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 책 하나되는 평택연중 릴레이 기고 23 _ 강대선 장당중 교사

강대선 장당중 교사

[평택시민신문] 어릴 적부터 괴담을 좋아했다. 귀신을 통해, 괴물을 통해, 신기한 존재들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 속에, 작가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생각을 담곤 한다. 그래서 상상 속 과장된 이야기는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우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할 때가 있다. 「회색인간」은 그런 점에서 간만에 만난 괴담집이었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때로는 현실보다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어느 날,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증발하듯 사라져버렸다. 「회색인간」의 많은 이야기들은, 기이한 현상과 함께 시작된다.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건물이 생명체처럼 되거나, 운석이 떨어지거나, 좀비가 되거나 등등.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현상들의 특징은 사람들을, 더 넓게 보면 사회를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점이다. 사라진 사람들은 지저 세계에서 하나의 도시만한 면적의 땅을 파야한다. 건물에 갇힌 사람들은 물자가 없는 상태로 생명체가 된 건물에 누군가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 운석은, 지구를 멸망시킬 기세로 다가온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장 먼저 제시되는 유형은,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임을 강조하는 경우이다.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게 정당합니까? 운석이 한 사람을 쫓아다닌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사람을 우주로 보낸다. 식량이 부족하므로 직접 땅을 파지 않는 자에게는 식량을 나눠주지 않는다. 건물에 갇힌 사람들은 어차피 죽을 사형수들을 제물로 바쳐달라고 이야기한다. 신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던 사람의 정신을 검증하고 다른 사람을 내세우기 위해 죽인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해결책은, 소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수가 살아날 방법에 대해 제시한다.

‘당신 한 명이면, 모두 살 수 있어.’ 이렇게 한 명, 혹은 소수의 사람들은 책임과 잘못을 모두 짊어지고 희생하게 된다. 읽으면서 극단적인 해결방법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결방법보다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는 익숙하다. 문제 상황에서 소수의 희생을 통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누군가가 희생하고 노력하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에서 등장하는 해결책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을 희생해서 모두를 살리는 게 정당합니까?’ 불안감만으로 반대하기에는 정화수가 가진 활용도가 너무나도 컸다. 피로를 사라지게 하여 하루 한 시간의 휴식만 필요하게 하는 정화수를, 사람들은 매일 싼 값에 쓰고 싶어 한다. 좀비가 되어 오히려 건강해지자, 일상의 몸을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예언을 통해 사고의 확률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예언자에게 돈을 지불하기 아까워한다. 불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소수의 희생을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욕심을 부리고 위험에 대하여 안일해진다. 모든 일에는 정당한 대가가 따르나, 그 대가와 희생 없이 이득만을 얻고자 하는 모습, 그리고 위험도에 대하여 안일하게 대처한다. 지금까지는 괜찮았으니까. 앞으로도 큰 일이 없을 테니까. 이야기 속의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현실 속의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확대한 것이다. 지구가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을 떠나간 행성의 주인을 따라서,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고독한 항해사를 따라서. 이야기들의 결말은 사람들의 예상을 비틀어버린다. 운석을 피하기 위해 우주로 보낸 사람을 따라 지구가 움직인다. 가장 윤리적이고 순수한 아이는, 의외의 소원을 통해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뜻밖의 결말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리고 안일한 사람들의 대처에 대한 냉소를 드러낸다.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일까? 그리고 해결할 수 있을까? 라고 되묻는 듯하다.

예상과 다른 결말, 더 비극적인 결말을 제시함으로써 개인, 소수의 사람들에게 문제의 원인을 몰고 희생을 강요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여전히 사람들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이야기들 사이에는 때때로 희망을 담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들 속에는 누군가를 희생하는 대신 함께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고 괴로워하고 끝까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에 제시되는 문제들은 모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질병, 재해, 재앙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이다.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기에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를 든 해결방식은, 때로는 더 좋은 방법, 다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욕망을 감추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는 다른 방법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아닌, 함께 고통을 나누자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괴로워하며 고민하자고. 그 결과가 행복하지는 않아도 더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우리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판단이 아니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으려는 자세라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살고 싶었던 소수였을 뿐입니다. 「회색인간」 속 이야기들이 모두 이러한 생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언론에 대하여, 정치에 대하여,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를 풍자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라면 상황은 기묘해도 그 안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때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문제를 봉합하고자 한다.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지만 내 눈 앞에서 문제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고 누군가는 고통 받고 희생을 강요받고 있을지 모른다. 때때로 사회적인 문제들은 해결방법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만, 당장 와 닿지는 않으니 외면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사회에서 그 문제로 인하여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음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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