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그 해, 철쭉

                                박경순 시인

 

응달진 바위틈에서 어떻게 철쭉이 활짝 피겠냐고

담벼락으로 앙칼지게 덤비는 담쟁이
사납게 눈길 쏘아대기도 했겠다

유행 지난 유행가가
한미 에프 티 에이도 거뜬히 버티는
축산 농가의 축사로 흘러들어
분뇨 냄새가 진동하고

새까맣게 태운 브라질 산토스 커피 원두 알갱이가
풍비박산 저수지에 암암리 버려져
수질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이 내려지고

카페 여주인의 도화 등살에
젊은 라이브 가수가 버텨내질 못하여
무대 불빛이 깜빡거리고

무진히
소진한 세월 지복이 고만하여
부도를 자처했다고
작년에 심은 넝쿨장미 수풀더미 가려 얼굴도 내밀지 못했겠다

차마, 보름달이 치마폭에 옴팡지게 엉긴다 싶어
낯짝 빳빳이 세우지 못하는 판국에
발밑 철쭉꽃 무더기,
빛 무더기,
혼비백산 꿈 버리고
홀가분하게 떠안은 빚더미

달력을 보니, 아버님 기일이었다.

 

박경순
시인 · 사진작가

1998년 계간 <뿌리>로 등단
1998년 시집 <물푸레나무의 신화 속에서>
2007년 시집 <사랑아, 내가 널 쓸쓸하게 했구나>
2010년 시집 <지독한 마법>
2011년 시집 <꽃 가운데 김 여사님>
2013년 시집 <네가 부르는 소리에 내가 향기롭고>
2018년 시집 <이팝꽃 가문>
2019년 시집 <디테일이 살아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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