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중항쟁 당시 인터넷이 있었다면…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들

2007-08-15     평택시민신문

몇 주 전에 6?10 민주항쟁 당시 지금과 같이 인터넷 이용인구가 전 인구의 70%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주제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인터넷이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라고 말이다.

1980년 5월 15일. 지금은 한나라당 의원인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 군은 구름떼같이 몰려든 학생들을 앞에 두고 서울역 앞에서 “다 집으로 돌아가자” 이랬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당시 신군부 세력들이 권력을 찬탈하려는 움직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당장 그날 인터넷에서는 ‘심재철을 탄핵하자’ 이런 글들이 올라왔을 것이다. 안티 카페도 생겼을 것이다. 당시 유행했던 영화 <라스트 콘서트> 포스터를 ‘라스트 총학생회장’ 이렇게 패러디해서 심재철 군을 비난하는 소재로 삼았을 것이다.

 라스트 콘서트? 라스트 총학생회장!
그렇게 정국은 빠르게 안정됐다. 그러나 5월 17일. 신군부는 전격적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하더니, 김영삼 씨를 집에 가둬 버리고, 김대중 씨를 내란음모 혐의라는, 지금은 완전히 날조된 거짓말로 드러난 죄목을 대서 끌고 갔다. 언론의 최종 데스크는 전 군에서 파견된 정훈감이 맡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문제였다. 신군부는 모든 게시판에는 글 쓴 사람 본인이 누군지 확인한 글 외에는 못 올라오며, 시국과 연관된 발언만 나오면 모조리 쥐도 새도 모르게 연행해 간다. ‘김대중’, ‘김영삼’ 심지어 ‘서울역’까지도 모두 금칙어로 만들어 버렸다. 검색해봐야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를 어찌 누를 수 있으랴. 5월 18일. 광주 전남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신군부가 잔혹하게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 연출됐다. 분노한 광주시민, 사무실에서, 길거리에서 디카로 촬영한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리거나, 메신저를 통해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시킨다. 놀란 신군부, 각종 메신저 서비스를 중단해버린다. 그리고 동영상과 사진 유포를 차단한다.

그리고 군 통신병을 이용해 물타기 댓글을 올린다. ‘저는 현장에 있던 광주시민입니다. 저 폭도들이 군인 막사에 불을 질렀어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인터넷은 양비론으로 젖어든다. 또 다른 통신병은 ‘이건 제가 정보기관에 계신 삼촌한테 들은 얘긴데요.

북한 간첩들이 광주로 침투해서 배후조종을 하는 거래요. 여러분 진실을 아셔야 합니다. 북괴의 소행이예요’ 이렇게 말이다. 인기 검색어도 ‘광주 간첩’, ‘북괴 소행’ 이런 것이 뜨도록 했다.
인터넷에서 공방을 벌이던 광주시민들, 이런 공방에 댓글 달 여력이 없었다. 컴퓨터를 껐다. 그리고 모두들 저마다 몽둥이를 하나씩 들었다. 그리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군인들은 더 가혹하게 시민들을 폭행하고 심지어 숨지게까지 했다.

그리고 5월 21일 오후 1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시민을 향한 총격 학살을 시작하면서 이들의 인간 사냥은 정점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밀릴 광주 시민들이 아니다. 시민들은 총기로 무장했다. 심상찮은 상황을 본 공수부대는 광주를 떠난다. 그 순간 광주의 모든 인터넷은 끊어진다. 전화도 끊긴다. 심지어 이동전화 철탑의 전원도 모두 전멸됐다. 광주에서 통신은 무전기밖에 안 됐다. 전기에 힘을 빌은 모든 통신수단은 일순간 마비됐다. 그러나 그때처럼 광주는 고립되지 않았다.

전국에 뜻있는 누리꾼이 국가 공권력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살상과 폭력을 눈감아줄 리 없다. 아마추어 햄 교신사들을 통해 광주 소식은 실시간으로 인근 국가 누리꾼들에게 전달될 것이고, 광주시내에서 촬영된 각종 동영상과 사진은 CD를 통해 인근 지역에 있는 지각이 있는 해커들에 의해 한국 정보 방어망을 뚫고 미국, 유럽 등에 전달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광주 학살을 방조했다는 의혹 역시 빠른 시간 내에 확산될 것이다.

그러면 가만히 앉아 당할 신군부일까. 그렇지 않다. 광주의 사진과 동영상이 합성 또는 위조된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광주시민들의 무장 장면을 보여주며 이들이야말로 제2의 탈레반이요, 제2의 알카에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논법대로라면 ‘악의 축, 북한 정권과 대치하는 남한의 정세는 빨리 안정돼야 한다’라는 논리로 신군부를 돕지 않을까 싶다. 이런 얘기를 왜 하느냐고? 문명의 이기를 잘도 활용하면서 시대정신만은 역류하는 전 뭐시기를 사모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영화 제목을 본 뜬 닉네임을 붙여주고 싶다. “분뇨의 역류”다.

김용민 선정 저격수 정치인 명단
저격수가 있는 정치인들은 대체로 힘이 있는 정치인이다. 이번에는 우리 정치권에서 지금 활약하는 저격수를 찾아본다.
노무현 대통령. 저격수가 많다. 당별로 있다. 한나라당에는 전여옥 의원 정도가 있다. 민주당에는 그런데 더 많다. 조순형 의원, 김경재 전 의원, 유종필 대변인 정도가 그래도 두드러졌다. 언론계에서는 조갑제 씨가 나름대로 반노 시장을 개척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진정한 저격수는 없어 보인다.

저격수는 상대방의 동선과 심리를 읽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사적인 감정만 앞서지 저격 대상자의 심리를 꿰뚫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저격수이다. 민주당 조순형, 김경재, 유종필 이 세 분은 지난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카드를 꺼냈다가 제 꾀에 자기들이 넘어간 꼴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을 잘 모르는 거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 저격수를 자처하는 이들은 많으나 저격수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이명박 후보. 아무래도 박근혜 후보쪽 인사들이 서로 저격수가 되려고 한다. 제가 선정하는 최고의 이명박 저격수는 그런데 박근혜 후보쪽에는 없다. 홍준표 의원이다. 정책적으로, 도덕성으로 온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명확하고 간결하게 아픈 구석을 찌른다. 예를 들어 이런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BBK에 투자하도록 거들었다가 주변 사람들 손해를 많이 보게 했다고 이야기하니까 ‘그럼 경제 지도자 아니네. 사기 당한 걸 보니 말이다’라는 논리를 개발해서 이명박 후보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유시민 저격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정청래 의원이다. 유시민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하려고 하지? 일전에 유시민 의원이 출마를 마치 안 할 것처럼 이야기할 때 정청래 의원이 대뜸 한 이야기가 있다. “안 하겠다고? 그럼 출마할 가능성이 99.9%야”라고 말이다. 이번에 출마한다고 하니까, 정청래 의원이 한 말이 있다. “출마한다고? 그럼 끝까지 완주하지 않을 가능성이 99.9%야”라고 말이다.

김용민(시사평론가, 본지 정치풍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