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 책 하나되는 평택 연중 릴레이 기고 29 _ 손신향 장당초등학교 사서

손신향 장당초등학교 사서

[평택시민신문]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끈으로 묶여있는 잘려진 두 발목이 끔찍하다. 황토색에 지푸라기 같은 게 묻어있고 잘려진 단면에 두 남자가 뭔가를 하고 있다. 제목의 서체도 딱딱하고 건조해 보였고 바탕색은 회색이었다. 표지 그림으로는 무미건조한 일상 정도로 유추할 수 있는 게 전부였다.

글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이해하면서 퍼즐을 맞춰 나갔다. 끈으로 묶여있는 발목은 기저세계에 잡혀간 지상 사람들이 지상으로 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땅을 파야하는 상황을 비유한 것 같다. 황토색과 지푸라기는 기저세계를 나타낸 것이고 두 남자는 지상세계 사람들이며 땅을 파고 있는 모습 같다.

지상세계 사람이 갑자기 기저세계 사람들에게 납치되었다. 기저세계가 꽉 차버려서 그들이 살 땅을 파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흙 맛이 나는 말라비틀어진 빵, 그것마저도 없어서 싸우다가 죽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점점 회색인간이 되어갔다. 강제노동과 배고픔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못 느낄 때 한 여인은 노래를 부른다. 배고프고 땅을 팔 기운도 없는데 노래가 웬말인가! 참다못한 사람들은 돌을 던졌고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땅만 팔 뿐이다. 인간성 상실이다. 그러나 여인은 다시 일어나 노래를 부른다.

또 돌멩이로 벽에 그림을 그리는 한 남자가 나타난다. 이 또한 몰매를 맞는다. 땅을 파기도 부족한 그 힘으로 쓸데없는 짓거리라며 사람들은 분노한다. 죽기까지 맞으나 누구하나 돌봐주지 않았다. 극한 고통 속에 예술은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회색인간들 틈에 자기의 색깔을 드러내는 이들은 분명 미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신기한 일은 일어났다. 누군가 여인에게 또 그림을 그리는 남자에게 자기의 빵을 나눠주었고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들은 땅을 파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고통의 삶을 노래로 그림으로 표현했고 소설가는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알게 된 것이 아닐까? 분명 상상속의 이야기이지만 개연성이 있다.

극한 배고픔과 힘든 노동에 아무런 기쁨이 없고 매일매일 무미건조한 시간일 때 예술은 위로하는 노래이고 현실을 재현한 글을 남김으로 현실의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들은 더 이상 빛을 읽은 회색인간이 아닌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책이 생각났다. 네덜란드 출신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 작품인 「프레드릭」의 주인공 프레드릭은 다른 쥐들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먹을 거리를 모으기 바쁠 때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았다. 한겨울을 되고 먹을 거리가 떨어져 불안한 생쥐들에게 프레드릭은 회색 빛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따뜻한 빛과 화사한 색깔을 찾아주었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야 생쥐들은 프레드릭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삶의 위로와 풍성하게 하는 예술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도 한스러운 삶의 역경 속에서 ‘아리랑’을 부르며 이겨냈다. 온몸으로, 속에 남은 힘을 모두 내어 소리를 내고 감정을 실어내면 어느새 정화가 되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던 게 아닐까. 미움을 받아들이고 때론 용서했을 것이다. 원망과 불평도 감사와 인내로 바뀌었던게 아닐까.

울적하고 힘이 없을 때 노래를 부르고 싶어진다. 음정 박자 무시하는 기타 반주도 감정을 쏟아내기에 충분하다. 목소리 높여 부르고 나면 눈물이 나고 실컷 울고 나면 아픔을 딛고 일어나게 된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고 자신이 부끄러운 때 지인들에게도 알리기 어려울 때 혼자 할 수 있는 돌파구인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색깔이 있다. 자신만의 색을 찾아 빛을 발한다면 세상은 형형색색의 천연색으로 아름다울 것이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본연의 색을 찾는다면 좋겠다. 각자의 가진 재능을 찾고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인류문화를 전승하는 거대한 꿈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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