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라
미술심리상담사

[평택시민신문]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기분 좋아지는 주문을 외우며 주전자를 레인지에 올린다. 빨강 머그잔에 커피를 넣고 '치이익 치익' 팔팔 끓은 스테인리스 주전자의 물을 따랐다. 블라인드를 거두니 나무 탁자 온도가 따끈해졌다. 말랑해지는 풍경에 나를 포함시키고 싶어서 책을 집어 와 앉았다.

언덕을 오르는 빨강 자동차, 차창 밖으로 손 흔드는 아이, 파란색 집 옆에 서 있는 여자와 삽을 든 남자. 오토바이를 끌고 가는 청년과 하얀색 개. 모리사와 아키오의 <무지개 곶의 찻집> 책의 표지다.

‘에쓰코’ 씨는 일본 치바 현 한적한 해안 절벽 끝에 오래된 듯 편안한 느낌의 파란색 목조 건물 ‘곶’카페의 여주인이다. 카페엔 바다가 보이는 큰 창이 있다. 벽에는 창밖 풍경을 그린 그림 두 점이 걸려있으며 테이블 두어 개, 목제 선반 위에 빽빽이 꽂힌 CD와 오래된 LP 판, 적자색 괘종시계, 양철 굴뚝이 달린 장작 난로가 있다. 그리고 한 쪽 앞다리가 없는 개 ‘고타로’가 있다. 책의 각 장마다 음악 하나씩 소개되는데 읽는 동안 이 음악들이 정말 궁금해진다.

제1장 봄 ‘어메이징 그레이스’

며칠 전 아내의 장례를 마친 젊은 남자는 도예가다. 어린 딸의 소원을 들어주려 무작정 무지개를 찾아 집을 나섰다. 우연히 들른 ‘곶’ 카페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어메이징 그레이스’란 음악을 듣는다. 카페 안에 걸린 그림에서 무지개를 발견한 딸 노조미는 엄마에게 느끼던 ‘행복의 두근두근’을 경험한다. 남자는 에쓰코 씨의 말처럼 딸 노조미가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혜)임을 깨달으며 아내 잃은 상처를 점차 치유해 간다.

“나는 이미 기나긴 터널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부분에선 먹먹함이 가시지 않았다. 다 식은 커피를 레인지에 데워 한 모금 마시고 두 번째 장을 읽기 시작했다. 특이하고 예쁜 찻잔에 담긴 에쓰코 씨 커피 맛의 비결은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 주문이다.

제2장 여름 ‘걸즈 온 더 비치’

'이마겐'은 진로 고민 중인 대학생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곶 카페에서 도움을 받는다. 이마겐은 구직활동 대신 작가가 되기로 한다. 에스코 씨는 이마겐과 미도리에게 두 잔의 아이스커피와 '걸즈 온 더 비치'를 틀어준다. 마침내 청년은 첫 작품으로 무지개 곶 카페의 단골손님들 이야기를 쓸 생각이다.

제3장 가을 <’더 프레이어’>

생활고를 버티다 못해 카페를 탈러 온 도둑. 프로 칼갈이는 카페 창을 넘다 들켜 칼로 위협하려는데 카페 안 신비로운 음악 ‘더 프레이어’를 듣는다. ‘어서 와요’라며 태연히 커피를 권하는 에스코 할머니.

제4장 겨울 ‘러브 미 텐더’

단골손님 다니 씨는 건설 회사 중역으로 오랫동안 에쓰코 씨를 사랑하고 있다. 늘 무지개가 그려진 그림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에쓰코 씨에게 고백 못 하는 대신 ‘러브 미 텐더’라는 곡을 신청하곤 한다.

제5장 봄 ‘땡큐 포 더 뮤직’

조카 고지 씨가 3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공들여 문 열게 된 카페 <블루 문>엔 블루 계열 가구를 들여놓았다. 20년 전 옛 밴드 멤버를 모아 우여곡절을 끝에 ‘블루 문’이란 곡을 오픈 기념식에서 연주한다. 열정을 잃지 않으면 언제든 꿈은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6장 여름 ‘곶의 바람과 파도소리’

“.. 여보, 언제쯤 나한테도 보여 줄래요?”

에쓰코는 남편의 묘소에 다녀온 후 맑고 투명한 풍경 소리에 눈을 감는다. 에쓰코 씨는 그림의 풍경이 보이는 곳에 큰 창을 만들고 줄곧 무지개가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큰 폭풍이 지나간 뒤 두려움의 끝에서 이른 아침을 마주한다. 수십 년간 기다리던 무지개를 저녁놀이 아닌 아침놀에서 발견하는 순간. 에스코 씨는 ‘행복의 두근두근’을 느끼게 된다. 에스코 씨는 다시 ‘맛있어져라~맛있어져라~’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잔잔한 감동이 가시지 않는 따뜻한 책이다. 가능하다면 무지개 곶 카페에 가보고 싶어진다. 대형 커피점이 유행인 요즘 더욱이 조용하고 편안한 찻집을 찾아가고 싶어진다. 나도 에스코 씨처럼 주문을 외워볼까 한다.

“내 안에서 좋은 것 찾기.”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이렇게.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딱 맞는 음악과 맛있는 차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