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문밖에서> 연습 현장

분장을 마친 김숙자(75), 김경희(71), 권형자(80) 할머니가 안정리 골목을 당당하게 걸으며 콘셉츠 촬영을 하고 있다.

[평택시민신문] “금옥이 죽어 나간 지 하루도 안 지났다고.” 9일 오전 팽성읍 안정리에 위치한 기지촌 여성 쉼터 ‘햇살사회복지회’에서 연극 <문밖에서> 연습이 한창이다. 권형자(80), 김경희(71), 김숙자(75) 할머니와 배우들은 7월 25일부터 26일까지, 7월 30일부터 8월 1일까지 총 5회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문밖에서>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다룬 연극이다. ‘극단 해인’(대표 이양구)과 ‘프로젝트 타브’(대표 최설화)가 공동기획했으며 지난 2018년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실패박람회’에서 초연했다. 출연진들은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2016)에서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극 중 보건소 의사 등을 맡은 최설화 대표는 “이번 연극은 <숙자 이야기> (2011)에 출연한 할머니들과 <일곱집매>(2013)에 출연한 배우들이 만나 함께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9일 햇살사회복지회에서 할머니들과 배우들이 대사를 맞추고 있다.

할머니들, 대본 없이 연기

극은 안정리에서 고독사한 노인 ‘금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은 지 수 일이 지나서 발견된 금옥을 중심으로 금옥의 동료들이 서술하는 과거와 현재에서 기지촌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구조적 현실이 드러난다.

할머니들은 대본 없이 연기한다. 기억이 곧 대본이다. 연극인 동시에 구술사인 셈이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되 구조적 맥락은 배우들이 대사와 연기로 풀어냄으로써 관객이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돕는다.

이양구 연출자는 “배우와 할머니들의 연기를 통해 기지촌 여성을 억압해 온 구조적 요인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이어 “클럽에서 돈을 버는 모습 이면에 빚이 늘어 기지촌을 떠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을 함께 표현했다”며 “이 연극이 기지촌 여성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배우들도 기지촌 여성을 어떻게 해석하고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깊이 고민해왔다. 클럽 지배인 등을 맡은 조시현씨는 “영화, 드라마 등에서는 기지촌 여성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만 다뤄 편견을 만들어냈다”며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기지촌 여성의 인간적인 면을 알아가는 과정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분장을 마친 김숙자(75), 김경희(71), 권형자(80) 할머니가 안정리 골목을 당당하게 걸으며 콘셉츠 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삶이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문밖에서>는 기존에 다루지 못했던 소재들을 전면적으로 다룬다. 정부의 강제 성병 검진, 낙태 등 과거 관객과의 대화에서만 다뤘던 것들이다. 연습 중간중간 이 감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극화해도 괜찮은지 확인하고 동의를 구한다. 이 감독과 배우들은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반면 할머니들은 “연극에 나온 장면은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라며 “왜 부담스러워 하느냐”고 감독과 배우들을 독려했다.

김숙자 할머니는 “우리가 살아온 사회는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그동안 자랑할 것 없었고 자랑해도 알아줄 사람이 없던 우리의 인생과 삶을 연극으로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경기도에서 기지촌 여성 지원 조례가 만들어졌다. 평택시에서도 조례가 만들어져야 도움이 된다. 그러니 기지촌 여성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시간이 넘는 연습이 끝난 후 할머니들은 콘셉트 촬영을 준비한다. 콘셉트 촬영은 이날이 처음이다. 60~70년대풍 옷과 선글라스, 목걸이 등을 걸친 할머니들은 50여 년 전 이곳에 살던 당시로 되돌아간 듯하다. 촬영을 위해 안정리 골목으로 할머니들이 나선다. 문밖으로 나온 그들의 걸음은 누구보다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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