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걷기여행은 일상생활권을 벗어나 다른 지역의 길을 걸으며 그곳의 자연‧문화‧역사를 감상하고 체험하는 활동을 말한다. 이미 걷기여행은 세계의 보편적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으로 10여 년 동안 전국적으로 수많은 걷기여행길이 만들어졌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걷기여행길 종합정보시스템인 ‘두루누비’에 등록된 길만해도 10월 20일 기준 583개 1889코스에 달한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매년 걷기여행을 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19 걷기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51.6%가 걷기여행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년 동안 걷기여행을 한 비율은 37.0%이며 평균 걷기여행 횟수는 4.2회로 확인됐다.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국내 비대면 여행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걷기여행길을 찾는 이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평택시에는 걷기여행길인 ‘평택섶길’이 조성돼 있다. 섶길은 지난 2015년 평택의 정체성이 담긴 역사‧문화‧자연 자원을 잇는 12개 코스로 시작해 현재는 약 200㎞의 16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섶길은 다양한 사람이 찾는 길이자 교육의 장소로 성장했다. 그러나 걷기여행길의 후발주자인 만큼 성공적으로 자라잡기 위해 아직 길동무(해설안내사)‧프로그램 운영과 길의 유지‧관리를 위한 개선 과제가 남아있다.

이에 <평택시민신문>은 앞서 조성‧운영된 걷기여행길을 통해 섶길이 보다 성공적인 걷기여행길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과 방향은 무엇인지 총 5회에 걸쳐 다루고자 한다.

이정표를 따라 걷는 자유여행
<2019 걷기여행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 올레길은 걷기여행객이 가장 많이 방문한 길, 가장 기억에 남는 길, 가장 방문하고 싶은 길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런 만큼 걷기여행객을 위한 인프라가 잘 확보돼 있다는 점이 올레길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정표다. 올레길은 정해진 일정이 없는 자유여행이므로 처음 걷거나 혼자 걷는 사람을 위해 길 곳곳에 이정표 역할을 하는 표식이 있다. 표식은 리본, 화살표, 표지석 등 다양하나 대부분 기존 경관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만들어져 있다.

코스의 시작에는 표지석이 설치돼 있다. 표지석은 가장 제주스러운 돌 ‘현무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코스 경로, 경유지, 화장실 위치 등이 그려져 있다.

리본은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표식이다. 각각 감귤과 바다를 상징하는 주황색과 파랑색 두 가지 색으로 나무‧전봇대 등에 달려있다. 간격은 한 표식에서 다음 표식이 보이는 거리인 50~100m 간격으로 달려 있다. 갈림길에서는 담‧돌‧가로등 등에 그려진 주황‧파랑색 화살표가 길을 안내한다. 주황색은 역방향, 파랑색은 정방향을 의미한다.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간세’도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 간세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이 길의 진행방향을 의미한다. 간세는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방언 ‘간세다리’에서 따온 말이다. 빠른 속도 속에서 살아온 현대인들이 올레에서는 놀며 쉬며 느릿하게 걸어보라는 의미가 담겼다.

올레길의 동력은 자원봉사자

올레길의 걷기여행길 인프라에서 주목할 두 번째는 안내소와 자원봉사자의 역할이다. 현재 올레길에는 총 14개의 안내소가 설치돼 있다. 2코스 당 1개꼴이다. 안내소는 길동무(안내사)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상주하며 코스 정보, 교통정보, 주변 볼거리 등 정보를 제공한다. 올레길 완주 입증을 위해 스탬프를 찍는 올레 패스포트를 비롯한 관광 상품도 판매된다.

혼자 온 여행객도 안내소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부담 없이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제주올레는 여기서 더 나아가 2016년 서귀포에 올레꾼의 베이스캠프로 ‘제주올레여행자센터’를 개관했다. 여행자안내센터 더해 카페·펍·교육장·게스트하우스 등 기능을 갖춘 복합공간으로 올레꾼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있다.안내소에는 제주올레 아카데미에서 기초·심화교육을 이수한 길동무가 근무하고 있다. 아카데미에서는 제주의 자연·역사·문화를 비롯해 길과 관련된 유적 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며 자원봉사자를 교육해 양성하는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교육은 1박 2일간 이뤄지며 교육을 수료한 사람들은 총동문회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아카데미는 31기까지 진행됐으며 교육을 받은 사람만 해도 15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올레길의 유지·관리에 참여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는 매월 두 번씩 올레길을 청소하는 ‘클린 올레’, 축제 개최 시 교통정리 등을 도맡으며 길을 유지·관리하는 올레길의 자체동력이다.

제주올레 이영일 사무국장은 “제주올레 사무국 직원 30여 명이 올레길 26코스 전체를 관리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자원봉사자 덕분에 올레길은 초기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는 올레길을 유지하는 하나의 큰 축”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길이 아닌 제주지역의 정체성
마지막으로 올레길에서 살펴볼 특징은 제주도의 역사·문화·자연을 연결한 방식이다. 올레는 제주도 방언으로 큰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말한다. 그 말처럼 올레길은 관광지로 조성된 길이라기 보다 기존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의 복원이다. 길 대부분이 제주의 옛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과거 제주도 사람들이 거닐던 길, 해녀들이 물질할 때 다니던 길, 아이들이 뛰놀던 길이 올레길의 시작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 용두암, 천지연 폭포 등 유명 관광지에 집중된 점(點)형 제주 여행의 패턴이 제주도 구석구석을 잇는 선(線)형 구조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올레길은 제주지역의 정체성을 여행콘텐츠로 만들면서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재발견·재평가 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례로 표지석을 꼽을 수 있다. 유적지 표지석은 18코스(제주원도심~조천 올레) 등 제주시 지역을 지나는 올레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표지석 대부분은 한라일보사가 주축이 돼 추진한 ‘유적지표지석세우기 추진위원회’가 세운 것이다. 이 운동은 도시개발로 사라졌으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현장을 후세에게 알리기 위해 추진됐다. 추진위는 제주시 80여 곳에 유배지 적거 터 등을 알리는 표지석을 세웠다. 이외에도 주민자치위원회 등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 등을 합하면 다양한 표지석을 만날 수 있다. 올레길은 이러한 역사적 흔적을 잇고 잊혀져 가는 제주도의 역사·문화를 복원하면서 지역 정체성 회복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기존 코스에서 원도심 ‘심쿵투어’(제주시 원도심 일원) ‘작가의 산책길(이중섭 거리 일원)’ 등 다양한 길과 테마거리가 파생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레길의 철학은.
올레가 추구하는 바는 자연의 보존과 유지를 통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사람이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자연이 훼손되면 올레길은 지속될 수 없다. 올레길은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마을 등 다양한 장소를 걷는다. 그렇기에 마을 주민들이 행복도 올레길의 고민에 포함된다. 올레가 제주도의 관광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지만 마을주민이 행복한가는 다른 문제다. 이를 위해 마을의 빈 건물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만들고 지역 특산물로 제품을 만드는 방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녹차를 재배하는 신산리에는 녹차 아이스크림·크런치 등을 만들어 판매할 수 있도록 마을을 위한 사업을 지원했다. 도민 모두 올레를 공동자산으로 느끼고 행복을 얻을 수 있어야 길을 찾는 올레꾼도 행복할 수 있다.

걷기여행길에 조언을 한다면.
길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유지하는 것이다.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지 않으면 푯말도 관리가 안 되고, 사람들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전국적으로 그런 길이 수십 개가 된다. 길의 유지가 중요한 데 행정이 주도할 경우 유지가 어렵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거나 선출직 공무원의 성향에 따라 사업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받아 운영하면 관리가 잘 되지만 예산이 줄면 줄어든 만큼 관리아 안 된다. 시민과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길을 유지·관리해야 한다. 행정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 대중교통체계가 그렇다. 코스 인근을 지나는 경우 버스에서 올레길의 시작점 등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이런 지원은 행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민간이 자율성을 갖고 운영하되 행정을 통한 시너지효과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