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추위에 설 늙은이 얼어죽는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평택시민신문] 12월에 접어들면 벌써부터 연말 분위기가 된다.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고 구세군 냄비도 요소요소에 등장한다. 농촌에서는 한가한 틈에 온천욕이다 회식이다해서 몰려다니고 마을 대동계는 물론이고 바르게살기, 자율순찰대, 의용소방대, 작목회, 후계자 모임에 동창회까지 웃고 마시고 떠들어 대니 12월은 모임에 나가는 날이 더 많은 게 현재 농촌사람들의 모습이다.

아무리 농한기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많은 모임을 다 소화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리마다 잠깐씩 앉았다 일어서는 경우가 많다. 농한기가 농한기가 아닌 탓이다. 축산업종사자들은 일 년 사계절이 똑같이 돌아가고 비닐하우스는 겨울이 더 바쁜듯하다. 작은 햇빛이라도 좀더 받도록 조정해야 하고 온도 관리도 제법 신경 쓰이는 일이다. 그러니 요즘 농민들은 농한기가 없다는 편이 맞는 말인 듯하다.

“동지에 개딸기”라는 속담이 있다. 옛날엔 한겨울에 딸기는커녕 개딸기도 구할 수 없었다. 그러기에 어떤 일이 불가능함을 이르는 속담이다. 그런데 지금은 동지에 딸기를 따는 시절이 되었다. 물론 석유화학농업이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비닐을 두 겹, 세 겹 씌우고 석유를 태워 온도를 올려주어야 한다. 딸기 하나 먹으면서 석유를 마시고 있는 것이다. 석유가 고갈돼 가고 있다는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우리는 딸기를 비롯한 채소와 과일을 그 방법으로 얻는다. 그러니 이제 “동지엔 딸기”를 이라고 판매에 열 올려야 하는, 그래서 속담도 바꿔야하는 일 까지 생기게 됐다.

보통 우리네는 음력 11월 달을 동지달이라고 한다. 동지를 아세(亞歲)라고 해서 섣달을 지나고 나면 설이기에 설전(前)의 설인 셈이다. 그 기간은 밤이 길기에 묶어서 “동지섣달 기나긴 밤”이라고 했다.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된다. 대설(大雪)은 태양의 황경이 255°인 날로 대개 양력 12월 7~8일 무렵이다. 동지(冬至)는 태양의 황경이 270°위치에 있을 때로 양력 12월 22일경이다. 일 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대설 무렵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하나, 실제로 눈이 오는 날은 많지 않으며, 본격적인 추위는 동지 무렵부터 시작한다. 농촌에서는 대설 때 눈이 많이 내려 보리밭을 덮으면 보리농사가 풍년이라고 예측했다.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 11월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바람 불고 서리 치고 눈 오고 얼음 언다 가을에 거둔 곡식 얼마나 하였던고

몇 섬은 환하고 몇 섬은 왕세하고 얼마는 제반미요 얼마는 씨앗이며

도지도 되어 내고 품값도 갚으리라 시곗돈 장릿벼를 낱낱이 수쇄하니

엄부렁 하던 것이 남저지 바이없다 그러한들 어찌 할꼬 농량이나 여루리라

콩기름 우거지로 조반 석죽 다행하다 부녀야 네 할 일이 메주 쑬 일 남았구나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 두소.

동지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과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하니 내년 절후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루하다. 후략

 

농사를 지어 빌린 쌀 갚고, 세금내고, 종자할 것 남기고, 소작료내고, 일꾼 품삯갚고 나니 아침엔 밥이요, 저녁은 죽을 끓여야 하는 농부들의 고단한 삶이 그대로 나타난다. 막말로 차 떼고 포 떼고 졸까지 떼고서도 그걸 다행이라하니 지금으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원래 농사를 짓고 모든 계산을 하고 나면 장(醬)값이 모자란다고 했다. 결국은 농민들의 등골이 빠진 결과물이라는 말인게다. 그래선지 이시기에는 메주를 쑤어야 했다. 논두렁에 심은 콩을 털어서 노랗게 삶은 콩을 절구에 찧어 메주덩이를 만들고 처마 밑에 매달아 발효를 시켜야 한다. 그래야 내년농사에 나오지 않는 장값을 감당할 수 있다.

메주는 특산식품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음식이다. 이웃나라들이 청국장을 만들어 먹지만 메주처럼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메주를 통해 발효된 된장과 간장이 생산되는 것이니 어디에도 없는 음식이지 않은가. 삼국지위지동이전에 고구려에서 장양(醬釀)을 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양은 장담그기· 술빚기 등의 발효성 가공식품을 총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고구려에서는 장담그기를 잘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된장(豉)은 삼국사기에 신문왕 폐백 품목에 등장하며 해동역사에도 발해에서 된장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즉 백두산을 중심으로 사방천리가 콩밭이었다. 수많은 야생콩이 기록된 것으로 봐서 이곳이 콩(豆)의 원산지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콩을 이용해 장을 담궜으니 우리는 필시 콩의 민족이 분명하다. 그래선지 콩두(豆)자가 제기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인데 콩을 뜻하는 것은 한자가 만들어진 시대 이전에 이미 콩을 제물로 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렇게 콩의 재배 역사가 오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우리 콩농사가 망해버려서 미국에서 들여오는 대두(大豆)로 메주를 쓰지만 우리는 메주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된장국으로 뼈를 키우고 간장으로 피를 만들었으니 우리네 삶이 이토록 고단해도 견디며 살아낸 것 아닐까.

음식이야기를 하니 동지팥죽도 절기 음식 중 빼놓을 수 없겠다. 팥죽은 늘 먹는 음식은 아니었고 절기 음식이다. 신과 함께 생활의 전부가 영위되던 시절 동지가 되면 팥죽을 쑤어 여기저기 뿌렸다. 천지 사방의 악귀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하는 벽사(辟邪)행위였다. 팥죽은 붉은 색이 나기에 붉은 색은 귀신을 쫒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팥죽에는 새알심을 넣는데 이 새알심을 나이만큼 먹어야 다음해를 맞이할 수가 있다고 했다. 사실 팥죽을 먹는 것은 벽사보다는 건강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야채를 많이 먹지 못하는 겨울철 비타민과 미량의 미네랄을 섭취하여 겨울을 편히 나야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팥은 종기를 삭히고 몸안의 독소를 빼내는 효과가 있기에 동지에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짓날은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서 밤이 길다. 따라서 양기는 죽고 음기가 성행하는 날이다.그래서 나온 이야기가 “동짓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한다. 어린 날 잠을 자지 않으려 애쓰다 잠들곤 한 기억이 있다. 이렇게 음기가 성한 날 반드시 귀신이 찾아온다. 야차라는 귀신인데 불교에서는 배고픈 귀신이지만 민속에서는 신발을 훔쳐간다는 귀신이다. 그래서 동지날은 신발을 감추어야한다. 신발은 사람들의 정체성이라 생각하기에 그것을 야차가 훔쳐가면 사람노릇을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야차는 물건을 헤아리기를 좋아하는데 문지방에 체를 걸어두면 체 눈을 세는데 아무리 귀신일지라도 세다가 어디까지 셋는지 헷갈려 다시 세고 세다가 다시 세는 통에 그만 밤을 새우고 돌아간다고 한다. 민속에서는 귀신조차도 해학적으로 풀이하고 대처방법을 제시한 듯하다.

올해는 동지팥죽이라도 쑤어서 벗들과 함께 나누며 동짓날을 꼴딱 새워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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