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에 오줌독 깨진다

우수에 대동강 풀릴 일도 없지만
꽃샘 추위는 만만치 않아
늘 그랬듯이 버들개지에 푸른빛이 돌고
냇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누가 뭐래도 봄이 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평택시민신문] 설을 쇠며 여기저기 인사 다니느라 입춘방을 써붙이지 못했다. 입춘방을 넉넉히 써서 여기저기 나누어주는 것도 시골 산방의 쏠쏠한 재미인데 게으름 때문인지 때를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도 만만치 않은 상태이고 보니 입춘도 입춘방도 어영부영하게 되는 모양이다. 올해 같이 음력으로 설을 쇠고(2월4일) 입춘이 들기도 하지만 설 쇠기 전에 입춘이 드는 경우도 많다. 또한 입춘이 두 번 드는 경우도 있는데 윤달이 섣달이나 정월에 들면 그렇다. 이럴 때 입춘을 재봉춘(再逢春)이라고 해서 봄을 한꺼번에 두 번 맞으니 경사도 곱이라고 생각한다.

입춘날 갑자기 추워져서 많이들 애를 먹었을 터이다. 그동안 날씨가 따듯해서 기후위기니 이상난동(異常暖冬)이니 말들이 많았는데 이를 무색하게도 한파가 몰아친 것이다. 허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극히 정성적인 날씨이다. 예로부터 입춘추위는 찾아오는 것이라서 속담이 생겨났다. “입춘방을 거꾸로 붙였나?”하는 속담부터 “입춘에 오줌독 깨진다”라는 속담까지 생겨난 것이다. 기왕 옮겨 적은 속담이니 더 적어보면 “입춘추위는 꿔다 한다” “가게 기둥에 입춘방 붙인다.”등 여러 가지가 있다.

입춘은 봄을 알리는 날이니 경사스러운 날이다. 입춘방도 여러 가지를 써서 붙인다. 대표적으로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우순풍조 시화연풍(雨順風調 時和年豊)같은 글귀이다. 입춘 날 먹는 음식이 따로 있다. 움파나 무싹 당귀순으로 나물을 무쳐 봄을 느끼고자 했다. 겨울동안 모자라는 비타민을 섭취하는 지혜로 보인다.

 

좀 이르기는 해도 봄을 맞이하는 날이니 농부에게 독려하는 말이 있을 것 같다.

농가월령가 정월조를 보자.

 

전략....봄에 만일 실시(失時)하면 종년(終年) 일이 낭패(狼狽)되네 /롱긔(農器)를 차려노코 롱우(農牛)를 보살피고 /재거름 재와 노코 일변(一邊)으로 시러 내여

맥전(麥田)에 오좀 치기 세전(歲前)보다 힘써 하소 /늘그니 근력(筋力) 업셔 힘든 일 못하여도

낫지면 이엉 역고 밤이면 삿기 꼬아 /때 밋쳐 집 이으면 큰 근심 더러도다

실과(實果) 나무 버곳 깍기 가지 사이 돌 끼우기 /뎡조(正朝) 날 미명시(未明時)에 시험죠(試驗條)로 하여보자 /며느리 잇지 말고 소국쥬(小麴酒) 밋 하여라 /삼츈(

三春) 백화시(百花時)에 화전일취(花煎一醉)하여 보자 ...후략

 

농사일을 시작하는 보통의 기준일은 보름이다. 보름이 되면 양지에 땅이 녹아 삽질이 가능하다. 시기적으로 그렇다. 그런데도 농가월령가에서는 입춘부터 채근이다. 근대 이전에 농촌은 겨울이 되면 사랑방에 모여 골패잡기에 몰두했다. 이것은 일제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성행을 했는데 아무리 말려도 그치질 않았다. 한때 우리사회에 고스톱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근대에 행해졌던 어떤 습관 같은 것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밤에는 새끼를 꼬라고 다그치는 것이다. 과일나무 보굿은 거친 껍질을 벗겨 벌레 알을 죽이라는 것이고 가지사이 돌을 끼우라는 것은 나뭇가지를 옆으로 뉘이라는 농업전문용어로 말하면 ‘가지유인’을 하라는 말이다. 그걸 설날 새벽에 해보라는 말이다. 부지런히 일하라는 안달이다. 정학유도 양반계급이니 농민들의 입장은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 때를 기다려야하는 농사일을 너무 서두른다 싶다.

입춘이 지나면 달이 배가 차기 시작해 곧 보름이 된다. 보름은 설 다음의 큰 명절이다.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이며 머슴들이 기지개를 펴고 나뭇짐을 끌어들이고 남새밭을 일구어야 하는 날이다. 어릴 때 형들과 아저씨들은 삽으로 땅을 찔러보아 삽이 들어가면 과수원에 거름구덩이를 파야한다고 했다. 과일 농사의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 되는 것이다.

 

다시 농가월령가를 보자

 

전략....사나희 년 날이기 계집아해 널뛰기오/ 늇 노라 나기하기 소년들에 놀이로다

사당(祠堂)에 세알(歲謁)함은 병탕(餠湯)에 쥬과(酒果)로다

엄파 미나리 무엄에 겻드리면/ 보기에 신신(新新)하야 오신채(五辛菜) 부러하랴

보름날 약밥 졔도 신라(新羅)젹 풍쇽이라 /묵은 산채(山菜) 살마내니 육미(肉味)를 밧골소냐

귀 밝히는 약슐이요 부름 삭는 생률(生栗)이라 /먼져 불너 더위 팔기 달마지 횃불 혀기

흘너오는 풍속이요 아헤들 노리로다.

 

농가월령가가 노래하듯 보름엔 여러 가지 행사와 먹을거리가 즐비하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보름하면 오곡밥과 쥐불놀이들이 생각난다. 농가월령가에선 약밥이라하여 신라 때부터 있던 풍속이라 했다. 오곡밥은 보름전날 먹는다. 찹쌀과 오곡으로 지은 밥은 소금간을 하여 반찬이 없어도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오곡밥을 훔쳐먹는 재미도 있었다. 불깡통을 돌리다 허기지면 아무네 집으로 숨어들어 오곡밥을 한주먹씩 꺼내와 나누어 먹곤 했다. 달집태우기는 풍년을 기원하는 주술적 놀이행위인데 올해도 각 마을에서 달집태우기 놀이를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코로나바이러스사태로 취소한곳이 많았다.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여러 행사들이 매일 있다시피 하는데 이 놀이들은 공동체를 확인하는 행위였다. 낮에는 연을 날린다. 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며칠 전에 성황을 이루고, 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기 때문에 대보름이 되면 ‘액(厄)연 띄운다.’ 하여 연에다 ‘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送厄(송액)’이니 ‘送厄迎福(송액영복)’이라 써서 날리고는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을 죄다 풀고는 실을 끊어서 연을 멀리 날려 보낸다. 여인네들은 널을 뛰었다. 어머니가 하얀 무명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널을 뛰는 모습이 기억난다. 앞으로 약간 숙인 몸이 몇 길이나 위로 솟구치는 모습은 달나라 항아의 모습 같았다. 여인들의 널뛰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윷놀이를 하는데 대개가 내기로 판이 벌어진다. 요즘은 상품을 걸고 내기를 하기에 손덕이 좋은 사람들은 몇 판씩 돌기도 한다. 놀이를 하다 모가 나오면 춤을 추고 꽹과리를 울리며 술을 돌려 마시기도 한다. 말판을 쓰면서 의견도 분분해서 말싸움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보름이 가까워지면 투석전이 시작된다. 작은 마을을 평정하고 보름날은 큰 마을과 투석전을 펼친다. 투석전은 매우 위험한 놀이였다. 머리가 깨지고 팔이 부러지기 일쑤여서 투석전을 치루고 나면 부상자가 속출했다. 필자도 형들 틈에 끼어 투석전을 몇 번 벌여봤는데 그때마다 머리엔 혹이 나서 어머니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투석전은 애향심의 발로였다. 각 동리마다 자신의 동리가 우월하다는 자부심으로 참여했다. 본래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향토사수 훈련이었다고 한다. 그것이 전통이 되어 60년대까지 행해졌다. 워낙 위험한 놀이여서 70년대 들어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보름날의 대표적 행위는 더위를 파는 것이다. 맨 먼저 만난 사람에게“내 더위 사가쇼”하면 그해는 더위를 타지 않는 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을 넘긴다는게 꺼려지는 행위인데도 가차 없이 더위를 파는 모습들이 더위마저도 나누어야 한다는 미덕 같은 것이 되 버리고 말았다. 더위를 팔러온 사람을 불러 앉혀 놓고 귀밝이술을 한 잔씩 나누는 것도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호도나 땅콩 등을 깨트려 귀신을 쫓고 오곡밥에 아홉가지 나물을 먹어야했다. 그리곤 아홉짐의 나무를 한다고 했다. 겨우내 결핍된 영양분을 채워주고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인 것이다. 오곡밥을 먹는 것은 오곡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일 게다.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 또한 빠질 수 없다. 겨우내 제대로 먹지 못한 사람들에게 포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공개적으로 전사회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축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2월19일은 우수(雨水)날이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 들며 입춘 입기일(入氣日)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 음력으로는 정월 중기이다. 태양의 황경이 330°의 위치에 올 때이다. 그야말로 비가 내려 눈을 녹인다는 날이다. 아직 봄비라고 하기엔 이르지만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옛사람들은 우수 때를 삼후(三候)로 나누어 초(初)에는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놓고, 중(中)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말(末)에는 풀과 나무에 싹이 튼다고 했다. 이는 곧 우수 무렵이 되면 그동안 얼어 물고기 사냥이 쉽지 않던 수달이 얼음 녹은 물속에서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한다는 뜻이며 원래 추운 지방이 고향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는 뜻이다.

우수가 오면 내복을 벗어던져야 한다. 올 겨울이 이상난동(異常暖冬)이라고 한다. 이상난동은 오래된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이상난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간빙기에 접어든 지구가 서서히 더워지고 있음이다. 대동강물이 얼었다는 보도가 없는 것으로 보아 우수에 대동강이 풀릴 일도 없지만 꽃샘추위는 만만치 않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버들개지에 푸른빛이 돌고 냇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면 누가 뭐래도 봄이 오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지에 봄볕이 들면 제일 먼저 냉이를 캐서 무침을 하고 된장국을 끓인다. 상큼한 냉이무침과 구수한 냉이된장국을 맛보기위해 들로 나서 보지 않으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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