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_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평택시민신문] 대학을 졸업하기 전 출판사에 취직했다. 4학년 2학기를 학교수업과 출판사 업무를 병행하다가 졸업을 맞았다. 졸업식 며칠 뒤 대학교 지도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기도 안성’ 쪽에 시간강사 자리가 났는데 가 볼 의향이 있냐는 것이었다. 마침 진로문제로 고심하다가 아무래도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흔쾌히 수락했다.

이렇게 비정규직 인생이 시작되었다. 안성에 소재한다던 학교는 다름 아닌 평택의 한광고등학교였다. 학교 측과 일주일에 2일 출강하는 조건으로 20만원을 받았다. 그것으로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비용과 밥값 그리고 방세를 지불했다. 두어 달 시간강사를 하던 어느 날 학교 측에서 다시 보자고 했다. 시간강사가 아닌 기간제교사로 전환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급료도 30만원으로 올려준다고 했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정규직을 보장한다면 수락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같은 해 동료교사들이 20여 명이나 부임했는데 학교에서 비정규직은 나 하나뿐이었다. 동료들도 나를 특별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함께 교단에 서고, 학생생활지도도 같이하고, 놀러도 함께 다녔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정규직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 담임배정이 안 되었다. 부서도 배정되지 않았다(당시는 그랬다). 상여금도 면제였고 방학 때는 급여도 나오지 않았다. ‘대리강사’였기 때문에 졸업앨범에도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교직원 신분도 보장받지 못해 어디 가서 ‘나 고등학교 교사요’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했다. 흡사 씨받이와 같은 인생, 교육계의 서자 같은 삶이었다.

우리학교에 비정규직 교사가 9명이다. 전체 49명 교사 가운데 1/5 수준이다. 이들은 젊다. 아주 젊지는 않고 상당수는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지만 나처럼 씨받이나 머슴 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다. 급여도 정해진 규정대로 받고 있고 상여금도 지급받는다. 똑같이 담임도 하고 부서 업무도 배정받아 죽을힘을 다해 일한다. 50대 중반 이상이 20명이 넘는 우리학교 실정에서 이들은 학교운영의 중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없으면 학교가 안 돌아간다. 그런데도 이들에게는 정규직과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매년 재계약을 걱정해야 하는 것. 학교 측에서 ‘내년에도 함께 일합시다’라고 손을 내밀기전에는 다시 교단에 설 수 없다는 것이 정규직과 다른 특별함이다.

사실 ‘비정규직 교사’ 증가는 교육계의 방향전환과 관련 있다. 한국 교육은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점차 줄어들고 있는 학생 수 감소에 대처하는 문제, 그리고 사회경제적 변화에 적합한 인재양성이 그것이다. 교육은 이 같은 과제에 직면하여 학급 당 인원수를 줄이고 학급 수 증가도 억제하려 하며, 창의적 교육을 위해 학생선택의 기회를 확대하고, 수준 별 수업, 이동식 수업을 장려하고 있다. 또 이에 따른 교사 수 감축에 대비하여 신규교사 선발을 줄이고 상당수의 빈자리를 기간제 교사로 채우고 있다. 이렇게 해서 교육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대처하겠다는 복안이다.

사회 환경과 교육계의 변화 추세로 볼 때 정부 정책은 충분히 납득된다. 정부정책을 따라야 하는 학교 측 입장도 이해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교육계에서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 7, 8년씩 일하다가 30대 중반을 넘어선 교사들에게는 이 같은 현실이 매우 아득하고 암담할 현실이다. 향후 흐름으로 볼 때 이들이 사립학교 정규직 교사로 채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렇다고 공립학교 임용고사를 준비하려 해도 나이도 많고 비용도 많이 들어 선뜻 응하지도 못한다. 10여 년씩 교단에만 서다가 교육계를 떠나는 것도 쉽지 않다. 전직은 더욱 어렵다. 그러다보니 매년 연말이면 학교 측 눈치만 보고, 여의치 않을 경우 새로운 부임지를 찾아 세상을 주유한다. 우리학교 동료 교사(기간제)는 연말이면 우울해지고 수업이나 학생지도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에 집중하다가도 ‘어쩌면 곧 떠날지도 모르는데 열심히 해서 뭤하나’라는 자괴감도 든다고 말한다. 교사가 되겠다는 학생들 앞에서 당당하게 교사로서의 삶과 가치도 강조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도 선뜻 결혼하자고 손을 내밀지 못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간제 교사들은 대부분 결혼 적령기를 넘겼다. 일부 결혼한 교사들도 가정과 직장에서 당당하지 못하다. 3년쯤 우리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던 선생님은 ‘내년에 함께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교육현실의 변화 속에서 이들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방안은 없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도 교육계는 비껴나갔다. 교육계 선배로서 이들을 대할 때마다 미안하고 면목이 서지 않는다. 필자는 우선 기간제 교사 5년 이상 근무, 만 35세 이상의 교사만이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출구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정규직화 하면 결혼도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출산도 장려되며, 소득증가에 따른 소비증가도 이뤄지는 등 우리사회에 긍정적 효과가 클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기관은 정부밖에 없다. 사회의 관심과 응원도 필요하다. 함께 사는 세상,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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