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과 극단으로 갈라져가는 사회에서 민세를 기억하자”

 

제9회 민세상 사회통합부문 수상자로 선정

인권옹호, 사회적 가치 실현이 나의 임무

공동체 의식으로 화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평택시민신문] 제9회 민세상 사회통합부문에 이세중(83) 환경재단 명예이사장이 선정됐다.

민세상은 평택출신으로 일제강점기 민족운동가, 언론인, 사학자로 활동하고, 해방 후 정치가이자 정치사상가로 활동했던 민세 안재홍 선생의 민족과 사회 통합 정신과 1930년대 일제식민사관에 맞서 조선학운동을 실천했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난 2010년 제정되었다. 올해 사회통합무문 심사에는 강지원 변호사, 손봉호 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이 맡았고, 학술연구부문에는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기철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맡았다.

이세중 명예이사장은 일평생 원칙과 소신, 청렴과 소통의 실천을 통해 사회 각계의 존경 받아온 원로법조인이자 1세대 인권변호사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기여하고 다양한 분야의 시민운동 실천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과 이념‧계층을 아우르는 사회통합에 헌신해 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민세상 사회통합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평택시민신문>은 지난 16일 이세중 변호사 서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9회 사회통합부문 민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민세상 수상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민세 안재홍 선생은 우리 민족의 선각자이고, 사상자이며, 독립운동을 하신 분으로, 그 분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제정한 ‘민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큰 기쁨이다.

 

이번에 민세상을 수상하게 된 계기가 70~80년대 민주화운동과정에서 수많은 무료변론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변호를 맡은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유신시대는 우리역사에 암울한 시기였다. 헌법에는 ‘민주주의’라고 써져 있었지만, 유신시대를 민주주의시대라고 할 수 없었다. 누구도 정부에 대해 비판하지도 못했고, 헌법에 대해 비판하지 못했다. 이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나라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민주화 운동 인사들의 변호를 맡게 되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에서 인권의 귀중함을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았고, 변호사의 사명도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유신시대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나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계기를 말하자면,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에서만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붙잡힌 사람들을 도와줬는데, 그쪽에서 무료변론을 요청해 왔고, 그 요청에 응하게 된 것이다.

 

무료변론을 했던 사람 중에 기억나는 사람이 있나요?

긴급조치 1호가 발령된 이후부터 재판관할권이 군법재판관에게 넘어가고, 비상군법희의라는 곳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긴급조치 1호로 구속돼 재판받은 사람 중에는 김진홍, 인명진 당시 전도사(현 목사) 등 이었다.

그 이후에도 김창국 목사, 박형규 목사, 서경덕 목사 등 기독교계 인사들의 변론을 맡았고, 그 외에도 이해찬 전 총리, 유인태 전 의원, 이철 전 의원 등이 있었다.

 

80년대 이후에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시민사회영역의 활성화에 기여해 오셨습니다. 시민단체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 주세요.

유신체제가 끝나고, 6.29 민주화선언 이후 우리 사회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그때에는 시민사회 안에서 민주주의가 건전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민들이 자기의 문제들을 상의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 안에서 활성화 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한편, 민주화의 바람이 불 때 경실련, 환경운동연합 등이 새롭게 출범했다. 당시 환경운동연합 측에서 찾아와 환경운동을 해야 하는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때에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하고 있어서 다른 단체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절을 했는데, 환경운동연합 측에서 자기들의 단체는 환경문제만 다루고, 영리성이나 정치성이 없다고 설득해왔다. 그 설득으로 결국 환경운동연합이 창립할 때 공동대표로 들어가 9년 정도 일을 했다.

 

 

현재 한국사회 안에서는 갈등이 많아, 사회문제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사회 원로의 한 사람으로서 사회통합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어느 시대이건 어느 사회이건 다소간의 갈등이나 분열 요소가 많다. 우리 사회는 그 정도가 심하다. 더군다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점진적으로 통합이 되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그렇지 못하다. 극심한 분열과 갈등이 복잡하게 엉켜있다. 이런 상태를 풀지 못한다면, 남북이 통일이 돼도 혼란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열과 갈등이 심할 때 민세 안재홍 선생의 가르침을 생각해야 한다. 사회와 민족의 통합, 다사리운동을 통해 서로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지향했던 민세의 정신을 기억하며, 그가 꿈꿨던 사회를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한다. 요즘 같이 어려운 시기에 민세정신, 민세사상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에 더욱 확산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극단과 극단으로 갈라져가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 민세 정신을 배우고 기억해야 한다. 사회통합이라는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권은 계파주의나 파벌주의에 몰입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이념과 정치성향에 매몰되지 말고 민세의 통합 정신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지금까지 여러 이력상 정치 참여에 대한 권유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다.

정부나 정치 쪽에 많은 제안을 했다. 하지만 시민운동을 처음 할 때 한 쪽으로 치우쳐지면 안 된다는 ‘정치적 중립성’, 돈을 쫓으면 안 된다는 ‘비영리성’,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율자발성’ 등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 쪽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게 살아온 것이 자랑이 됐다.

 

수많은 청년들이 법조인이 되고자 꿈을 꿉니다. 이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옛날 법조계에 들어올 때 변호사는 프로패션(Profession)의 한 종류라고 배웠다. 프로패션이란 변호사, 의사와 같이 전문적 직업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직업이라고 배웠다. 이웃에 대한 사랑, 공공에 대한 봉사 등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패션의 사명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변호사에 부과된 사회적 책임이 점점 희석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젊은 변호사들이 변호사의 기본적인 사명, 즉 인권보호나 사회정의실현을 망각한 채 너무 돈벌이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물론, 젊은 변호사들 중에도 변호사로서의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정신이 소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 나가길 희망한다.

 

연장자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공동체 의식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사회구성원들이 자기 혼자만의 안락을 추구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직업분야에 있건 자기 혼자만 잘사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 의식을 갖고, 주변과의 화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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