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에서 빨간 날이 숨구멍인 사람들에게 
명절 연휴는 고마운 손님...날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빠에게, 가장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

[평택시민신문] 가을 햇볕이 뜨겁게 내리쬡니다. 익어야 할 것들을 익히고 말려야 할 것들을 말리는, 제 몫을 톡톡히 하는 햇볕입니다. 달력을 들여다보니 벌써 9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추석 연휴를 나흘하고도 반나절 쉬고 난 남편이 지난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을 하며 달력을 봅니다. 이제 더 쉴 날이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을 담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왠지 마음이 짠했습니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까만색 날짜가 줄줄이 늘어선 달력에서 빨간 날이 숨구멍인 사람들에게 명절 연휴는 고마운 손님이다 싶습니다. 날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빠에게, 가장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아빠새》 장선환 글 그림/ 느림보

《아빠새》(장선환 글 그림/ 느림보)는 사냥을 하기 위해 거친 바다로 나간 쇠제비갈매기 이야기입니다.

파도가 일렁이는 거친 바다 위를 나는 쇠제비갈매기가 파도 속으로 내리꽂히듯 떨어집니다. 노란색 빼족한 부리에 붉은 물고기 한 마리가 물려있습니다. 사냥은 성공입니다. 그런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쇠제비갈매기의 뒤를 커다란 가마우지 떼가 쫓습니다. 물고기를 뺏어먹자는 심보이겠지요. 쇠제비갈매기가 박차듯 높이 솟아올라 겨우 따돌렸나 싶은데 이번에는 송골매가 날카로운 발톱을 펼치고 다가옵니다. 쇠제비갈매기는 이제 어떻게 될까요? 무사히 사냥을 마치고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둥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작가는 독도에 사는 쇠제비갈매기와 가마우지, 송골매, 괭이갈매기들의 생태를 오랫동안 관찰한 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고 합니다. 양 날개를 펼치고 파도 위를 날아가는 쇠제비갈매기, 한꺼번에 달려드는 가마우지 떼들의 모습이 생생합니다. 쇠제비갈매기에게 달려드는 송골매의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독도 위를 나는 갈매기 떼의 모습도 멋집니다.

이 책의 매력은 거친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의 모습을 역동감 있는 화면으로 보는 것도 좋지만겨우 한 문장 두 문장 정도의 짧은 글을 읽는 느낌을 뺄 수 없습니다. 작가는 서로 부딪치듯 위험한 비행을 하고 숨가쁜 추격에 나서는 새들의 거친 날개짓 소리나 파도 소리를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무음처리된 것처럼 이어지는 화면 속에 사냥을 나선 아빠 쇠제비갈매기를 기다리는 어린 쇠제비갈매기가 하는 말이 한 두 문장 이어집니다.

“엄마, 아빠 보여?”, “아빠가 무슨 물고기 잡아올까?”, “아빠, 빨리와!”

가마우지 떼에 쫒기고 송골매와 마주한 아빠 쇠제비갈매기 모습에 어서 먹이를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린 쇠제비갈매기의 목소리가 얹혀, 읽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쇠제비갈매기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바다 위를 날고,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잡은 쇠제비갈매기를 쫓고, 송골매가 쇠제비갈매기를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는 건 자연 속에서 늘 일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그려낸 그림 속에는 아빠 쇠제비갈매기를 기다리는 어린 쇠제비갈매기가 있습니다. 가마우지떼와 송골매에 쫒겨도 부리에 물고 있는 고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쇠제비갈매기에 오늘 일터로 나간 남편이 있습니다. 어서 고기를 잡아 돌아오길 기다리는 어린 쇠제비갈매기의 마음에 일터로 나간 가장을 기다리는 우리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 보고도 책장을 쉽게 덮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한번 한 장 한 장 찬찬히 들여다보게 합니다. 좋은 그림과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남기는 좋은 그림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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