 된 시대에, 이제는 아이들이 즐겨하는 게임에서는 살고 죽는 일이 누워서 떡 먹는 것만큼이나 쉬워졌다.
여러 매체의 기사들을 보면 잘 살려고 애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위험한 착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장영희 교수의 죽음을 전해 들었다. 작가 장영희에 대해서는 책에 소개된 짧은 글 정도의 정보만을 알고 있을 뿐 잘 알지도 못하는데, 라디오에서 그녀의 죽음을 듣는 순간에는 갑자기 쇼크 상태처럼 멍한 느낌이었다.
작가와의 인연은 당연히 전혀 없었고, 작가가 쓴 책과의 인연이라면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은 것, 그리고 조금 더 특별한 인연이라면 <내 생애 단 한 번>이란 에세이집을 참 오랜 시간에 걸쳐, 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읽고 나누었던 추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지금도 가끔씩 <내 생애 단 한 번>은 나의 애독서(?)가 되고 있다.
라디오를 들은 직후, 서둘러 서점에 들렀고 작가의 유작이 되어버린 에세이 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샀다. 책 속에서 만난 그녀의 글은 참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누군가의 이야기,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삶의 메시지를 전하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 작가의 삶에 작은 희망의 씨앗이 된 이야기, 온통 어떤 이유로든 삶을 살아야 하는 희망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하고 있었다.
그것도 거창하게 세기의 획을 그은 이야기 같은 대단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참 별 것에서 희망을 다 느끼고 삶의 에너지를 취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로, 사소할 수 있는 일상에서 찾아낸 삶의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이전의 책도 그러했지만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는 이전의 책보다 더 희망을 많이 담아놓고 있다. 현재에도 불치의 병이라 불리는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그녀는 삶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놓지 않았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을 진정 ‘죽음’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살게 하는 희망의 빛줄기. 작가 장영희는 자신이 낸 책과 더불어 ‘인간 장영희’로 살아온 삶을 우리가 읽어야 할 하나의 희망의 이야기로 내어주었다. 그녀 역시 그 희망의 빛줄기를 통해 죽는 순간까지 삶의 밝은 부분을 볼 수 있었고, 이 책을 생산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책 제목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기적이 앞으로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기적이란 노력과 확률에 관계없이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이란 기적이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