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창비

이수경 사서
평택시립배다리도서관

[평택시민신문] 혹시 나의 특장은 도망치는 능력이 아닐까? 누구나 타고나게 잘 하는 일은 다르잖아. 그게 내 경우에 도주 능력인거지. 참 잘 도망치는 사림인 거야. 상황이 너무 나빠지기 전에, 다치기 전에, 너덜너덜해지기 전에 도망치는 사람. 타이밍과 속도를 조절해서 도망치는 사람. 똑같은 타르트를 삼백개쯤 만들었을 때, 스스로에게 살짝 너그러워졌어. -62쪽<효진>

어느 작가는 최근 우리 사회 독서경향이 누군가가 읽은 책을 보거나 듣는 시대라고 합니다. 정보검색도 영상사이트로 하는 시대, 놀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읽고 있나요? 당신은 읽는 존재인가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읽는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 즐거움은 공통된 이유일 것입니다. 즐거움의 양상은 독자마다 다르지만 ‘나’, ‘너’, ‘우리’의 내면, 삶의 이면을 깨닫는 문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작가 정세랑은 올해 한책 후보도서인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도망치는 능력’을 설파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삶을 긍정하고 맞부딪치라 압박하고 그렇지 않으면 패배자라 부르는 세상에 ‘도주 능력’이라는 시원한 바람길을 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발전 속도, 뒤엉킨 사회관계, 어느 때보다 우리를 쉬이 지치게 합니다. 아등바등하다 툭 놓고 싶은 순간 꼭 그것이어야 할 까닭은 없다는 메시지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집어든 책에서 만나 입속말을 하게 되는 문장들. 그 문장들이 가만가만 우리 몸과 마음이 됩니다.

적의에 대해 생각해. 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그 나쁜 입자들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비슷한 게 있다면 좋겠다고도 생각해. 간편한 에어샤워 같은 것. - 43쪽<효진>

<옥상에서 만나요>에는 물 건너온 웨딩드레스의 굴곡진 운명 ‘웨딩드레스 44’,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하지 않는 귀한 친구 ‘이혼 세일’, 무려 뱀파이어 직딩이 나오는 ‘영원히 77 사이즈’, 직딩들의 쉼터 옥상에 대한 모든 것 ‘옥상에서 만나요’ 등 아홉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야기는 자신도 모르게 서로에게 내뿜는 적의와 악의를 씻어주는 에어샤워 같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는 사람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생각하려면 책이 필요합니다. 용한 점쟁이처럼 내 속을 본 듯 그려놓은 문장들, 대략 안드로메다로 가버린 상상력으로 ‘푸흐흐’ 웃고 나니 또 살만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는“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줍니다. 그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서 같이 읽기를 권합니다. 홀로 읽기여도 좋고 같이 읽고 나누기도 좋습니다. 또박또박 스스로에게 책을 읽어주어도 좋습니다. 당신의‘옥상’은 무엇일까요, 또 어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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