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평택섶길이 나아갈 길을 묻다 ④

[평택시민신문] 걷기여행은 일상생활권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길을 걸으며 그곳의 자연‧문화‧역사를 감상하고 체험하는 활동을 말한다. 평택시에는 걷기여행길인 ‘평택섶길’이 조성돼 있다. 섶길은 지난 2015년 평택의 정체성이 담긴 역사‧문화‧자연 자원을 잇는 12개 코스로 시작해 현재는 약 200㎞의 16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섶길은 다양한 사람이 찾는 길이자 교육의 장소로 성장했다. 그러나 걷기여행길의 후발주자인 만큼 성공적으로 자라잡기 위해 아직 길동무(해설안내사)‧프로그램 운영과 길의 유지‧관리를 위한 개선 과제가 남아있다.
<평택시민신문>은 전국의 주요 걷기여행길을 통해 섶길이 보다 성공적인 걷기여행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과 방향은 무엇인지 총 5회에 걸쳐 다루고 있다.

여강길 3코스 바위늪구비길의 출발점인 강천섬.

시·민간 운영의 이점  두 마리 토끼 
조례 제정으로 잡은 점 주목할 만해

남한강 보호 운동에서 출발

여강(驪江)은 여주 이호리에서 양화나루 일대를 일컫는 말이자 여주에서는 남한강을 부르는 명칭이다. 여강길은 말그대로 남한강을 중심으로 여주지역에 조성된 5개 코스 69㎞의 도보 트레일이다. 여주역에서 황학산과 고종 비 명성황후 민씨의 생가를 잇는 5코스 황학산 길을 제외하면 1~4코스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여강길 조성은 남한강 보호운동과 궤를 같이 한다. 과거 경기도는 남한강 정비사업을 명목으로 준설공사로 모래를 파내 판매하려고 했다. 당시 여주 환경운동연합 등은 남한강 보존을 위해 준설공사를 반대하며 남한강을 가까이에서 직접 경험하자는 취지로 ‘도보순례’를 제안했다.

첫 도보순례는 2004년 여름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3박 4일동안 진행됐으며 2008년까지 순례 기획·운영과정에서 남한강을 따라 형성된 자연부락마다 강과 관련된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과 남한강 중류의 생태적 다양성 등을 알렸다.

도보순례 캠프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강길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지정됐고 탐방로 활성화와 관리를 위한 ’비영리단체 여강길‘이 만들어졌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강을 따라 조성된 길 많은 부분이 공사장이 되면서 옛 마을 길 등 우회로가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옛 주민들이 다녔던 여러 길이 재발굴되면서 지금의 여강길이 탄생했다.

여강길 1코스 옛나루터길의 영월루에서 바라본 남한강 풍경

조례로 안정적인 운영 기반 마련

여강길의 가장 큰 특징은 ‘여주시 여강길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라 운영된다는 점이다. 여강길을 조성해온 ‘비영리단체 여강길’도 조례에 따라 여주시로부터 길을 위탁받아 관리·운영하고 있다.

걷기여행길은 추진 주체에 따라 크게 산림청 등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로 나뉜다. 추진 주체가 다르다보니 전국적으로 길이 만들어지고 있음에도 운영·관리상의 차이가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7월 위성곤(더불어민주당·서귀포시) 국회의원이 ‘걷기여행길의 조성ㆍ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제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지자체별로 지원조례를 우선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강길은 지원조례를 통해 안정적인 지원·운영·관리를 이끌어 낸 선구자적인 사례다.

조례는 목적·정의·기본원칙·사업·조성·관리·민간단체 지원 등을 규정하고 있다. 우선 조례는 여강길을 “역사·문화·자연자원을 연계 활용한 여주지역과 남한강 일대의 걷기길”로 정의하고 시의 역할을 ▲안내센터, 편의시설 설치 및 생태·문화체험 프로그램 운영 ▲여강길의 유지 보수 및 새로운 구간의 개발 ▲길관련 축제 및 역사문화유산의 계승과 생태환경의식 고양을 위한 홍보 및 교육사업 ▲옛길의 역사문화, 생태환경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를 통한 전시·출판·학술 및 문화사업 ▲그 밖에 여강길의 개발 및 활용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 등 5가지 규정했다. 또한 길의 운영 관리를 위한 민간위탁과 공무원, 관련 기관·단체, 개인으로 구성된 운영관리 협의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여강길 4코스 5일장터길의 출발점이자 3코스 바위늪구비길의 종점인 신륵사 강월헌

안정적 지원이 신규 코스개발 가능케 해

박희진 여강길 사무국장은 “전국적으로 걷기여행길 관련 사업은 많지만 상위법이 없어 지원을 받지 못해 운영관리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자체장의 의지에 따라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선거로 지자체장이 바뀌는 경우 사업 주체가 바뀌는 것은 물론 사업 자체가 흐지부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많은 걷기여행길이 안정적인 운영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자체가 사업을 직접 운영할 경우 주기적인 현장 관리가 필수적인 걷기여행길의 특성상 공무원의 업무부담이 크다. 보직순환으로 담당 공무원이 바뀌는 점도 안정적인 관리를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된다. 반면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경우 회비, 후원금 등에 의존하므로 상근근무자 확보 등 안정적인 운영이 어렵다.

여강길은 2019년부터 조례에 따른 운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조례에 근거해 시 건물에 사무공간을 마련했으며 상근자 2명의 인건비와 프로그램 운영 지원 등을 받는다. 운영상에 여유가 생긴만큼 자체적으로 길동무를 뽑아 활동비를 지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신규 코스개발 등 여강길 사업이 확장됐다는 점이다. 기존 코스에 더해 남한강 중상류 방향으로 6코스 왕터쌀길부터 10-1코스 싸리산길까지 총 6개 코스가 늘었다. 여강길 측은 이르면 올해 안에 새 코스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4대강 사업 등 민감한 주제는 어떻게 해설하는가
여강길에선 4대강 사업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이야기가 아니어도 길은 공통의 화제가 생긴다. 지역현안에 대한 찬반이 있을 순 있다. 회원들끼리 신뢰가 쌓여 있다면 공식적인 입장을 정하기 위한 회의와 토론을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최근 여강길에선 에스케이발전소 건립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 위해 토론을 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 다툼으로 번지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확인했고 잘 마무리됐다. 

조례제정을 위한 조언은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상위법은 선택과 집중으로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 지자체들과 힘을 모아 법 제정을 추진하면 좋겠지만 지자체별로 절실함의 정도가 달라 힘을 모으기 쉽지 않다. 상위법 제정과 별도로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 시, 시의회와 원만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조례라고 해도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며 조례제정 운동의 지속성과 추진력을 확보해야 한다.

평택섶길에 조언한다면
지역민과 호흡하는 방법은 지속적인 활동이다. 길을 걷는 지역민의 요구를 듣고 그들 스스로 길을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걷기길단체, 문화원 등의 관련자만의 길이 아니라 주민들의 길이 돼야 한다. 길에 가치와 걸을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민이 길의 가치를 알고 아낀다면 다른 지역에서 섶길을 찾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늘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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