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잎 된장국의 기억

경칩 지나면 어지간한 곳 해토돼
쟁기를 준비하고 밭갈이를 재촉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이 오면 코로나19도 힘을 잃을 것
우리가 취약한 삶의 방식 견지한다면
코로나 19뿐 아니라 22, 25도 달려든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평택시민신문] 코로나19 사태로 온나라가 뒤숭숭하다. 모든 일정이 연기되고 사람들의 인적이 끊겼다. 마스크를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형태의 방역해법이 나오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에 의해서 비말(飛沫)이라고 하는 미세한 침방울로 감염이 된다하니 그런 방법도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법들은 사람들을 불안속으로 가두어 넣는 역할을 한다.

현대인들이 단절되어 사는 듯 외로움을 타기도 하고 그로인한 정신질환도 늘고 있지만 사실 사회적 관계의 접근성은 그 어느 시대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이 비대면 상태로 해결 된다고 떠들어 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마지막 단계에선 비대면(非對面)이 불가능 할 때가 많다. 바로 이런 유기적 관계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종바이러스는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고 볼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봄은 오고 있다. 벌써 개구리가 흙속에서 놀라 뛰쳐나온다는 경칩(驚蟄)이 5일이다. 경칩이 되면 어지간한 곳은 해토(解土)가 다 되어 세상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는 시기이다. 경칩은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으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에 해당될 때이다. 그러니 이제 보름만 지나면 황경이 한 바퀴를 완전히 돌아 360도가 되는 춘분이 돌아온다. 천체의 운행상으로 보면 황경이 0도가 되는 춘분이 새로운 한해를 시작 하는 날이 되는 것이다. 음력이나 양력이 새해를 동지가 지난 다음에 하는 것은 낮이 가장 짧았다가 다시 길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 생각된다.

경칩에는 왕이 직접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친경과 권농하는 행사를 하였다. 권농 행사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 17년(서기전 41)에 왕과 왕비가 육부(六部)를 순행하면서 농사와 잠사를 권장하고 감독하였다는 기록에 처음 나타난다. 매년 경칩이 지난 뒤 첫 해(亥, 돼지날)일을 택해 왕이 친히 제향을 드리고 밭을 갈았다. 이것은 조선조까지 계속 이어져 서울 전농동에 있는 전농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친경행사를 치러 농사의 모범을 보였다. 이때 소를 잡아 함께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는데 이것이 설렁탕이 된 것이다.

봄, 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이 냉이국, 쑥국 이런 것 일게다. 봄이 오면 들판에 아낙들이 호미 들고 나물을 캐다가 무쳐먹으면 봄을 입안에 집어넣는 것이라 했다. 겨우내 부족해진 비타민을 섭취하는 것이니 건강에 그리 좋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2월 쑥국을 먹으면 문지방을 못 넘어 간다”는 말이 있다. 쑥과 된장의 구수한 맛에 몇 그릇 들이키다 보면 살이 쪄서 문지방도 못 넘을 정도가 된다는 과장이며 역설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쑥과 된장이라도 먹으면 살 수 있었던 그 비극을 빗댄 말이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농가월령가를 보자.

 

보장기 차려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밧 갈희어서 춘모를 만니 갈고

면화 밧츨 뒤여두고 제 때를 잇지마소/ 담배모와 잇 시무기 일을스록 조흔니라

원림을 쟝점하니 생니(生利)를 겸하도다/ 일분(一分)은 과목(果木)이요 이분은 뽕나무라/ 뿌리를 상치마소 비오는 날 시무리라

 

쟁기를 준비하고 밭갈이를 재촉한다. 봄보리를 많이 뿌리라 하고 면화밭도 갈아 놓으라한다. 담배모종과 잇꽃(홍화)심기를 재촉 하고 있다. 과목과 뽕나무도 이시기에 심으로 한다. 요즘 식목일이 4월5일 청명일인데 이시기가 가뭄이 드는 시기라서 좀 일찍 나무를 심도록 식목일을 당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미 200년 전부터 나무를 이시기에 심으라고 했다는 것은 정학유의 통찰력인지도 모른다.

춘분(春分)은 경칩으로부터 보름이 지나야 돌아온다. 봄 중의 봄,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춘분이다.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春分點) 위에 왔을 때이며 음력 2월, 양력 3월 21일경이다. 올해는 20일이다. 2월에 윤일인 29일 하루가 더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상에서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춘분점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춘분에는 나이떡 또는 머슴떡이라는 것을 해먹는데 아마도 모자라는 영양보충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자라는 아이들과 머슴에게 열심히 일하도록 권장하는 의미에서 시작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콩을 볶아 먹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쥐와 새가 콩을 축내지 않는다고 해서 콩볶는 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영양결핍을 해소하고 서로 나누라는 의미가 컷던걸로 보인다.

봄 '春'의 자의(字義)는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나오는 모양을 의미한다. 신화(神話)적 해석으로도 봄은 시작과 풍요, 부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곧 계절의 시작, 한해의 시작, 다시 농사 준비의 시작으로까지 봄은 모든 만물이 생명의 근원을 다시 얻어 소생하는 계절이다. 이것은 천지의 조화인데 사람들도 천지간에 들었으므로 이 조화에 발맞춰 가야 한다는 의미를 춘분은 강조하고 있다.

나머지 농가월령가를 보자.

 

산채(山菜)는 일너시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빡기 씀박니며 소루쟝니 물쓕이라

달내 김치 냉니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을 상고하야 약재을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천궁 시호방풍 산약택사 /낫낫치 기록하여 때밋쳐 캐어두소

촌가에 긔구업셔 값진 약 쓰을손야

 

전농총연맹 의장 시절에 지방 순방을 가면 일부러 부탁해서 먹은 음식이 있다. 보리잎을 손으로 쥐어 뜻어다가 보릿잎 된장국을 끓여 달라고 했다. 구수한 된장과 달달함한 보리잎 조화도 그렇지만 난 어머니의 맛을 탐했던 것이다. 어린 날 아무 맛도 없는 보리국은 너무 싫었다. 나이가 들고 나니 거기 담긴 어머니의 체취가 그리워 진 것이다. 그래선지 먹을 때마다 그 구수하고 달달한 보리잎 된장국의 냄새는 어머니 젖무덤에서 나는 냄새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철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도 있다. 들에 펼쳐진 나물들을 뜯어 먹자고 한다. 봄이 무르익어가면 도무지 못 먹을 풀이 없다. 모두가 나물인 것이다. 이것들이 우리가 5만년은 족히 먹었을 음식이다. 그런데 지난 30년 내에 그만 그런 음식은 먹어보지 못하는 불행한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제땅에서 나온 거친 음식들이 세상에 견디고 사는 힘을 길러 준다는 것을 정학유는 말하고 있다. 가난한 살림에 용(茸)이나 인삼을 쓸 수는 없으니 산야초라도 캐어다가 약으로 긴히 쓰라고 알려주는 친절함까지 베풀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코로나19에 주눅들어 있다. 주눅정도가 아니라 공포에 졌어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면역체계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글로벌이라고 하면서 세계가 한 집안이라고 부추키며 나대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지금 자유로히 갈 수 있는 나라는 어디냐고.

우리에게 먹을 것이 있다면 야욕의 손톱을 내밀며 다가오겠지만 우리가 줄 것이 코로나 19라면 세계의 빗장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봄이다.

봄이 오면 코로나19도 힘을 잃을 것이다. 우리의 취약한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우주를 확장해 갈 것이다. 우리가 취약한 삶의 매커니즘을 그대로 견지한다면 코로나19뿐 아니라 코로나22, 25도 계속 달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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