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넝쿨장미

푸르른 가시 속 봄밤 내 저물던 시간들,
허리 길게 출렁이며 
그대 온 몸으로 깊은 샘 끌어올리자 
바람은 부드럽고 햇빛은 정갈하네
꽃은 그리움 덩굴 채 내어 놓네 
오랫동안 수런대며 태어나지 않던 꽃들
세상의 아득한 곳에 서 있었던 적도 있었으리라.
깊은 수면 속으로 헤엄치며
힘찬 지느러미가 달린 그대
맑은 눈빛을 따라 가면 
수많은 꽃잎들 
넝쿨을 타고 하늘로 올라올라 
세상은 온통 붉은 지느러미 출렁이며 흩어지네  
푸르른 바다 속 셀 수 없는 꽃들이 만발하다 


여름 한낮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심장을 비굴하게 가라앉히고
상냥한 미소만이 살길이라고 책상은 일러준다
지금 그녀는 간도 쓸개도 없는 사람으로 개조되는 중이다
                               
이십년이 지나도 말단의 꼬리표를 자르지 못하는 그녀
사방에서 속사포가 발사되고
바람 한 줄기 없는 한낮이 기세등등하다

에어컨도 가동되지 않는 사무실
약삭빠른 사람들은 물먹는 하마를 옆구리에 차고
이미 습기 찬 서류들을 다 빨아들였지만
그녀 앞에 쌓인 서류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녀의 머리위로
가끔 소나기가 내렸지만 여름 내내
그녀의 하마는 온 몸을 거대한 하늘에 맞대고
온 몸을 지금 씨름중이다

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간혹 회오리바람이
푸른 나뭇잎들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는다

 

김영자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경기시인협회이사
경기도 문학상 본상(詩부문) 수상 (2001년) 
경기 시인상 (2015년) 평택문학상(2016년) 
고대 문우상(2017년)
시집으로 『문은 조금 열려 있다』『아름다움과 화해를 하다』
『푸른 잎에 상처를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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