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에 밭에 나가지 마라

전국농민회 총연맹 고문

[평택시민신문] 어정칠월 건들 팔월이라는 말이있다. 칠월은 어정어정 보내는 한가한 달이고 팔월은 가을일이 다가오니 휙 지나간다는 듯에서 건들 팔월이라 한다. 그렇게 어정거리는 칠월(음력)은 벌써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말복과 함께 연이은 태풍에 고개를 꺽이고 말았다.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가을이 들었노라고 떠들어 댄다. 입추가 8월8일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감이 있다. 야간에 기온이 내려가 밤잠을 설치는 열대야가 없어졌을 뿐이다. 낮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밤낮의 기온차이가 많이 나야 곡식이 여물고 과일이 잘 익는다. 쨍쨍한 햇볕에 농부들 머리는 벗겨지지만 이제 막 모가지가 올라온 벼들은 머리를 깊숙이 숙이게 된다.

이달에 드는 명절로는 칠석(8월7일)이 있다. 칠석은 농경민족에게 줄곧 나타나는 문화의 특징이다. 잘 아시는 것과 같이 쟁기를 끄는 소(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남으로 하나의 농경형태가 완성되는 것이다.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베를 짜서 옷을 지어 입는 일은 농경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여기에 비가 내린다면 금상첨화다.

그러나 칠석은 농경문화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관심 보다는 남녀간의 정담이 담긴 명절로 인식 된다. 옛날부터 남녀 상사나 애정시와 설화도 칠석과 관련된 것이 상당히 있다.

주(周)나라 왕자 교가 봉황곡을 울리며 신선이 되어 도사 부구공(浮丘公)의 부인과 만났다는 날이 바로 칠석이다. 또 서왕모(西王母)가 자운거를 타고 전상에 내려와, 장수를 원하는 한무제에게 불사의 선약인 복숭아를 올린 날 역시 칠석이다. 그뿐이 아니다. 양귀비의 혼이 재생하여 장생전에서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당명황(唐明皇)을 만나 “하늘에서는 원컨대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원컨대 연리지(連理枝)가 되자”고 했다고 전한다.

우리나라 <춘향전>에서 춘향과 이도령의 가약을 맺어주던 광한루(廣寒樓)의 다리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다리와 이름이 같은 오작교이다.

이렇듯 칠석은 견우성과 직녀성이 만나는 듯 보이는 무렵이라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날로 문화적 전통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설에는 칠석날이 농사의 풍흉을 결정하는 날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두부부가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야말로 콩도 심고 팥도 심고 소박하게 살았다. 특히 아내는 헐벗지 않고 사는게 꿈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욕심이 많았다. 하여 늘 많이 나오게 해달라고 밭에만 가면 신령께 빌었다. 칠성님은 남편이 많이 나오게 해달라고 하니 고민이 많았다. 도대체 얼마나 나와야 많이 나오는 건지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막 칠석이 돌아오는데 결정은 내려야 되는데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드디어 칠석날. 밭에 아내가 나타났다. “칠성님! 칠성님! 그저 이고 지고 가게 해주십소서.” 칠성님은 무릎을 탁 쳤다. 숙제가 해결된 것이다. 명확하게 아내가 이고 갈 만큼하고 남편이 지고 갈 만큼이라고 딱 정해주니 숙제가 해결 된 것이다. 소박한 부부는 그해 가을걷이는 그저 이고 지고 갈 정도의 소출이 나왔단다. 칠석날 차라리 밭에 가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었으니 칠석날 밭에 가지 말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칠석날은 가을 곡식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날이다. 그러니 칠석날의 작물 상황을 보고 풍흉을 점칠 수 있는 것이다. 농사라는 것이 하늘과 동업인지라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난 후 나머지 9할은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술이 첨단이니 4차산업이니 해도 토양을 모체로 하는 농사는 하늘의 결정에 달려있다.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이야기이면서도 농사에 미치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교훈으로 남기는 이야기다.

양력 팔월은 음력으로 7월이다.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는 대서(7.23)에서 시작해 입추 무렵 고개를 꺽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입추(8.7) 이후 말복(8,11) 까지는 야간에도 25도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처서(8,23)를 앞두고서야 더위는 물러가고 사과에 붉은빛이 돌기 시작한다.

24절기인 입추와 처서는 모두 이달의 절기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7월조를 보자.

칠월이라 초가을 되니 입추 처서 절기로다/마음을 놓지 마소 아직도 멀고 멀다.

꼴 거두어 김매기 벼 포기에 피 고르기,/낫 갈아 두렁 깎기 선산에 벌초하기,

거름풀 많이 베어 더미 지어 모아 놓고,/자채논에 새 쫓기와 오조 밭에 허수아비,

밭가에 길도 닦고 쌓인 흙도 쳐올리소./기름지고 연한 밭에 거름하고 깊게 갈아,

김장할 무우 배추 남 먼저 심어 놓고,/울타리로 진작 막아 잃어버림 없게 하소.

부녀자들도 헤아림 있어 앞일을 생각하소./베짱이 우는 소리 자네들을 위함이라.

저 소리 깨쳐 듣고 마음을 다스리소.

도시민들은 여름휴가다 바캉스다 해서 계곡으로 바다로 놀러가지만 농촌에서야 장마 뒤 잡초정리가 바쁜 시기다. 소 먹일 꼴도 베고 논두렁도 정리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료를 먹으니 소꼴 벨일은 없다. 다만 논두렁에 자라는 풀을 베는 것도 염천더위에 어려운 일중에 하나다. 절기에 맞춰 하는 일들이 달라지긴 많이 달라졌으나 김장심기는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입추가 지나면 무.배추 씨앗을 넣고 처서 전에 본밭에 모종을 이식해야한다. 어렸을 때는 광복절이 되면 배추씨를 넣느라고 매우 바쁘던 기억이 있다.

이제 더위를 처분한다는 처서를 앞두고 있다. 처서는 황경이 150도에 이르는 시점이다. 올해 처서점 즉 황경 150도가 되는 시점은 8월 23일 오후 7시라고 한다. 모기입이 삐뚤어져 사람을 물지 못한다고도 하고 더 이상 풀이 자라는 것을 멈춘다고도 한다. 그래서 처서가 지나면 벌초들을 하는 것이다.

처서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사람들이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했다. 이번에는 모기가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 낭군의 애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기 같은 해충은 없어지고 밤은 길어지고 시원한 소슬바람에 귀뚜라미가 외로움을 더해주는 가을로 가는 길목이 처서인 것이다. 밝은 달밤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심장을 끊는듯한 귀뚜라미소리나 긴긴밤 독수공방의 처자가 님을 기다릴제 울어대는 귀뚜리소리는 수많은 싯구에 등장하는 단골매뉴 아니던가.

이달은 뜨겁고 뜨거운 달이다. 차가운 감옥에서 아니 한반도가 감옥이었던 이 땅에 압박받던 민족이 광복, 해방으로 뜨거웠던 달이고, 74년이 지난 지금도 뜨겁기는 매한가지다. 우리민족의 힘으로 자주대한을 건설 하려던 꿈속에서 뜨거웠던 한반도가 이제는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 앞에 뜨겁다. 8월의 광화문은 74년 동안 그 연장선상에 있다. 청산하지 못한 일제부역자들의 준동은 다시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기지 못해 안달을 한다. 일본과의 역사전쟁이 시작 됐음에도 신식민지주의자들의 거친 주장이 광화문에 메아리 친다. 누군가는 그렇게 외쳤다. “서울에는 사람이 없소!” 그렇다. 여의도에는 우리들의 대표가 없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라져버린 서울은 아닌지... 깊은 역사적 성찰이 필요한 8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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