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할 말 잃은 뜸의 효능

김남수의 침뜸이야기(25)

2009-04-15     평택시민신문

94세 침구사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강좌를 연재합니다.
1915년 전남 광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중국 북경 침구골상학원 객좌교수, 녹색대학 자연의학과 석좌교수, 대한침구사협회 입법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남수침술원 원장, 뜸사랑 회장, 정통침뜸연구소 소장, 효행봉사단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 코너가 독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유용한 지침서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구당 김남수 선생
뜸은 결국 몸에 작은 화상을 입히는 것. 화상으로 인한 화상독에 의해서 인체에는 약효가 있는 물질이 만들어지고 흡수된다는 것을 헤아리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그 동안 뜸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집에서 뜸을 뜨기 시작하고 보름 뒤에, 할아버지는 종합병원에서 손녀의 혈액검사를 하고 나에게 보고를 하듯 들렀다.
“글쎄, 애를 데리고 혈액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들이 뜸자리를 발견하곤 펄쩍 뛰지 뭡니까? 피가 나기 시작하면 멈추질 않는 환자에게 어떻게 상처를 낼 수 있느냐면서 막 야단을 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나도 알만큼 아는 의사라고. 그랬더니 그 친구 머쓱해서는 입을 다물더라고요.”

할아버지의 증언은 계속 이어졌다.
“또, 혈액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아세요?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하고 말을 못해요. 그래서 제가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았더니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모두 지난 번 검사 때보다 증가한 겁니다. 아니, 그렇게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그 의사는 꿀 먹은 벙어리인양 입을 다물고 있더군요. 현대의학에서 재생불량성 빈혈은 난치병으로 취급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겠지만요.”

할아버지는 이미 뜸을 믿고 있었지만 혈액검사 결과를 보는 순간, 뜸의 위력에 다시 한 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뒤로 6개월 만에 할아버지는 뜸으로 손녀를 고쳐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수혈해야만 겨우 생명을 유지할 정도로 악화된 손녀를 살려낸 것이다. 혈액검사 결과가 정상인과 다름없이 나온 날, 할아버지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를 데리고 나에게 인사차 들렀다. 그 손녀의 부모는 기쁘고 고맙다는 인사말 끝에 내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이 애가 커서 시집갈 때 꼭 주례를 서 주세요.”
나는 기쁜 마음에 기꺼이 응낙을 했다.
그러나 그 다음 해에 손녀가 교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할아버지가 소식을 전해준 뒤 소식이 끊겼다. 손녀가 커서 시집을 가고도 남았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아무 소식이 없다.

김남수  뜸사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