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궁남지에서

한바탕 연꽃축제를 치른 호숫가
더디 핀 꽃들이 
부드러운 바람의 옷자락을 거머쥐고 있다
늦은 만개(滿開)앞에 걸음을 멈춘다
여민 듯 열려있는 꽃잎 속에
못 잊을 얼굴 하나 어른거린다
연잎 위로 굴러다니는 물방울 몇
누군가 떨구고 간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한바탕 울고 싶은 마음 때문 일게다
가던 길 멈춰 설 때는
가야할 길들이 벌떡 일어나 정신을 깨워주었다
축제 끝난 물가를 기웃거리며 
뒤늦게 저 홀로 청초한 연꽃송이를 마주하니
어떤 각오 같은 것이 벌떡 일어난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연잎이 물방울을 굴리듯 생각을 굴려본다 
생각을 굴린다는 것은 의욕이 살아있다는 말 
궁남지 축제는 놓쳤으나 
향기를 물고 올라오는 연꽃 같은 삶
연꽃 같은 지혜를 한 아름 얻어간다  

 

죽령고개를 넘으며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는 죽령고개
나무마다 詩가 펄럭이고 있다
옛시조를 읊으며 굽이굽이 고개를 넘는다
다가오는 바람이 차다
옛날은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연어처럼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낙엽처럼 가버린 사랑 또한 그런 것일까 
서늘한 바람과 실낱같은 햇살에도 
곁을 내어주는 시간
허공을 밝고 내려오는 나뭇잎들의 행렬을 보며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오늘이 삶의 절정이라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추억이라면
가을, 저 붉디붉은 내력을 다시 읽어볼 수 있을까 
침침한 마음 한 자락 내려놓으면
저만큼 가벼워지는 것일까 
당당한 자세로 겨울을 받아들이는 나무에 공감한다
선명하고 또렷한 소리가 들린다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다 
계절의 교차로에 다시 바람이 불고 
숨 가쁘게 넘는 오십 고개가 숲을 흔든다  

최경순
문학광장 등단 
황금찬 문학상, 문학광장 문학 대상
경기 신인문학상, 칸느 문학상, 다선 문학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평택문인협회 회원 
평택아동문학회 회원
시집 『그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
공저 『삶』 외 다수
가곡 『소사벌의 아침』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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