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평택 5-① 미군을 만나면서 변화된 평택 음식 문화 _ 부대찌개

[평택시민신문] 지난 2018년 7월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K-6)에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함에 따라 주한미군 이전이 완료됐으며, 본격적인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시작됐다. 이에 앞서 <평택시민신문>은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주한미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역사 차원의 주둔역사를 정립하고, 미군과의 바람직한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미군 평택주둔 약사 및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책에는 평택의 각계 전문가들과 대학교수들이 참여해 평택지역의 외국군 주둔 역사와 미군주둔이 평택인의 생활과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 주한미군 평택시대에 대처해야 할 지역사회의 과제 등 평택시민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를 살펴보는 내용도 담겼다.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시점에 지역사 차원의 미군 주둔 역사를 이해하고, 한미양국의 이질감을 줄이고 새로운 공동체 문화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평택시민신문>은 해당 도서의 내용을 지면으로 소개한다.

이번 글은 오향진 작가의 '미군을 만나면서 변화된 평택 음식 문화'를 싣는다.

 

미군의 문화를 평택의 문화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독창적 문화를 만들었고 이는 평택음식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평택시민신문] 아주 오랜 옛날 인간은 먹기 위해 살았다. 하루 종일 들로 산으로 바다로 뛰어들어 먹을 것을 구했다. 문명이 싹 트고 여유가 생기자 인간은 살기 위해 먹었다. 과거에 음식은 곧 생명이었다. 그러다 점차 음식은 잘 살기 위한 영양제가 되었다. 세월 따라 음식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졌다. 어디 의미뿐인가. 음식은 지역, 민족, 경제, 환경, 종교 등 많은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또 한 개인에 따라서도 음식의 의미와 형태는 달라진다. 누군가에게 어떤 음식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음식은 문화와 역사를 담고 있다. 음식을 보면 문화가 보인다. 평택음식을 보면 바로 평택이 보인다.

평택은 우리나라 서쪽에 위치해 가장 지형이 낮은 평야지대이다. 하천이 발달하고 바다와 인접해 있다. 중국과도 가까워 예로부터 중요한 무역로였다. 이런 천혜의 자연 요건 덕분에 예로부터 농업과 어업뿐만 아니라 무역업도 성행했다. 기름진 평택평야에서는 품질 좋은 평택쌀이 풍부하게 생산 되었다. 바다에서는 수많은 물고기가 끊이지 않고 잡혔다. 바닷길을 통해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유입되어 다채로운 음식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평택인들은 풍부한 향토 음식에 바깥세상에서 유입된 다채로운 음식을 함께 버무려 평택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만들었다.

평택은 자연환경과 지리적 이점으로 육해공의 식재료가 풍부했고 그래서 맛의 고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극한의 불운을 피할 길 없었다. 굶주리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생명을 부지하는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그러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평택은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미군들에게는 보급품이 넘쳐 났고 달러도 많았다. 1950년대 당시 우리나라가 벌어들인 외화가 연간 대략 100만 달러 정도였다. 그에 비해 주한미군들에게서 벌어들인 외화가 연 120만 달러 정도였다. 무시할 수 없는 막대한 외화벌이였고 그것은 살 수 있는 기회였다.

미군들에게 음식을 팔고 달러를 벌었다. 미군들이 좋아하는 햄버거, 스테이크, 샌드위치, 핫도그 등을 만드는 법을 배워 그들에게 팔았다. 우리 음식들을 미군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 팔기도 했다. 간장 대신 소금을 쓴다거나 미군 식재료를 활용해 우리 음식을 새로 창조해 만들어 팔기도 했다. 미제 햄과 소시지에 김치와 고추장을 첨가해 만든 부대찌개가 대표적이다. 또 햄버거 안에 계란프라이를 추가해 평택 고유의 햄버거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음식문화의 변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송탄부대찌개, 송탄햄버거 등 아예 대명사처럼 자리매김을 했다.

평택민에게 미군은 배척해야 할 이방인이 아니었다. 한데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관계였다. 그리고 그것을 평택민의 문화로 변형하고 또 재해석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평택의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 냈고 지금의 평택음식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1. 한국과 미국이 만난 음식, 부대찌개

1. 부대찌개 재료들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미군 부대 근처에는 ‘부대고기’라고 불리는 고기가 생겼다. 미군들이 보급품으로 받았던 햄과 소시지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른 말이었다. 햄과 소시지를 처음 접한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고기로 생각해 전골 판에 구워 먹었다. 그러다 우리 스타일대로 양배추와 양파 등의 야채들을 곁들여 함께 지져서 막걸리 안주로 즐겨 먹었다. 생고기만을 접해오던 사람들이 육가공품을 처음 접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물 건너온 생소한 음식이란 것도 흥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공품 특유의 짭조름하고 감칠맛에 매료되어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한국인은 역시 얼큰한 국물이 제격이었다. 햄과 소시지와 야채에 육수를 붓고 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결국 칼칼한 찌개를 만들어내고야 말았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 부대찌개의 탄생이었다. 당시에는 미군부대의 식재료가 외부로 반출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었기 때문에 ‘부대찌개’라고 드러내놓고 부르지는 않았다. 198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그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부대찌개의 양대산맥, 의정부와 송탄

의정부 부대찌개
송탄 부대찌개

미군 육군 기지가 들어선 서울의 의정부와 공군 기지가 들어선 평택의 송탄은 부대찌개의 원조다. 송탄과 의정부 둘 중에 어디가 먼저 시작된 곳인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다. 송탄식과 의정부식은 서로 약간의 차이를 갖고 있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추가해 양을 늘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은 같았다. 그러다 1963년 삼양사가 라면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부대찌개 안에 라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덕에 부대찌개 맛은 더 풍성해지고 인기가 높아졌다. 그러자 거꾸로 미군부대 안에서도 별미라고 좋아해 부대 메뉴로 추가되기도 했다. 당시 미군들은 부대찌개를 한국 식문화가 만들어낸 새로운 스타일의 찌개라며 극찬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6년 미국의 제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이 때마침 한국을 방문했다. 존슨이 주한미군 사단을 방문했을 때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존슨에게 부대찌개가 제공 되었다. 부대찌개를 처음 먹어본 존슨 대통령은 그 맛을 매우 극찬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존슨탕은 이를테면 부대찌개의 별명이 된 셈이다.

 

평택의 애환과 지혜, 송탄부대찌개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양질의 햄과 소시지를 많이 만들어 낸다. 어디에서나 손쉽게 국산 햄, 소시지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대찌개만은 특별히 수입한 햄과 소시지를 써야 옛 맛 그대로 난다고 한다. 향수어린 추억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송탄에서 만들어낸 부대찌개는 전쟁과 배고픔이라는 평택민의 슬픔이 녹아 있다. 그 슬픔을 딛고 이기려는 생명력도 들어 있다. 우리의 것을 잃지 않고 지켜 새로운 것과 조화롭게 만드는 고집과 지혜도 담겨 있다. 그 깊은 의미와 진한 스토리가 한데 섞어서 일지 모른다. 송탄 특유의 맛을 지닌 부대찌개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인기는 전국으로 퍼져 지금은 아예 ‘송탄부대찌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70년대 K-55부대 정문 앞

 

40년 전통의 송탄 고집, 최네집

송탄에는 수없이 많은 부대찌개 맛집들이 있어 가게마다 독창적인 맛을 자랑하고 있다. 한 때 언론에서는 송탄의 4대 부대찌개 맛집으로 최네집, 황소집, 땡집, 김네집을 선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송탄에 있는 부대찌개 식당 어디를 들어가도 송탄 특유의 푸짐하고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송탄에 남아 있는 부대찌개 식당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은 ‘최네집부대찌개’이다. 최네집은 1969년에 개업을 한 이래 40여 년의 세월을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시원한 육수에 진하게 고춧가루를 풀고 소시지와 다진 고기, 치즈에 각종 야채와 양념들을 한데 어울려 끓이고 라면 사리도 아낌없이 많이 얹는다. 정통 송탄식 부대찌개 맛을 자랑한다. 특히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부대찌개라고 한다. 최네집은 규모면에서도 전국에서 가장 큰 부대찌개 집으로 유명하다.

 

부대찌개와 같은 애환의 음식, 까르보나라

이탈리아 대표 음식 중 하나로 알려진 까르보나라는 우리나라 부대찌개와 같은 의미를 지닌 음식이다. 까르보나라는 이탈리아식 파스타에 크림소스를 곁들인 음식이다. 때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50년대, 연합군이 로마를 해방시키고 미군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미군들이 보급품으로 가지고 있던 음식들이 시중에 나돌았다. 전쟁에서 패하고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미군이 제공하는 우유, 계란, 베이컨 등을 이용해 자기들이 원래 먹던 파스타에 섞어 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크림파스타 즉 까르보나라이다. 까르보나라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애환과 역사가 담긴 의미 깊은 음식이다. 전쟁의 슬픔을 간직한 음식이지만 지금은 누구나 어디서나 맛있게 즐기는 세계적 음식이 되었다.

 

글: 오향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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