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희 선양사업은 평택을 넘어서야 성공한다

 

한국 소리터 음악전문도서관 설립은 ‘국제음악도시’로 도약하는 발판

지영희가 이끈 최초의 국악관현악단 ‘서울특별시립국악관현악단 창단식 및 기념연주회’ 사진 (1964. 3. 2. 서울 시민회관, 지영희 지휘) 지금은 국악관현악 연주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이 당시 무대 위에서 서양의 오케스트라와 같이 여러 대의 국악기가 보면대에 놓인 악보를 보면서 함께 연주하는 모습이나 지휘봉을 들고 지휘하는 모습은 매우 생소한 장면이었다. 󰡔지영희평전󰡕, 267쪽.

[평택시민신문] 지난 2일은 고(故) 노동은 교수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노 교수는 󰡔지영희평전󰡕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 음악사와 음악가 연구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남긴 음악학자다. 또한 음악 도서 2만5천여 점, 유성기 음반(SP)·악보·사진 자료 3만여 점 등 방대한 컬렉션을 남겼다. 그중에는 경기음악 관련 자료도 다수 포함돼 있다. 평택시는 음악전문도서관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 자료의 이관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평택시가 진행한 ‘지영희관광활성화 연구용역’의 책임연구원을 맡았던 단국대학교 김수현 연구교수가 ‘노동은 컬렉션’의 가치와 활용 방안에 대한 글을 기고해 와 이를 2회에 걸쳐 연재한다.

 

평택시는 지난 10월 10일 평택호 관광단지 내 한국소리터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근현대음악아카이브관을 조성한다는 야심찬 사업계획을 밝혔다. 이 사업은 ‘국악 현대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평택 출신 지영희 선생의 위상을 음악사 차원에서 재정립하고, 국내외 근현대음악사 자료를 수집·보존·활용해 평택시가 국제음악도시로 발돋음하기 위한 기초 컨텐츠로 삼기 위한 것이다. 이미 지난 5월 ‘지영희 문화관광사업 연구용역’을 통해 사업 제반 여건을 충실히 검증받은 바 있다.

 

근현대음악 아카이브 조성 사업 추진

다시 수집되기 어려운 ‘노동은 컬렉션’

현재 예상되는 수집자료는 국내 최대 규모인 7만여 점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아카이브관 조성을 위해 평택시는 한국민족음악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던 고 노동은 교수가 평생 모은 자료를 기증받고, 일부 유물의 구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를 시작으로 여러 원로 음악학자가 소장한 국악자료의 이관, 북한 측이 소장하고 있는 민요, 판소리 등 전통음악의 조사 및 입수도 순차적으로 추진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음악자료관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장선 평택시장은 “주한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에 우리 민족 고유의 혼과 같은 음악자료들이 모이는 것은 운명적인 일”이라며 “앞으로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평택을 민족음악의 성지이자 남북문화교류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음악학자로서는 대단히 기쁘고 흥분되는 사업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모든 음악학자들의 숙원이었던 아카이브관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평택시의 용단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특히 평택시가 여러 곳에 흩어져 보관되어있는 ‘노동은 컬렉션’을 온전한 형태로 다 수집해 보관한다면 아카이브관 조성사업은 큰 어려움이 없이 추진될 수 있고, 향후 이 자료를 잘 활용하면 다양한 기획전시회 개최와 전국적인 음악가 교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노동은 교수와의 인연으로 그가 남긴 자료를 모두 살펴볼 수 있었다. 그의 컬렉션에는 고악보 조선음률보, 조선박람회 사진첩, SP음반 아악정수 등의 희귀자료 수 십 여점과 일제강점기 창가집, 악보집, 음악교과서, 각종 공연 팜플렛, 친일·항일음악가들의 친필악보 등 수 백 여점의 원본자료 등 조선의 근대화 초기부터 현재까지 우리 음악 발전사의 토대를 밝히는 역사적 사료들로 가득하다. 특히 일제강점기의 원본 도서와 각종 악보자료들은 이제는 구입하거나 입수하기가 힘든 희귀 자료들이다.

 

보면대가 놓인 단 위에 서서 지영희가 두루마기를 입고 지휘봉을 들고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동은 교수와 지영희, 평택시의 운명적 만남

노동은 교수는 음악교육자이면서 근대음악사 연구를 개척한 선구적인 학자이다. 근대음악사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시절부터 한국의 근대음악사를 조명하면서 여러 연구 분야를 개척하여 1994년 󰡔한국근대음악사󰡕(한길사)로 ‘단재신채호상’을 받을 정도로 근대음악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또한 그동안 양악 중심, 국악 중심, 대중가요 중심 등 각각 한 분야에서만 서술하는데 그쳤다면, 노 교수는 근대음악사 연구의 방향에서도 한국음악, 서양음악 모두를 아울러 포괄적으로 연구하였다. 노 교수의 음악연구는 전통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들어온 서양음악이나 식민지를 겪으면서 들어온 일본음악이 어떻게 우리의 정서 속에 자리 잡게 되었고 그 속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음악이 어떻게 그 전통을 지켜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음악에서 근대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를 연구했다는 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가 근대음악사의 주제로 삼은 영역은 개신악학, 동학음악, 신청음악, 경기음악, 기학음악, 실학음악, 내포음악, 북한음악, 독립음악, 친일음악, 만주음악, 항일음악 등 실로 다양하며 이 모든 연구 영역에서 그야말로 개척자 역할을 하였다.

또한 그는 근대 역사 속에서 중요한 음악가들을 수없이 발굴해 냈는데, 이은돌, 김순남, 이건우, 윤이상, 안기영, 채동선, 계정식, 홍난파, 현제명, 안익태, 정률성, 이의성, 김희조, 한성준, 심정순, 지영희, 함화진, 김창조, 백낙준, 안기옥, 정남희, 박동실, 모흥갑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연구하였을 뿐 아니라 평전까지 낼만큼 정성을 들인 음악가가 서양음악의 김순남과 국악·민속음악의 지영희였다.

지금까지 지영희 연구는 지영희 사후 그렇게 크게 주목받고 있지 못했으나 지영희학술대회를 처음 주도하기 시작하여 몇 회에 걸쳐 연구 분위기를 만든 노 교수의 역할이 컸다. 그는 그 자신의 연구를 집대성하여 󰡔지영희평전󰡕을 냄으로써 지영희 선양산업의 근간이 되게 했으며 최근 몇 년간 지영희 연구를 확대시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노동은 컬렉션’이 한국소리터에 오게 된 이유는 그가 작고하기 전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여 근대 국악의 아버지로 빛나게 된 지영희의 유산이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 교수와 지영희, 평택시와의 인연은 운명적이다.

근현대음악아카이브관(음악전문도서관)은 2019년에 우선 한국소리터의 어울림동 2층에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1층에 있는 지영희국악관은 그대로 유지된다.

근현대음악사 속에서 위상 재정립해야

지영희 음악의 전국화와 세계화 가능

국악계에서 그동안 묻혀 왔던 지영희의 활동과 음악에 대한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동안 평택시와 평택문화원, 지영희기념사업회 등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중들에게 지영희 선생은 낯설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국악을 하지 않는 음악학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평택의 자랑이 되며 더 나아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음악가로 재평가되기 위해서라면 지영희 명인을 평택지역에 가둬두고 고립시키지 말아야 한다. 전국적이고 국제적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창에는 ‘판소리박물관’이 있다. 남도음악의 꽃인 판소리를 신재효가 태어난 고창의 생가터에 만든 것이다. 이 박물관의 장점은 많은 국문학자들이 참여한 점이다. 판소리가 음악의 영역이지만 판소리 연구는 국문학자들의 선구적이며 집중적인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참여 속에서 전시관을 체계적으로 알차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박물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신재효박물관’이 아니라 ‘판소리박물관’이라는 것이다. 신재효 개인이 아니라 보편성을 갖는 판소리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신재효는 판소리의 상징적인 인물로 고창은 판소리의 상징적인 지역으로 저절로 부각 된 것이다. 이처럼 뛰어난 음악가를 지역에서 선양하는 사업과 함께 그 명인이 음악사에서 갖는 의미를 부각시켜야 전국화, 세계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영희 선생은 경기음악의 중심이고 경기민속음악의 중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전통음악을 근대화, 현대화시킨 음악가라는 측면이다. 지영희가 시나위, 대풍류 등 민속기악의 꽃을 피우게 했던 것 자체가 근대성을 가진다. 그가 선구적으로 만들어 낸 국악관현악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자국의 전통악기만으로 연주하는 세계적 차원의 오케스트라가 되어 가고 있다.(이를 본받아 요즘은 중국과 대만에서도 전통관현악단이 흥행하고 있다) 지영희가 시작하여 뿌리를 만들어 성장한 국악관현악은 현재 전국에 30여 개가 있고 수많은 창작국악관현악곡을 만들어 냈으며 창작 국악의 대명사처럼 되어 우리의 문화적 자산으로 성장하였다. 노동은 교수가 지영희를 ‘근대 국악의 아버지’라고 명명한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근현대 음악아카이브 조성사업’은 지영희 명인을 평택이나 경기음악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그가 추구해온 가치가 발현될 수 있도록 근현대 음악사라는 더 큰 영역에서 재조명하고,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재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단순히 자료를 모으는데 그치지 않고 음악학자들이 연구와 교육을 위해 찾을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지영희 명인을 근현대음악사 차원에서 재조명할 수 있는 토대공간으로, ‘국제음악도시’를 지향하는 평택의 중심공간으로 음악아카이브관을 조성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 기사에서는 음악아카이브관에 이관이 추진되고 있는 자료들의 가치와 활용방안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김수현 단국대학교 연구교수 / ‘지영희관광활성화 연구용역’ 책임연구원 / 근현대민족음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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