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 한국사 천년 만든 100인 중 45위에 선정

[평택시민신문] 평택 출신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과 관련한 단행본이 현재 총 94권 출간돼 있다. 올해도 몇권이 준비되고 있다하니 조만간 100권을 넘길 것이다. 한국 근현대 지성사에서 안재홍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에 걸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줏대 있게 고민하며 국가비전을 설계하고 실천한 민세 안재홍. 그를 다룬 책들을 찾아 그 의미와 핵심대목, 독서 포인트 등을 소개해 민세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평택의 품격을 높이는 일이라 여기며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김성환 지음 (1998)
<한국사 천년을 만든 100인>
오늘의 책

안재홍의 비타협민족주의 실천과 경이적인 9차례 항일 투옥에 주목

이 책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민족문제연구소 간사, <말>지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역사연구가 김성환 씨가 1998년 출간했다. 100대 인물 선정에는 신용하, 서중석, 이만열, 이태진, 임형택, 정양모, 진덕규 등 당시 저명한 각계 지성 10명이 참여했다. 선정에 참여한 학자들은 안재홍의 항일·통일 운동의 역정과 열린 민족주의 창시, 해방 후 국가건설론으로서의 신민족주의에 높은 점수를 줬을 것이다. 이 책에서 필자는 안재홍을 일관되게 좌우합작을 주장한 ‘비타민(비타협민족주의자)’으로 평가했다.

비타협 민족주의는 당연히 타협적 민족주의에 상대되는 것인데 이것을 판별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감옥에 간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였다. 안재홍은 일제시대 때 총 9번이나 감옥을 들락거렸다. 이것은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대단한 기록이었다(김성환, 한국사 천년을 만든 100인, 228쪽 ).

선정 결과 1위는 세종, 2위는 이순신, 3위는 김구, 4위는 정약용이 뽑혔다. 안재홍은 45위에 선정됐다. 정도전 10위, 안중근 21위, 정몽주 25위, 일연 38위, 안창호 39위, 김좌진 50위, 서재필 52위, 김육 52위, 허균 62위, 황희 91위, 신윤복이 100위를 차지했다.

 

해방 후 국정 교과서에 안재홍 글 3편 실려 당대 영향력 보여줘

아마 일반인 대상 조사라면 안재홍은 100위권 밖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만큼 안재홍은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역사인물은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그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당했기 때문이다. 해방후 초·중등 국정교과서에 ‘춘풍천리’, ‘목련화 그늘에서’, ‘독서개진론’ 등 민세의 글이 실렸다. 민세는 1945년 8월 해방후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해 부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남조선 과도정부 내각수반인 민정장관이자 좌우합작 우측 대표로, 당시 서울 5대 일간지였던 한성일보의 사장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국가교육이념으로 ‘홍익인간’을 주창했던 그는 당시 가상 여론조사에서 초대 문교부장관 선호도 1위에 오르는 등 당대 유력한 민족지도자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안재홍은 한국 현대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선정된 100인 가운데 평택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안재홍이 유일하다. 80년 전 엄혹한 식민지 시기에 민족에서 세계로의 열린민족주의를 최초로 주창한 안재홍의 비타민 정신이 고향 평택에서부터 차분히 알려지기를 바란다.

황우갑 시민전문기자·민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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