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방아> 파경(破鏡)
이 성 춘 본지객원논설위원
2001-11-26 평택시민신문
진나라가 망하고 수나라의 일등공신 양소(楊素)에게 보내진 아내를 다시 만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 수소문하던 서덕언에게 아내 대신 심부름을 나온 한 사나이가 깨진 거울을 들고 나타나 자신의 것과 맞붙여 보니, 거울은 둥글게 하나로 맞춰졌다. 서덕언은 이 깨진 거울 뒷면에 시를 한수 적었다고 한다.
거울은 사람과 더불어 함께 가더니(鏡與人俱去)
거울만 돌아오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누나(鏡歸人不歸)
다시 항아의 그림자는 없이(無復姮娥鏡)
헛되이 밝은 달빛만 멈추누나(空留明月輝)
파경이란 말은 깨진 거울이란 뜻으로, 둥글던 거울이 떨어져 금이 가서 옛날처럼 거울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할 수 없거나 부부 사이의 금술이 좋지 않아 이별하게 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우리지역의 근심이 에바다 문제이다. 문제가 수습되는 듯 하다가도 어느 틈엔가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와 갈등을 되풀이 한 것이 벌써 5년째이다. 청각장애라는 어려운 사정을 딛고 한 지붕 한 가족으로 함께 살아오던 이들이 이제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심하게 갈등을 드러내며 대립의 양상을 넘어 폭력과 고소·고발로 점철된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쪽은 공동대책위원회로 또 한쪽은 비상대책위원회로 나뉘어 서로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지역 주민 모두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에바다사태를 지켜보며 많은 상처를 받아왔지만 이제는 무덤덤해진듯 그저 지켜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차라리 지쳤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하고 그저 관망만 하는 자세다. 감독기관인 시청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야 할 정치인들은 모두 뒷짐지고 있다.
운영권을 갖고 있는 이사회의 이사 구성이 공평하게 이루어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현재 우리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최근 구재단측에서 현 이사진과 학교장을 반대하며 기물을 파손하고 시위와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불법행위가 있다면 법적으로 엄정하게 대처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내년 3월까지가 임기인 현 이사진의 활동에도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다소의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문제해결의 방향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이사회가 아무리 황금비율로 구성된다 해도 문제 해결의 키는 안된다는 시각도 있다. 진짜 문제는 그동안 해를 거듭하며 누적되어온 두 헤게모니 간의 감정대립으로 인한 치유될 수 없는 상처에 있다는 시각이다. 서로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싶어도 그동안의 행위가 너무도 괘씸하게 생각되고, 인간적인 모멸까지 느꼈다면 상대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제는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골이 너무 깊다. 끝이 도대체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은 중립적 입장에 있는 우리 시민이 나서야 한다. 시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평택시의회가 나서서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문제 해결의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의회내에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보다 객관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 줄 것을 촉구한다.
노인회관, 여성회관, 청소년회관 등 각종 복지시설이 속속 건립되고 있는데, 에바다와 같은 청각장애인 재활 및 교육시설을 새롭게 건립해서 한 지붕 두 가족 중 희망하는 한 가족이 분양을 받아 나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파경을 맞은 부부가 도저히 함께 살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면 잠정적이지만 별거(?) 기간를 통해 시간을 가지면서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다가 합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물론 당사자들의 아픔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너무 쉽게 얘기한다는 비판을 마땅히 들을만하다. 그러나 5년째 마음 졸이며 에바다사태를 지켜봐야 했던 시민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이 문제를 중재하고 해결책을 내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서로 한발씩만 양보하자. 이런 전제가 있어야 평택시의회가 중재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이 서고,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에바다문제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평택시민 모두의 바람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