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되고 용기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백건영의 영화읽기] ‘촛불’이 타오르는 밤 를 보며
이런 와중에 최근 소리 소문 없이 서울의 단 2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영화가 있다. 신랄한 입담을 과시하며 교도소 내 방송 DJ로 활약하다 가석방 된 이후 라디오 방송국 DJ로 흑인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쳐 라디오 대통령으로까지 불린 실제 인물 랄프 왈도 피티 그린 주니어 Ralph Waldo Petey Greene Jr.(1931-1984)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톡 투 미 Talk To Me>이다.
1966년 버지니아 주 로튼 교도소에서 시작되어 방송국 DJ로 성공하고 연예계로 진출하는 과정 동안 방송인으로서의 피티 그린의 행적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되는 영화에서, 우격다짐 좌충우돌의 무모함과 배짱하나만으로 방송국 DJ자리를 얻게 된 피티 그린은 입버릇처럼 “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진실을 말할 것이다” “Wake Up!”이라는 말을 던진다.
방송국에 전화를 건 청취자에게 건네던 피티 그린의 말에서 가져온 영화 제목 ‘톡 투 미’에는 단순히 당신의 말을 듣겠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이 있다. 즉, 전과자일 따름인 나도 이렇게 할 말을 하는데, 당신들은 왜 말 못하느냐는 것, 피부 검은 백인이 되려 하지 말고 일어나! 흑인의 현실을 똑바로 보라는 것이다. 이처럼 피티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은 흑인사회의 영향력을 고려해 감히 거론치 못하던 모타운 레코드 사장을 비판하거나 흑인의 현실을 외면하는 방송국의 구태를 신랄하게 고발함으로써 흑인사회의 폭넓은 지지층을 얻는 동력이 된다.
이 영화를 보기 이전에는 피티 그린에 대한 정보도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아련한 라디오시대의 추억을 불러일으켜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에 걸맞게 제임스 브라운의 블루스 앤 소울이 넘실대고 수다스럽기 짝이 없는 피티 그린과 그의 애인 버넬의 행동거지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터질 정도이니 그 점에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이 영화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까닭은 단지 추억을 회고하거나 노스탤지어를 상품화 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과 절묘하게 조응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까 피티 그린이 방송국 DJ가 되어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1968년 4월 4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이 벌어진 날 밤. 지도자를 잃은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당시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던 그는 “목사님은 거인이셨습니다. 만약 그런 분을 죽일 수 있다면 여러분도 서슴치 않고 죽일 수 있다는 걸 아셔야”한다며 또 “사람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그가 편안하고 편리한 순간에 있을 때가 아니라 도전과 논쟁의 순간에 서 있을 때 내려진다.”던 킹 목사의 명언을 인용하면서 폭력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한다.
동족에 대한 진한 애정에서 발로한 피티 그린의 진심어린 호소는 공적 위치에 올라선, 누군가를 선동하고 영향 끼칠 위치에 있는 인물이 가져야할 덕목과 자세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방송국 밖으로 나와 불타는 도시를, 그러나 다행히도 흑인이 모두 돌아가 더 큰 사태를 피하게 된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숙연하고 장엄한 그 무엇을 체험했다. 작금의 사회 상황을 보자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재협상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는 하나 숨 가쁘게 진행된 지난 며칠 동안, 한 치 양보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정부의 고집은 일부 불법시위의 당위성마저 심어주었을 정도이니 마주보고 달려오는 폭주기관차를 보는 아슬아슬함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리 될 일을 왜 좀 더 일찍 결단하지 못했을까?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마음이 있다면 이들을 설득하여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 제 아무리 깊기로 흑백 인종갈등만 할까?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킹 목사의 암살 당시임을 감안한다면, 그럼에도 방송국 DJ로 인해 폭동이 평화롭게 진정되었을 정도라면 도대체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무수한 담론과 이념에 속박되어 분열된 사회모습을 보아왔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체스추어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 땅의 계층적 질서의 골이 얼마나 깊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외에 다름 아니었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대미관계와 한미 FTA의 체결 등등 현 정부의 고민을 우리국민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받아들이기 곤란하지만 무턱대고 우리주장만 고집하며 외면하기 힘든 것이 한미관계가 아니던가.
“반미면 어떠냐?”던 노무현 정부에서조차 대미관계를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한 전력을 국민들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번 사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기보다는 정부차원에서 내기 곤란한 목소리를 국민이 대신 외쳐주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깊은 울림을 주던 영화의 한 장면, 파트너십을 이루던 듀이는 피디 그린에게 말한다. “내가 망설이는 걸 대신 말해줄 사람이 필요해. 어쩌면 너도 두려움이 앞서는 일을 하는 데 내가 필요할 거야”
진실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위정자도 국민도, 진보도 보수도 하다못해 수구꼴통도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현장소식과 ‘무차별 폭력 동영상’ 수천 개가 인터넷을 떠돌던 날, 빗속에서도 촛불이 타오르던 밤, 나는 <톡 투 미>를 보았다. 피티 그린의 목소리를 듣고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에게 피티 그린의 진실 되고 용기 있는 목소리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