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추위에 설 늙은이 얼어죽는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평택시민신문] 불현 듯 달력은 11월하고도 입동절을 맞았다. 들판은 하얗게 된서리가 내렸다. 된서리는 동절기 작물을 제외한 풋거리 식물을 한 번에 고사시키고 만다. 바랭이도 쑥 이파리도 금세 까맣게 데쳐지고 만다. 그래서 “서리 맞은 호박”이라는 속담도 생겨났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말이다. 본래는 앞에 말이 있으나 여성 비하적 이기에 쓰지 않는다. 앞에 말을 쓰지 않아도 전달이 되는데 굳이 쓸 필요가 있는가.

입동절인 만큼 아침 바람이 호되게 차다. 예년 기온 이하인 탓도 있지만 필자의 나이 탓도 있겠다. 옛말에도 “입동추위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늙은이들은 추위에 단단히 대비를 하지만 장년도 아니고 노년도 아닌 애매한 나이의 설늙은이는 추위에 대비를 하지 않아 얼어 죽는다는 말이다. 입동추위가 그렇다는 말이다. 갑자기 찾아든 한기는 엄동보다 혹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간 손을 부비며 장갑 생각이 날정도로 입동추위를 겪고 있다.

옛날에야 입동추위가 한 성깔 했지만 요즘은 입시한파라고 하는 것이 한 성깔 하는데 11월 중순경에 수능 시험이 있고 그날 한파가 찾아 올거라는 예보가 있는걸 보면 요즘추위의 대명사는 입시한파인게 분명하다. 두꺼운 외투로 중무장을 하고서 교문 앞에서 하얀 입김을 불어대며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쩌면 당사자인 입시생보다 더 떨어야 하는 학부모들에겐 반갑지 않은 손님이 분명하다.

입동이 되면 전후로 5일 상관에 김장을 하면 맛이 좋다고 한다. 요즘은 김치냉장고의 보급으로 김장을 서둘러 하고 있으나 이는 편의성에서 비롯된 일일 뿐이다. 김장의 적정 발효온도인 영하 1도와 김장의 시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추운 날 허리도 펴지 못하고 김장을 해서 장독에 담아 묻어두는 것이다. 올해는 태풍 링링 부터 세 번이나 태풍이 한반도를 지나가는 바람에 김장배추농사가 시원찮다.

김장은 상고시대 농경생활과 함께 시작되었다. 주로 짠지 같은 절임류의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주 지역을 비롯한 한반도의 겨울은 길고도 길다. 긴 겨울 비타민과 무기질의 섭취는 생존의 필수품인데 야채를 섭취하는 방법이 김장이었다. 계절 변화가 뚜렷하여 다양한 채소를 즐길 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생산되지 않고 저장도 어려워 건조 처리나 소금 절임 등 가공처리에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였다. 이것이 오랜 시간 변천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김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김치는 채소의 절임과 담금에다 갖가지 향신료와 양념, 고명과 젓갈을 혼합하고 맨드라미나 고추로 색깔까지 가미하여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자적인 식품으로 발전하였다. 김치는 우리나라 특유의 채소발효식품으로 전 세계에 보급되고 있으며, 이제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김치 특히 김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고 한다.

‘김치’는 표준어 이고 ‘지’는 일부지방 언어이다. 그러나 현재도 남아있는 짠지, 싱건지, 오이지들의 지가 김치를 이르는 우리말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김치는 한문으로 출발해서 굳어진 우리말 이라는거다. 즉 침채(沈菜,소금에 담근 채소)가 딤채로 되고 이것이 김치로 변했다는 주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우리이름으로 세계에 알렸으니 정성들여 지켜가야 할 말이다.

요즘 김장은 주로 배추를 이용한다. 맛도 모양도 이전 것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특히 고춧가루의 문제다. 고추는 임진왜란 이후에 도입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추를 향신료로 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강하다. 특히 최남선의 주장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말이 있다. “고초당초 맵다하기로 시집살이보다 더 매울까?” 여기서의 고초는 고초(苦椒)일 것으로 추정된다. 고추를 한자로 초(椒)로 썼고, 여기에 ‘맵다’는 뜻의 ‘고(苦)’가 붙어 고초(苦椒)가 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품종으로 당초(唐椒), 호초(胡椒), 번초(番椒)가 있다. 당초는 당나라 시절의 고추이고 호초는 청나라 때 먹은 고추일 것이다. 이것들이 일반적으로 통털어 고추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최남선이 주장하는 우리 고추가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또 지봉유설에 왜개자(倭芥子)로 나온 것을 고추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고추의 전래 문제를 확증하기 위해서는 고문헌 사료 조사 분석과 유전자다양성 조사, 생물학적 조사연구 등 다각적인 연구와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농가월령가 10월조를 보자.

 

시월은 맹동(孟冬)이라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공(農功)을 필하여도/ 남은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마저 하세.

무우 배추 캐어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鹽淡)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도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假家)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무우 아람 마름도 얼잖게 간수하소.

 

입동과 소설이 드는 11월은 단풍의 계절이다. 특히 올해는 기온차가 심한 가을이라서 단풍이 색이 곱다. 아직 내장산 단풍이 절정은 아니지만 전국에서 몰려온 단풍객들이 더 진한 가을 단풍을 연출하고 있다. 소설(小雪)이 되어야만 겨울로 드는데 농가월령가는 시월이 맹동(孟冬)이라하니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김장을 입동 전후에 한다는 것은 다름이 없는 일인데 농사일이 끝나는 시기는 아직 이르다. 지금이야 모두 기계로 수확을 하니 들에는 하얀 볏짚을 말아놓은 속칭 공룡알만 들에 가득하지만 옛날에는 아직도 논두렁에 말라가는 볏단들이 서리를 맞아 희게 빗나고 여기저기 마당질도 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집안 잡도리를 재촉하니 계절이 앞선듯하다. 서둘러 일을 마치라는 독려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찮음이있다.

11월은 광주학생 항일의거가 일어난 달이기도하다. 1919년 2.8독립선언으로 시작된 일제 하 학생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들의 시위를 통해 3.1운동 이후 최대의 전국적인 항일민족운동으로 발전한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한 조선 여학생 희롱사건이 불씨가 되어 벌어진 이 시위는 1930년 3월까지 전국으로 확대, 194개교 5만4000여명이 참여하는 일제하 최대 학생독립운동의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만주, 간도, 상하이, 일본의 동경 등 해외로 번져나가 중국의 반일 제국주의 운동에도 깊은 자극을 준다. 그 뿐인가. 이후 한국사회의 변혁의 꼭지마다 학생들의 피가 묻어있음은 학생들의 역사적 전통이 굳게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겠다.

11월 13일은 1970년, 노동운동가 ‘전태일’이 분신자살한 날이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은 봉재공장에서 재봉사,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인 8시간 노동을 주장했다.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하는 등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운동을 주도했다. 노동운동을 주도하던 그는 11월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자살해 노동운동의 촉발을 일으켰다. 그의 죽음은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노동운동이 확산 되는 등의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켰음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또한 그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야 말로 이후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되어 수많은 노동운동가들을 지지·지원하며 평생을 보내셨다.

11월 11일은 농민의 날이다. 농민들이 추수를 마치고 농가월령가에 나오듯이 하늘에 제도 올리고 제물을 나누며 이웃들과 술 한 잔 하는 날이니 농민의 날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무슨 무슨 데이(day)가 판을 치다보니 빼빼로데이가 나와 장삿속의 세상을 보여줬고 그 대항으로 가래떡 데이가 나왔으니 이 무슨 망발인가.

귀여재에서 한 도 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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