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딛고 안전·효율 구현하는
장비전문 기업으로 성장
이병우 (주)이서이앤티 대표에게 2017년 1월 30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주변 식자재상가에서 화재가 발생해 그가 운영하던 업체 건물로 번졌고 결국 건물과 보관 중이던 고가의 장비들이 전소됐다. 27살 청년이 10년간 이룩해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지역사회는 한마음 한뜻으로 그의 재기를 도왔다. 따뜻한 후원과 위로가 이어졌다. 화재로 전소된 자리에 이서이앤티의 건물이 새롭게 들어섰다. 그리고 평택항 하역 현장에서 안전과 효율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장비전문기업이라는 신뢰를 얻었다.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창업을 했다.
대학 졸업 후 평생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장비·공구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산업 발전과 각종 개발로 장비와 공구의 수요는 꾸준히 발생하고, 기술 개발로 장비가 고도화될수록 전문 유지보수 서비스와 부품 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봤다. 또 기술력이 바탕이 되는 고정밀·고사양 장비 영역에서는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장비업계가 경쟁이 치열한 분야라고 들었는데.
안중에서 태어나 자랐고, 안중에서 창업하다 보니 업체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선후배배들의 도움도 컸다.
처음에는 건설회사에 장비를 납품하다 2008년부터 평택항에 하역장비 등을 제작해 공급하기 시작했다. 2단계 항만배후단지 개발을 위해 모래를 퍼내고 바다를 메우는 작업을 하는 준설선에도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항만 하역장비의 제작·공급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선박에서 화물을 나누어 하역할 때에는 다양한 장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크레인으로 한 번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배에서 내릴 때, 부두에서 이동할 때 등 하역 단계에 따라 쓰는 장비가 달라진다. 화물 종류만 해도 컨테이너 화물, 곡물·광석 같은 산적 화물, 일반 화물 등으로 나뉜다. 컨테이너를 옮길 때 크레인만 있어서는 안 된다. 크레인과 컨테이너를 연결하는 와이어·벨트 등이 필요하고 화물이 파손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는 장비가 있어야 한다. 이때 선박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형태는 어떠한지도 따져야 한다. 컨테이너는 규격화되어 있어 거기 맞춰 장비를 공급하면 된다. 반면 선적 화물이나 일반 화물은 종류와 크기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하역 방식을 설계해 필요한 장비를 맞춤으로 공급한다.
하역하기 어려운 화물은 어떤 것이 있는가.
톤백에 담긴 염화칼슘 3만톤을 하역했던 기억이 난다. 톤백 1개에 염화칼슘 1톤이 담겼으니 옮겨야 할 화물 수가 3만개였다. 이때 문제는 속도였다. 선박이 항만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아질수록 정박료, 장비 운영비, 인건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어떤 장비를 사용할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장비 가동률을 어떻게 극대화할지 등을 직원들과 논의해 설계했다.
100톤 무게의 쇠 구조물을 하역한 기억도 난다. 있다. 너무 크고 무거워서 문제였다. 이때 크레인과 연결하는 케이블이 100톤의 하중을 버텨야만 했다. 자칫 케이블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진짜 대형사고가 발생한다. 예행연습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케이블 규격을 정하고, 케이블을 몇 개나 걸어야 할지와 케이블을 당기는 차는 몇 대나 동원해야 할지 등을 하나하나 계산하고 준비했다.
이런 과정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기존 방식을 계속 개선하며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었다. 또 우리 회사뿐 아니라 거래업체가 같이 성장했고, 평택항 발전에도 작게나마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의 성장이 평택항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고 할 수 있다.
처음 평택항에 장비를 공급하던 2008년 이후 평택항의 변화와 발전을 한 해 한 해 실감하고 있다. 자동차 전용부두인 11번 선석을 건설하던 회사에 장비를 납품하면서 건설부터 개장까지의 과정을 지켜봤다. 양곡부두 등이 준공되면서 선사와 선박이 점차 증가하고 취급하는 품목도 다양해졌다. 평택항과 관련한 사업을 하는 업체가 늘면서 종사자 수도 증가했다.
준설작업으로 바다를 메워가며 진행되는 2단계 항만배후단지 개발사업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항만배후단지가 준공되면서 평택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평택항 물동량 규모는 어떠한지 듣고 싶다.
11월 이전에는 굉장히 바빴다. 10월 25일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기 전에 관세 인상을 예측한 바이어들이 먼저 주문한 물량이었다. 화물 계약이 보통 6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것에 비춰볼 때 평택항 물동량 증가가 당분간 소강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7년에 큰 시련을 겪었다고 하던데.
창업 이후 빠르게 성장하다 2017년 위기가 닥쳤다. 주변 식자재상가에서 큰불이 나 바람을 타고 우리 회사까지 번졌다. 결국 회사 건물이 전소됐고 납품해야 할 장비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 화재 피해액이 42억원이었고 화재보험 보상금을 제해도 30억원에 달했다. 그때 1년 매출이 80억원이었으니 피해가 너무 컸다.
대출을 받아 장비를 확보해 납품하고, 장비 대금을 받아 대출 이자를 내야 했다. 지금까지도 벌어서 이자 내느라 회사 경영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큰 피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지역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화재로 납품할 장비가 불타버린 걸 알면서도 항만업체들과 기업들이 거래를 끊지 않았고 2017년에 창업 이후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친구들은 십시일반 모금을 해서 도움을 줬다. 한 친구는 자기 연봉이 3000만원이면서 1000만원이라는 큰돈을 선뜻 내주었고, 20년간 모아온 회비를 털어서 가져온 친구들도 있었다. 창업했을 때 처음 거래했던 사장님은 금일봉을 들고 오셨다. 지나가다 힘내라고 음료수를 두고 가는 분도 있었고, 식당에 가니 어떻게 아셨는지 식당 주인이 밥값을 받지 않기도 했다.
시련을 겪으면서도 외롭거나 슬프지 않았다. 주위의 따뜻한 마음이 정말 큰 힘이 됐다. 20대에 창업해 밤잠 안 자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예기치 못한 화재로 물거품이 될 상황에 처했지만 오히려 희망이 생겼다. 내가 잘못 살지 않았구나, 지역사회에서 받은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그런 다짐으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행복을 느끼며 살게 됐다.
지역사회에 어떻게 보답할 계획인지 듣고 싶다.
평택해경 정책자문위원회, 평택당진항발전협의회 등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듣고 서부지역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 지역사회가 제게 요구하는 소임이 있다면 기꺼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