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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달처럼 슬픈 여자들의 섣달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20.01.08 12:12

한도숙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평택시민신문] 동지를 지나고 나면 섣달이다. 섣달은 그해의 마지막 달이다. 해서 농민들은 느긋하게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거나 투전판을 벌인다. 먹고 살만한 집이래야 동치미국물에 고구마라도 쪄서 내어준다. 사랑방은 머리가 쑥쑥 자라는 소년들에겐 교육의 장이다. 아니 누구나 함께하는 평생교육의 장이다. 선생은 따로 없다. 입담과 지식이 풍부한 자가 도맡았다. 역사며 전설, 설화들이 선생의 입맛 따라 각색되기도 한 채 전달된다. 농사방법이나 은밀한 성교육까지 너스레가 9할이지만 그래도 세상물정을 얻어듣는 어린 사내들은 침을 꿀떡 삼키고 귀를 기울인다. 어디에서도 이런 고급스런 정보는 얻을 수 없다.

섣달 밤은 깊어가고 잠은 오지 않는데 사랑방에 심지 돋우는 불빛이 자주 일렁인다. 어린 사내들은 어른들의 심부름을 곧잘 한다. 안채에 동치미국물 이나 물탄 막걸리라도 한주전자 내어 보라는 재촉까지 그들 차지였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라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까 어른이 되는 때가 섣달이다.

1970년대 들어 농촌에 농한기가 문제가 됐다. 할 일없는 사람들이 골방에 모여 화투판이 벌어지기 일쑤였기에 이것을 금하도록 동기 부여를 했는데 그것이 가마니짜기 대회, 새끼꼬기 대회 그런 것이었다. 더부살이를 하는 머슴들은 농한기에 잘 먹고 잘 놀아야 다음해 봄에 힘 있게 일을 할 수 있으니 많이 쉬도록 배려했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도시의 성장에 따라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던 시기도 섣달이다.

농가월령가 12월령 후반부에도 농사와 고향에 대한 걱정이 담겨져 있다.

(전략) 농사는 믿는 것이 자기 몸에 달렸으니/절기도 해마다 조금씩 다르고 농사도 풍흉 있어/홍수 가뭄 태풍 우박 없기야 하랴마는/극진히 힘을 들여 온 가족이 한마음 되면/아무리 흉년이라도 굶어 죽지 않으리니/내 고향 내가 지키어 떠날 뜻 두지 마소/하늘이 너그러워 화내는 것도 잠시로다/자네도 헤아려보아 십년을 내다보면/칠년은 풍년이요 삼년은 흉년이라/쓸데없는 생각 말고 농업에 마음 쏟으소....(후략)

19세기 들어와 조선에도 자본주의가 들어온 모양이다. 장사를 하러간다든가 제조업을 하러 간다든가 해서 도회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전통적으로 마을 30리 밖을 나가지 않던 사람들이 바깥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바깥을 향한 동경이 싹트기 시작 했다. 정학유는 이를 간파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전통적 가치를 지켜 고향을 도모하고 농사를 도모하자고 강조한다. 정학유 사후 40년 조선 땅에는 듣도 보도 못한 철마가 달리기 시작 했고 한 달이 걸려야 서울 구경을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하룻만에 서울을 올 수 있었으니 경천동지라 느꼈을 것이다. 그로 인한 고향을 등지는 일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고향이 살만한 곳이라 여기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던 농민들이기에 기차를 타고 만주로, 사할린으로 떠났고 그들은 거기서 볍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었다. 정학유가 고향을 지키고 농사를 계속하라고 노래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눈치 챈 선각자로서의 행동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도 개발의 삽질이 계속되는 이곳 평택 땅을 떠나는 농민들이 많아지는 현실 앞에서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다.

섣달은 뭐니뭐니해도 설날을 맞아야 하는 달이다. 긴 밤에 그믐달이 손톱만큼이나 남았을 때 손을 호호 불어가며 빨래를 하고 떡살을 담그고 차례에 올릴 제수를 장만한다. 원근에 손님들을 수대로 파악해서 떡국을 준비하고 청주도 미리 담궈야 한다. 그러나 없는 집안에선 속수무책으로 그믐달 보며 흐느끼는 아낙네를 보아야 했다. 떡가래는커녕 당장 먹을 죽거리도 없는 처지는 하염없이 그믐달처럼 슬픈 섣달일 뿐이었다.

다시 농가월령가를 보자.

(전략) 콩 갈아 두부하고 메밀쌀 만두 빚소/설날 고기 계를 믿고 북어는 장에 사서,/납평일(臘平日)에 덫을 놓아 잡은 꿩 몇 마리인고./아이들 그물 쳐서 참새도 지져 먹세./깨강정 콩강정에 곧감 대추 생밤이라./술독에 술들이니 돌 틈에 샘물소리 같고,/앞뒷집 떡 치는 소리는 여기도 나고 저기도 나네. 후략...

설날은 가장 큰 명절이다. 베에 물감도 들이고 옷을 지어 모두 새옷으로 설빔을 장만한다. 떡 외에도 두부, 만두, 어물들을 준비해 놓아야 한다. 납평일(臘平日)은 천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날인데 동지를 지나 세 번째 미(未)날이다. 이날 육류들을 준비하는데 그중 꿩이 으뜸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가 지배이념이 되자 양반들은 너도나도 소고기를 먹기 시작 했다. 허균은 미식가였다. 청탁을 넣어 맛있는 음식이 나는 고장으로 발령받기를 자주했다. 그 덕분에 조선의 요리백과사전인 도문대작(屠門大嚼)이 나왔다. 절간 앞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고기를 뜯는다는 다분히 불교를 얒잡아 보는 제목이다. 그러나 소는 농사일을 해야 하기에 국법으로 자주 도축을 금지해서 대용 고기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생치(生雉) 곧 꿩고기와 개고기였다. 설에는 개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냥꾼 중에 꿩만 잡아서 생계를 이은 사람도 있을 정도니 그 수요가 만만치 않았음을 말해준다. 일반적으로 농가에서는 눈이 오면 인가로 꿩이 오는 습성을 이용해 눈을 일정부분 치우고 꿩덫 주위에 콩 등을 뿌려 꿩을 잡는다. 음식으로는 꿩구이와 꿩조림을 먹었고, 꿩고기와 뼈를 다진 소를 넣은 꿩만두, 꿩떡국이나 꿩국을 먹고, 꿩김치, 꿩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이후 꿩고기의 수요에 공급이 달리자 닭으로 대신했는데 그것이 “꿩 대신 닭”이란 속담으로 남았다.

섣달은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란 절기가 들어있다. 소한은 양력 1월 7일이고 대한은 1월 22일이다. 태양이 황경을 300도 돌아온 지점으로 24절기 중 마지막이다. 삼동(三冬)중에 삼동인 섣달에 소한은 얼어 죽을 듯한 추위가 찾아온다. 음력의 오차를 벌충하려고 24절기를 만들었지만 북반구보다 다소 낮은 지역인 한반도 중부 이남은 소한이 훨씬 추운 날이다. 대한은 그로부터 보름이나 지나야 한다. 그리고 보름 지나면 입춘이다. 그래선지 “대한이 소한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우스개소리가 생겨났다. 올해는 설과 대한이 같이 들어 있어 설날이 따듯할 것으로 관측 된다. 대한날이 추운적이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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