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언
평택미래전략포럼 이사장

[평택시민신문]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내기리 375번지는 나의 본적지이다. 나의 아버지의 직장이 서울이었기에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방학 때가 되면 내기리 시골집에 내려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여름과 겨울을 보냈다. 근처에는 큰아버지 댁도 있어서 형님들이 내려와 계셔서 형님들과 시골에서만 할 수 있는 많은 놀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특히 집 뒷문 밖의 텃밭에는 수박, 참외, 오이, 옥수수 등 여러 과일들과 채소들이 자라고, 그 곳에 원두막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그 곳에서 우물에 넣어 놓았던 수박을 먹는 재미가 지금도 아련히 느껴진다. 비가 올 때면 원두막 안의 나만의 포근한 공간에서 바깥으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즐기곤 했었다. 비가 그치면서 볏짚 원두막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땅에 오목하게 물이 고인 곳에 떨어지는 물 소리가 정말 아름다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두워지며 사랑방에 등잔불을 밝혀 놓고 동네 어른들이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하시면 들으며 세상 예기를 듣고, 거의 매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연속극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여름에 앞문 앞의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보면 밤하늘에 은하수가 척 걸려 있어 견우성과 직녀성을 찾으며 신기해하였다. 아마도 내가 천문학자가 된 것은 이러한 밤하늘의 경험이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나의 어린 시절이 깃들여진 내 고향의 멋진 초가집은 평택항의 개발로 없어지고, 지금은 그 집이 있던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전깃불조차 들어오지 않았던 곳인데 그리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고, 추수 때에는 황금물결이 넘실대던 곳이었다. 정년퇴임을 하고 난 후에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곳이 이 시골집이고, 지금 그 집이 남아 있다면 아마도 그 집에 내려와 시골의 삶을 즐기고 있으리라.

마침 평택미래포럼의 이사장을 맡으면서 내 고향이 포함된 평택이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커지고 발전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나의 고향은 평택항이 들어서고, 부근에는 미군부대가 들어서고,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정착하는 곳이 되었고, 삼성과 같은 전자 산업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는 많은 젊은 인구들이 유입되어 50만이 넘는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시골에서는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나이 드신 분들만이 농사를 지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내가 보는 평택 지역은 더 이상 그러한 도시가 아니다. 이제 평택지역은 활기와 발전과 도약을 잠재하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잠재가 밖으로 뿜어져 나오려면 이 평택은 복잡계가 되어야 한다. 자연에서의 복잡계는 안정된 것과 혼돈된 갈등이 혼재되어 있는 복잡한 계이다. 이러한 계는 에너지를 사용하고, 정보를 생산하여 공유하면서 안정된 것들과 혼돈된 것들이 새로운 것을 창발해 낸다. 평택에 가장 필요한 것들은 지금 무엇일까? 얼핏 스치고 지나 가는 것들이 교육, 의료 시스템, 문화, 환경 문제, 다문화 등이다.

이러한 분야는 서로 얽혀 있고, 답을 내기가 어려우며,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평택이라는 공동체가 복잡계라면 오히려 여러 갈등과 혼동, 그리고 안정된 룰이 함께 어울어져 창발된 새로운 평택이 만들어지리라 생각된다. 나의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좋았던 옛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고향의 옛 모습으로 인도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내 고향이 새로운 모습으로 창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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