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여쁘게 피어나겠지요

[평택시민신문] 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남쪽으로부터 불어온 따듯한 바람이 잠자고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깨우는 중입니다. 쭈글쭈글 오그라든 채로 매달려있던 빨간 산수유 열매가 어느 사이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 노오란 꽃이 피고 있습니다. 펑!펑!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팝콘 터지듯 꽃망울이 벌어집니다. 이제 개나리도 피고 진달래도 피고, 목련도 피어나겠지요. 꽃을 보는 사람들 마음도 그렇게 화알짝, 어여쁘게 피어나겠지요.

《오소리네 집 꽃밭》이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이 있습니다.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멀리까지 날아간 오소리 아줌마 이야기입니다. 장터 마당에 떨어진 오소리 아줌마가 사람들 눈을 피해 급하게 달아납니다. 그런데도 학교 운동장 둘레에 만들어진 예쁜 꽃밭에 눈을 빼앗기고 맙니다.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오소리 아줌마는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했던 잘 가꾸어진 꽃밭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나도 예쁜 꽃밭을 만들리라 마음먹지요.

집으로 돌아온 오소리 아줌마는 오소리 아저씨에게 얼른 꽃밭을 만들자고 재촉합니다. 영문도 모르는 아저씨는 괭이를 들고 밭을 일구지요. 그런데 오소리 아저씨가 괭이질을 할 때마다 오소리 아줌마는 화들짝 놀랍니다. 괭이로 쪼는 그 자리에는 패랭이꽃이 피어 있고, 잔대꽃이 피어 있고, 용담꽃이 피어 있으니 말입니다. 오소리 아줌마는 그제야 알게 됩니다. 이미 예쁜 꽃들이 지천에 피어 있는 꽃밭을 바로 곁에 두고 살고 있다는 걸요.

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

《오소리네 집 꽃밭》은 동화작가 권정생이 1983년 빌뱅이 언덕 아래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온 후에 쓴 짧은 이야기입니다. 교회문간방에서 살던 권정생이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 살게 된 집입니다. 혼자 책 읽을 수 있고, 혼자 조용히 글 쓸 수 있으면 충분하다 했는데, 빌뱅이 언덕 아래에서 예쁜 꽃들을 덤으로 만났습니다. 《오소리네 집 꽃밭》에는 빌뱅이 언덕 아래 피어나던 패랭이꽃, 과남풀, 초롱꽃을 만난 권정생의 행복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꽃을 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스러워지는 예쁜 그림책입니다.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꽃이라면 훨씬 더 많은 시선을 끌 수 있겠지요. 오소리 아줌마가 처음 본 학교 운동장 꽃밭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잠깐 흔들리기는 했지만 오소리 아줌마는 금방 알아챘습니다. 잘 가꾸어진 꽃밭만 꽃밭이 아니라는 걸요. 너무 가까이 있어서 어여쁜지 몰랐던, 귀한 줄 몰랐지만 거기도 나를 위해 피어나는 꽃이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습니다. 어쩌면 오소리 아줌마가 회오리 바람에 날려 멀리까지 간 일이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다면 내 곁의 꽃밭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날려가 낯선 장터 마당에 떨어진 오소리 아줌마처럼 낯선 시선에 드러나는 일이 많은 3월이 지나갑니다. 처음 가는 학교,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하는 일, 조그맣게 움츠러드는 일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낯선 바람 덕분에 나만의 꽃밭을 발견한 오소리 아줌마처럼 새로운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봄날 활짝 핀 꽃을 보듯이 그렇게 발견하는 기쁨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장은주 평택한도시한책읽기 도서선정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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