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방지법과 처벌 규정이 없어서  
정인이 사건을 막지 못한 것 아냐

기존 법과 제도를 철저히 점검·개선해서 
아동 보호 체계를 촘촘히 갖췄으면…

정학호 회장
평택아동인권협회

[평택시민신문] 새해부터 양부모의 잔인한 학대로 숨진 생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이 전국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최근 방송을 통해 드러난 양부모 학대의 극악함은 실로 충격 그 자체였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방송과 검찰의 수사 자료에 따르면 정인이의 양모는 지난해 6월부터 10월 정인이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정인이를 상습적으로 폭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폭행으로 정인이는 쇄골과 갈비뼈, 넓적다리뼈 등이 부러졌고 머리 부위에도 타박상을 입었다. 사망 당일에는 정인이의 등 부위에 강한 둔력을 가해 췌장이 절단돼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양부 역시 지난해 4월 정인이가 우는데도 반복적으로 정인이의 팔을 꽉 잡고 강제로 손뼉을 강하고 빠르게 치게 하는 등 정서적으로 아동을 학대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아내가 정인이를 집에 혼자 방치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아내와 함께 공동으로 정인이를 차 안에 방치하기도 했다. 양모 장씨는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양부 양씨는 방임 등의 혐의로 각각 기소됐는데 이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분노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세 번이나 신고가 됐는데도 매번 혐의없음으로 처리해 아이를 끝내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점이다. 입양기관, 어린이집, 의료기관, 경찰, 아동전문보호기관 등이 신고하거나 개입했음에도 아이를 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아동 학대 사망 사건으로 사회가 떠들썩해질 때마다 정부와 정치권은 아동 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2013년 울산 서현이 구타 사망 사건을 시작해 2015년 인천 초등생 감금 학대 사건, 2016년 평택 원영이 사망 사건, 2017년 고준희 양 학대 치사 암매장 사건, 지난해 천안 여행용 가방 아동 학대 사망 사건 때도 정부는 각종 방지책과 개선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늘 그때뿐이고 나아지는 게 별로 없다.

‘정인이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앞다퉈 수십 건의 ‘정인이 방지법’을 발의했다. 아동학대 전문가나 현장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성급하게 진행하는 ‘여론 잠재우기식’ 입법을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현행법이 잘 지키지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아동학대 방지법과 처벌 규정이 없어 정인이 사건을 막지 못한 것이 아니지 않나.

정인이 사건은 아동학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몇 가지 시사점을 안겨준다. 우선 아동학대 업무에 전문성을 갖춘 전담 공무원 수를 늘리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학대하는 부모로부터 아이를 즉시 분리할 수 있는 쉼터와 아이들의 신체적·정신적 상처를 치유할 전문 프로그램도 시급히 확충할 필요가 있다.

아동을 학대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국가와 공동체의 책무다. 정부는 아동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기존의 법과 제도를 철저히 점검하고 개선해서 학대받는 아이가 없도록 아동 보호 체계를 촘촘히 갖췄으면 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학대받는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관심’이 절실하다. 지금도 어디선가 학대로 고통받는 아동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더는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와서는 안 될 것이다. “정인아,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우리의 다짐이 헛되지 않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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