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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번스타일수요 칼럼 _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19.01.09 13:28

타인을 돕기 위해 평생을 바친 헵번의 삶은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평택시민신문] ‘헵번스타일’이 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따라하는 것을 말한다. ‘헵번스타일’은 헵번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식을 줄을 모른다.

나는 처음부터 오드리 헵번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품 넘치는 그레이스 켈리나 청순미의 비비안 리가 좋았고 ‘해바라기’에 나왔던 소피아 로렌에 매혹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시절 선생님 한 분이 오드리 헵번의 광팬이었다. 선생님은 종종 ‘숏커트의 헵번스타일’ 운운하며 오드리 헵번의 청명한 눈과 아름다운 미모를 극찬했다. 말로만 듣던 헵번의 얼굴을 직접 본 것은 KBS명화극장에서였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온 그녀는 상큼함과 발랄함이 가득한 ‘인형’같았다.

오드리 헵번(1929~1993)은 벨기에 태생이다. 1929년생이므로 청소년기에 2차 대전을 겪었고 나치의 폭압 속에 숨죽이며 살았던 세대다. 청소년기 헵번의 꿈은 발레리나였다. 그녀의 날씬하고 잘록한 허리, 작고 상큼한 얼굴에서 발레리나로서의 면모가 보인다. 하지만 2차 대전은 헵번의 꿈을 앗아가 버렸다. 아버지는 나치 당원이었다. 더구나 가정을 돌보지 않아서 헵번과 그의 어머니는 공포와 굶주림에 허덕였다. 오빠는 노동수용소에 수감되었으며 삼촌과 사촌은 처형당했다. 헵번이 그의 둘째 아들 루카 도티에게 보낸 편지에는 “전쟁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살아남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났을 땐 영원히 발레리나가 될 수 없었다”고 썼다. 전쟁 후유증으로 헵번은 천식과 황달, 관절염, 자궁내막증 그리고 빈혈을 앓았다. 전쟁이 끝났고 한동안 암스테르담과 런던에서 발레학교를 다녔지만 질병과 생활고로 그만두어야 했다. 영화는 절망 속에 살아가던 헵번에게 새로운 꿈을 갖게 했다. 그는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발레처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단역을 전전하던 헵번을 일약 스타덤에 올린 영화가 ‘로마의 휴일(1953)’이다. 세상 물정 모르지만 순수하고 예쁜 공주역은 오드리 헵번을 돋보이게 했고 세상에 ‘헵번 스타일’을 유행시켰다. ‘로마의 휴일’ 이후 헵번은 승승장구했다. 사브리나(1954), 파계(1959),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등 수많은 명작들의 주연을 맡았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비롯해서 에미상, 그레미상, 골든 그로브, 토니상 등 세계 최고의 배우들이 받는 모든 상을 휩쓸었다.

그가 세계적인 배우인 것은 분명하지만 ‘헵번스타일’은 그의 외모와 헤어스타일, 패션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오드리 헵번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유명배우로 성장한 뒤에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헵번은 영화출연을 자제하면서 두 가지 일에 집중한다. 하나는 가정에 충실한 삶이었고 다른 하나는 나눔을 실천하는 일이었다. 헵번의 집은 스위스 레만호 근처의 톨로세나즈 수르 모르제에 있다. 관광객들은 헵번의 집을 방문하고는 크게 놀란다고 한다. 유명스타의 집이라기에는 너무 작고 소박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둘째 아들 루카 도티는 가정에서의 햅번을 ‘청바지를 즐겨 입고, 스파게티를 즐겨 요리해주며, 아들의 학교생활을 궁금해 하는 평범하고 좋은 엄마’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헵번은 평범함 속에만 머물지 않았다. 스위스에 살 때 헵번은 친구의 권유로 유니세프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 뒤로 직장암으로 죽기 직전까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한 손은 나 자신을, 다른 손은 타인을 돕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92년에는 직장암 판정을 받은 뒤에도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는 소말리아를 방문해 세계인의 감동을 주었다. 그렇게 살다 죽었다.

헵번의 아들 루카 도티는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해서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에 힘을 보탰다. 또 ‘오드리 헵번 재단’을 만들어 기아와 질병에 죽어가는 세계 어린이 구호에 앞장서면서 어머니의 유전자가 살아 있음을 보여 줬다. 헵번의 삶은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삶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한다. 새해에는 ‘헵번스타일’의 삶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지역사회의 이상과 가치관도 헵번스타일’로 바꿔지기를 소망한다. 자리를 탐하기보다 이상과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 나눔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역사회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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