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민신문] 지난 9월 19일에는 평택보건소 건강증진팀(이은심 주무관)에서 진행한 걷기 지도자 과정을 수료한 수강생들과 함께 섶길코스 중 시내길(구 평택시내)을 걸었다.

걷기 지도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하고 걷는 것도 배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직시하고 보니,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엔 평생교육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다니고 있는가 보다.

함께 걷기로 한 일행들이 다 모이기 전에 평택보건소 앞마당에서 이은심 주무관으로부터 걷기 지도 과정에 대한 브리핑을 간단히 들었다. 걷기 지도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것은 2007년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보건소 건강증진팀에서 2016년부터 수강생을 배출하기 시작하여 4기까지 마쳤다고 한다. 각 기수에는 주로 20~30여명이 참가했으며, 연령대는 40~50대 여성들이 많았다고 한다. 16주로 이루어지는 과정은 걷기의 이론과 실습, 심폐소생 교육을 통한 안전교육, 친목도모 등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걷기에는 위험 요소가 따르게 마련이라며 안전교육이 필수라고 힘주어 덧붙였다. 수강료는 없으며 이곳을 통해 동호회도 생겨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도 있으며 오늘 참가한 사람들은 여러 기수 중에 시간 나는 분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수료한 지도자들은 시민들이 많이 걷는 곳을 찾아가 올바른 걷기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통복천은 시민들이 많이 걷는 저녁 7시라든가 배다리 저수지는 아침 9시경에 찾아가 봉사를 한다고 한다.

이은심 주무관과 인터뷰를 하는 동안 두 다리가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제대로 걷고 있었는지 마치 걷기를 잃어버린 건 아닌지 발을 떼어 보기도 하였다. 이 분들과 함께 올바른 걷기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리라 다짐을 하며 출발에 앞서 간단히 시내길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해설은 섶길위원이신 조정묵님이 해 주셨다.

첫 인사가 ‘좀 더 잘 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덜 생겨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문을 열어 일행들이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평택섶길은 모두 15개 코스로 되어 있다. 일행들에게 ‘섶길’의 뜻을 묻자 웅성거리며 ‘풀섶’이란 의미가 아니냐, 길섶의 의미가 아니냐는 의견들을 내놓았다. 그런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만, 섶길은 한복의 앞 고름을 묶는 작은 끈으로 큰 길이 아닌 작은 길이라는 뜻이라며 자세한 설명으로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그 중 오늘 함께 걸을 길은 제1-1코스로 일부 표지석에는 원평길로 표기되었는데, 경로에는 비전동, 통복동도 있는데, 원평동으로 오인하게 ‘원평길’이냐는 주민들의 이의가 있어 시내길이라 수정했다. 시내길은 총 9Km로 3시간 정도 소요되며, 도중에 점심시간이 있어 더 걸릴 수도 있다. 이렇게 설명한 조정묵 위원은 걷는다는 것은 즐거움이니 방긋방긋 웃으며 걷자고 힘을 북돋았다.

이 날 걷기 행사에 참여한 일행들은 걷기에 편한 복장과 운동화, 간편한 배낭과 물병 등을 준비하여 마치 장정에 오른 굳은 의지를 보였다. 섶길 기점이 있는 시청 서문을 지날 즈음, 나는 자연스럽게 일행 중 한 분에게 접근하여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았다. 처음에 어떻게 걷기 지도자 과정을 알게 되었느냐고 묻자 친구를 통해 알았다며, 그 친구는 노르딕 걷기에 대해 배웠다고 말했다. 너무 생소하여 노르딕 걷기가 뭐냐고 묻자 스틱을 이용하여 걷는 거라고 했다. 걷기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걷기 과정을 마치고 달라진 점이 있느냐고 묻자, 전문가의 도움으로 자세 교정도 되고 건강 검진도 받고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해 주며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어 좋다고 대답했다.

①시청 앞 광장 시발점 ②매봉산 입구 ③매봉산 정상 ④삼각산(자란산) 하행길 ⑤청소년문화센터 앞 소녀상 ⑥청소년문화센터 회의실

대화를 나누며 걸으니, 어느 덧 매봉산을 지나고 있었다. 매봉산이란 명칭은 대개 고을 마다 있는데 옛날 양반들의 고급 레저로 매 사냥을 하던 곳에서 유래한 거라고 장순범 섶길위원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배수 폄프장을 지나 정상에서 소사뜰을 바라볼 수 있다. 해발이라 하기까지는 입이 간지러울 정도의 높이지만 하늘 공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경관이 좋아 산책로로 손꼽을 수 있을 거 같다. 약간의 구름층으로 쨍쨍한 가을 햇살을 가리고 있어 걷기에 안성 맞춤인 날씨였다. 신한중·고 울타리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오다 일제 시대에 심었다는 배나무가 눈에 띄었다. 고목으로 나무 껍질이 메마르고 벗겨지고 있었다. 배가 열려도 식용으로 먹을 수는 없을 정도였으며 떨어진 배가 썩어 악취가 풍겼다. 매봉산과 덕동산을 잇는 큰 도로 위로 놓인 고가다리를 건너 덕동산 초입으로 들어선다. 덕동산의 원래 이름은 충혼산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름이 흉흉하다하여 덕동산으로 바꾸었다. 그 덕동산자락의 마을 이름은 비전동이다. 비전동의 유래는 동네 앞에 비석들이 많다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팔각정 아래에 모여 조정묵 위원의 자세한 해설을 들으며 모두들 감탄사를 토해내기도 하고 가져 온 간식과 물을 마시며 짧은 휴식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도중에 시내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꺼내 또 한 번 일행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길의 명칭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주정길’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조 위원께서 시청 근처에서 자주 술을 마시고 집에 가서 마나님께 혼나지 않으려, 가는 동안 깨기 위해 늘상 걷는 길이라는 것이다. 일행 중에 몇몇이 운치 있는 이름이라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였다.

덕동산 자락을 내려온 일행들은 한광 중·고를 지나 자란로에 이르렀다. 자란로 아래는 낙촌이라는 곳이다. ‘낙촌’이라는 명칭은 똥지게를 지고 와 그곳에 떨어 뜨렸다하여 지어졌는데, 지금은 즐거울 락(樂)을 써서 낙촌이 되었다고 한다. 자란로는 재랭이 고개라고도 부르는데, 그곳에는 유난히 점집들이 많았다. 한때 ‘평택할머니’라는 분이 신통한 점괘를 보이자 티브이에 소개되면서 전국의 무당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고 한다. 평중 교문을 바라보며 오른 쪽 작은 골목을 지나 자란산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면 평평한 택지로 이루어졌다하여 평택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하는데, 시내길 코스에는 작지만 몇 개의 산이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자란산은 자란꽃(난의 일종)이 많이 피는 산이라 하여 붙여졌다. 자란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통복동과 세교동이 내려다보인다. 통복동은 ‘통보’라는 저수지가 있었는데, 뒤에 통복보로 바뀌면서 통복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바닷물이 개천까지 들어왔으며 배수가 잘되지 않아 비가 조금만 와도 평택역까지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고 한다. 그래서 옛말에 평택엔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단다. 통복다리를 사이에 두고 세교동이 보인다. ‘세교’는 가늘고 긴 다리가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본토박이들 사이에서 ‘잔다리’라는 명칭으로 불리고도 있다.

통복동 주민자치센터 앞을 가로질러 통복천에 이르렀다. 풀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풀냄새가 폴폴 나서 싱그러웠다. 통복교로 올라 온 일행들은 통복 시장으로 향했다. 시간은 어느 덧 열 두 시가 넘어 점심 때를 가리키고 있었다. 많은 먹을거리들이 후각을 자극하여 시장기가 더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시장 내에 있는 소머리 국밥집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배가 부르고 나서 그런지 일행들은 조금 느슨한 발걸음으로 시장 로타리를 지나 굴다리 앞에 모였다. 통복동에서 원평동으로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원평동은 일제 시대에 융성하던 거리였다고 한다. 혼마찌(본정통, 중앙로)라 불리며 일본인들이 40%정도 살았다고 한다. 원래 평택이라는 의미의 ‘원평동’으로 지칭되고 있으며 평택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고 조 위원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경기염업사’. ‘서울떡방앗간’이란 간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곳에 시장이 형성되었다가 쇠퇴하여 지금의 통복시장으로 크게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 옆으로 새로운 평택이라는 이름의 신평동이 자리잡고 있다. 예전의 명동거리를 걷는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평택 초등학교를 지나 족구장 옆 육교 계단을 오르니 군문다리와 소사벌판이 훤히 보였다. 군문 다리가 놓인 자리는 규모가 아주 컸던 포구로 1894년 청일 전쟁 당시 청나라 군사가 들어와 주둔했다하여 군문포(軍門浦)라 불렸다 한다. 남쪽으로부터 올라온 일본군과 소사벌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아산이 무너지느냐 평택이 무너지느냐 라며 싸움이 격렬했었다고 한다. 고가를 지나 계단을 내려오니, 왼쪽으로는 롯데 인벤스가 있고 1번 국도를 건너 소방서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합정동 뚝방길로 접어들었다. 합정동은 조개터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하던 곳으로 손바닥 만한 크기의 부전조개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그래서 춘궁기의 민생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단다. 지금의 종합운동장 부근을 배미라고 불리는데, 배미라는 뜻은 돌출된 지형을 일컫는 것으로, 조개터와도 일맥상통하는 점이라고 한다.

일행들은 어느 덧 시내길 코스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평택시 청소년문화센터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소녀상이었다. 이곳에 소녀상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회에 젖기도 하고 니트 모자에 달린 목줄을 예쁜 리본으로 고쳐 매주기도 했다. 소녀상 옆에는 임봄 시인의 헌시가 새겨져 있었다.

박경순 시민기자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시지부장

청소년문화센터(이종규 센터장) 안에는 일행들을 기다리며 가지런히 정돈된 의자와 책상들이 있었다. 시원한 생수와 음료를 준비해 놓고 직원의 따듯한 손길이 무거운 몸을 가볍게 해 주었다. 사각으로 진열되어 마주보게 되어 있는 교실 분위기에 둘러앉은 일행들은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걷기의 말미를 장식하는 자리가 되었다. 돌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씩 소감을 말했다. 공통적으로 평택에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보람 있었다고 했다. 평택에서 태어나고 오래 살고 있으면서도 지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지 못했는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 지식이 쌓인 거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안내 표식이 잘 눈에 안 띄어 처음 걷는 사람들에게 길 안내가 잘 되지 않는 거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할 수 있는 건 지역의 네트워크가 잘 되어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장순범 위원장은 평택 섶길이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걸으며 평택의 역사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였다.

걷는다는 것은 살아 움직인다는 단순한 의미에서 길과 길을 따라 만나는 모든 것들이다. 길에는 자연 경관, 문화, 역사 속에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걷는다는 것도 만남의 연장인 셈이다. 반나절을 걸으며 걷는 이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마치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모든 근심거리들을 털어버리고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피우는 모습들에서 건강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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