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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숙의 새로 쓰는 농가월령가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 보낸다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19.10.10 15:50

[평택시민신문]

한도숙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가을인가 싶은데 연이은 태풍이 여름을 밀어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또 다른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가을에 오는 태풍은 농사에 피해만 주고 갈뿐이다. 사실 태풍은 뭉친 에너지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태평양에서 발달하는 태풍뿐 아니라 인도양의 사이클론과 대서양의 허리케인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을 파괴하지만 이는 인류역사 문명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중요하다.

대범물부득기평즉명(大凡物不得其平則鳴)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당나라의 문인인 한유(韓愈)의 송맹동야서(送孟東野序)에 나오는데 "모든 사물은 평안하지 않으면 우는 법이다”라고 해석한다. 이 말을 설명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울다’라는 말이 눈물을 흘리며 울다와 같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균형이 맞지 않는 상태(창문에 종이를 바를 때 네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한쪽에 주름이 진다)를 ‘운다’고 하는데 이를 모두 포함하는 ‘울다’(鳴)로 해석한다. 사람(아이들)도 뭔가 평온을 갖지 못할 때 울고 균형이 기울어도 우는 것이다.

태풍은 만물의 불균형이 만든 현상이고 이를 통해 균형을 맟추는 자연정화현상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그동안 쌓인 불균형들이 해소되어 평상으로 돌아오니 인간이 이를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것을 인간이 에너지를 뭉치게한 댓가로 보아야 한다면 인간의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를 근심하고 고민해봐야 할 일이 아닌가.

가을비가 내린다. 이렇게 가을비가 내리고 나면 날씨는 쌀쌀하고 낙엽은 떨어져 쌓일 것이다. 이럴땐 당나라 때 불우한 시인 이하의 음울하고 쓸쓸한 싯구절이 생각난다.

秋來 가을이 오니

桐風驚心壯士苦 오동에 부는 바람 사람을 놀라게 하여 괴로운데

衰燈絡緯啼寒素 꺼져가는 등잔 귀뚜라미 차가운 베를 짜듯 울어대네

誰看靑簡一編書 그 누가 대로 엮은 내 책을 보아주어

不遣花蟲粉空 헛되이 벌레가 좀먹지 않게 할까

思牽今夜腸應直 괴로운 생각에 이 밤 창자가 곧추서고

雨冷香魂吊書客 비 내려 차가운 이 곳, 창백한 귀신이 나를 조문하는구나

秋墳鬼唱鮑家詩 가을, 무덤 속에서 내 넋은 포조의 시를 읊고

恨血千年土中碧 차가운 내 피는 흙무덤 속에서 천년을 푸르구나

 

가을날엔 시 한수는 읊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쓸쓸한 날도 가을이 잖는가. 이하는 27세에 죽었다고 한다. 한시의 형태를 변화시킨 주요인물로 당시(唐詩)에선 중요한 시인이다. 또 이런 날은 단가 한번 들어보는 것도 그만한 일이다. 단가 중에 제일 많이 불리는게 사철가다. 사철가의 한대목에 가을을 이렇게 노래한다.

“여름이가고 가을이 돌아오면/ 한로상풍 요란해도 제절개를 굽히지 않는/ 황국단풍도 어떠헌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돌아오면/ 낙목한천 찬바람에 백설만 펄펄/ 휘날리어 은세계 되고보면/ 월백설백 천지백허니 모두가 백발의 벗이로구나/ 무정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이 내 청춘도 아차 한번 늙어지면/ 다시 청춘은 어려워라.

대중가요에도 가을을 쓸쓸한 계절로 묘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용의 시월의 마지막 밤이나.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이브몽탕의 고엽, 이런 노래들은 가을을 타는 많은 사람들이 읊조려 가을을 규정 짓기도 한다.

그런데 가을이 그렇게 쓸쓸하기만 한 계절은 아니다.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 분명하다. 단풍객들이 만산홍엽과 함께 그들대로 온산을 물들여 내장산 같은 경우 떠밀려 다닌다 할 정도다. 10월에 드는 전국의 축제를 살펴보면 각 시군 지자체마다 한 두 개씩은 다 있다고 보면 될 정도로 많다. 진주남강 등 축제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축제들이 줄을 잇는데 이는 봄철보다 더 많은 축제가 있다는 말이다.

10월3일이 개천절이며 10월9일이 한글날로 이어지며 휴일이 많아지니 축제도 많을법하다. 가을 축제의 시발은 아무래도 개천행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할터인데 본래 개천절은 음력10월 달이다. 우리 민족은 음력 10월을 상달이라고 했다. 1년 농사를 마감하고 수확한 곡식으로 감사하는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이는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맥의 무천 등으로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이후 고려나 조선시대에서도 국난 때마다 단군신앙이 부활되고 사당이 건립되었으며, 여러 지역의 민속에서는 지금까지도 해마다 10월에 제천의 형식을 띤 동제를 거행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나철선사로 하여금 개천절을 10월로 정한 기본적 근거가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 가을걷이도 빨라졌다. 영농기계화, 전문화는 가을걷이를 앞으로 당기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에 맞춰 가을 축제도 나들이하기 좋은 10월로 옮겨졌다고 생각된다.

가을엔 햇살이 따끔해야한다. 온갖 곡식과 과일이 익으려면 따끔한 햇살을 받아야한다. 가을햇살도 봄이나 여름햇살 못지않은데 다만 자외선이 강하지 않다. 아낙들이 들일을 하는데 수건을 벗어던져도 얼굴이 그을리지 않을 정도로 자외선은 강하지 않다. 해서 옛말에 “봄볕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엔 딸 내보낸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는 고부갈등이 만들어낸 속담이다. 이와 비슷한 속담들이 있는데 “배 썩은 것은 딸 주고, 밤 썩은 것은 며느리 준다”. “죽 먹은 설거지는 딸 시키고, 비빔그릇 설거지는 며느리 시킨다.”등 수도 없이 많다. 그만큼 고부갈등은 사회갈등으로 확장된 측면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고부갈등이 생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조 중기까지만 해도 장가를 들었다. 남자가 여자의 집에 들어가서 길게는 아이를 낳아서 다 키울 때까지 처가집에서 살았다. 그러니 장모와 사위간의 갈등이 심했다. 그래서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안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조선중기 이후 성리학의 원칙들이 확고해지면서 결혼을 한 후 3일 만에 아내를 자기 집으로 오도록 혼례풍습이 바뀐 것이다. 그때부터 '고부갈등'이 생기게 됐다고 생각한다.

10월은 초반에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이고 말경에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이는 태양의 황경이 195도(한로)210도(상강)에 달하는 지점이며 기러기가 남으로나는 등 철새들이 들고 나는 때이다. 상강에는 벌레들이 땅속으로 들어가고 겉보리를 파종해야 월동이 되는 때이다. 농민들은 추수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는 시기인 것이다.

농가월령가를 보자.

9월이라 늦가을 되니 한로 상강절기로다./ 제비는 돌아가고 떼기러기 언제 왔는가.(중략)...

습한 논은 베어 깔고 마른 논은 곧 두드려,/ 오늘은 점근벼요 내일은 사발벼라.

밀따리대추벼와 동트기경상벼라./ 들에는 조 피 더미 집 근처 콩 팥 더미,(후략)...

농가월령가만 보아도 정신이 없다. 어디가서 무슨 일을 먼저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가을걷이는 마당질이 중심이다. 벼를 베고 말려서 알곡을 털어야 가을일이 끝이 난다. 남정네들은 남정네들대로 아낙들은 아낙대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좋은 가을볕에 말려야할 것은 말리고 저장할 것은 저장해야한다. 틈틈이 새참 만들어서 가져가야지 술빚어서 남정네들 먹여야지 하루해가 금방 지나가고 만다.

10월이 사람살기에도 가장 좋은 날씨라 생각한다. 풍년은 격양가를 불러제끼게 한다. 여기저기서 꽹과리치고 흥이 넘친다. 지난 2007년 참여정부는 북(김정일)과 10.4공동선언에 합의했다. 6.15 공동선언을 확실하게 이행하여 남과북이 전쟁을 종식하고 함께 평화를 구축하자고 재차 합의했다. 지난 10년간 대북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이제 싱가포르 회담과 판문점에서의 북미회동은 이번10월 회담으로 마무리 되어질 것이다. 종전과 평화선언 그리고 대북제재일부 해제로 10월의 축제에 모든 대미를 장식하리란 기대를 해본다.

암탉이 알을 품은 지 20일이 지났는데 한 마리만 깨고 나머지는 깨질 못했다. 며칠이 더 걸릴지 실패할지 알 수 없다. 모든 섬세함과 세부적인 것들을 챙겨 알을 까는 생명의 작은 축제가 되도록 마음을 써야한다. 벼도 베야하고 고구마도 캐야하고 대추도 따야한다.

아참 늦기 전에 수세미 넝쿨에 물도 받아 마셔야겠다. 농가월령가에도 수세미 물받으라고 했으니.....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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