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장 이수자 제7호 이규남씨

"요즘으로 말하면 '서각'이 미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전등사에 여행차 갔다가 그곳에서 본 팔만대장경에서 무어라 표현하지 못할 전율을 느끼면서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때의 그 느낌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며 36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고스란히 내 몸안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 17세의 소년은 '각자'가 하고 싶어 매일 밤낮을 고민했다. 혼자서 조각칼을 만들어 주먹구구식으로 나무에 표현을 해보았다. 이씨는 84년 지금의 스승을 만나기 전 20여년 동안 모진 독학의 길을 걸었다고 그때를 회고한다.

각자장(刻字匠).

요즈음은 서각으로 통한다. 한마디로 나무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전문가이다. 올해 53세의 기능직 공무원 7급인 이규남씨는 현재 시청사안의 민방위 재난관리과에서 근무한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이수자 제7호로 유명하다. 현재 국내의 각자장 이수자는 8명인데 그중 한 사람이다.

이규남씨의 스승은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보유자 106호인 철제 오옥진옹으로 철제선생은 청와대 상춘전과 독립기념관을 비롯한 우리나라 유명 고궁과 사찰 등에 현판을 직접 각인한 각자장이다. 83년 스승의 전시회를 우연한 기회에 관람하러 갔다가 전등사 팔만대장경을 봤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를 느꼈다.

각자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철제선생을 찾았으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당시는 여주에서 살 때, 철제선생은 이씨를 세 번 돌려보냈다. 그야말로 삼고초려 끝에 스승의 허락을 받아 84년 4월부터 제자로 입문, 지금까지 17년째 철제선생에게 각자를 배우고 있다. 지난 98년 7월에는 중요무형문화재 각자장 이수자 제7호로 지정받았다.

"각자를 하는 동안은 거의 무아지경의 세계로 몰입하게 됩니다. 나무와 칼, 망치와 내가 일치될 뿐 아무생각이 나질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작업세계는 그야말로 한 마리의 학이 나무위에서 부드럽고 기품있게 마음껏 춤을 추는 듯한 세계를 느끼게 한다.

각자에는 음각과 양각, 음양각의 세 가지 기법이 있는데 이규남씨는 어느 한 기법에 치우지지 않는다. 세가지 기법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주로 목판본, 전통민화, 전통문양 등을 많이 새기는데 그의 작품세계는 대체적으로 부드럽고 서민적이면서 서민생활에 깔려있는 강한 생명력을 끌어낸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은 많으나 부끄럽지 않을 만큼 평가 받는 작품은 300여점이란다. 이중 여주 세종국악당과 해산서원의 현판을 제작했고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불이작난', 고산 윤선도 선생의 '오우가', 독립선언당시 33인의 독립투사의 한 사람인 오세창 선생의 '와당문' 등의 손꼽는다. 가까이는 송탄문화예술회관과 평택대학교의 현판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경기문화재 연구원의 현판도 그의 작품이다. 매년 열리는 9회의 철제각연전(각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전시회)과 일본 마이니찌 신문사 전시관에서 열린 철제각연 동경전에 작품을 3회 출품, 작품활동이 풍성하기도 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 것 같으니까 지레 겁을 먹고 각자를 멀리하고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도 학습기간이 길지 않고 중도하차 합니다. 평택시에서는 그나마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하는 이규남씨는 각자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격려한다.

그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려 욕심내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더 열심히 하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은 없으며 열심히 하다보면 마음에 드는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라 작품에 임하는 자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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