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_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 회장

 

한국혼 말살 위해 일제가 심은 카이스카 향나무 아직도 공공기관에 버젓

평택 3·1운동 발생지 계두봉 일원 충혼탑 주변에도 수 십 그루…평택인의 수치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 회장

[평택시민신문] 가을이다. 기차여행을 하면서 시골 풍광을 즐기기 좋은 계절이다. 기차여행은 자그마한 간이역이 정취를 북돋우는데 제격이다. 그렇다면 완행열차를 타야한다.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도 살랑거리고 역 주변에 심겨진 토피어리처럼 다듬어진 향나무도 정취를 만들어낸다. 특히 눈 내린 겨울엔 잘 다듬어진 향나무에 눈이 쌓이면 뭇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로 박힌다. 특히 사진작가들은 그 모습을 즐겨 찍기도 한다.

그런데 이 향나무가 일본에서 개량한 카이스카(貝塚)향나무란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일제는 이 땅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 총독부 총동원으로 조선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분석했다. 전래 조선의 모든 신앙, 사상, 민속, 교육은 물론 마음 씀씀이까지 부정하고 일제의 것을 심어놓았다. 그중 하나가 카이스카향나무 심기다. 기차역은 물론이고 새로 여는 각급 학교, 관공서 등 공공건물 주변은 당연히 카이스카향나무를 심었다. 한발 더 나가면 조상을 모시는 산소나 신당, 정렬문이나 절간까지도 빠지지 않았다. 더 나가서 향교나 서원까지도 집요하게 알게 모르게 카이스카향나무는 조선 땅을 점령했다.

게다가 재래의 향나무는 성장이 더디고 토양을 가리는 편이지만 카이스카는 토양을 가리지 않고 성장속도도 빨랐다. 또한 바늘잎이 달리지 않으니 다루기도 쉬웠다. 일제가 겉모습 이지만 조선을 빠르게 일본화 시키기에 적합한 수종이었던 것이다. 결국 궁궐의 전통향나무가 퇴출 되고 사당의 향나무가 뽑히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이 향나무가 지금도 여전히 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제에 의한 강제 창씨개명을 한 것과 다르지 않는데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있다. 아! 얼마나 개탄스런 일인가.

국회의사당 마당에 카이스카가 심어져 있어 말썽이 인적이 있었다. 오래전에 심어진 것도 아니고 여의도로 국회를 옮기며 국회의사당에 조경수로 심었으니 이런 망발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은 뽑아내고 우리소나무를 멋들어지게 심어놨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광주학생운동기념관과 그 주변도 카이스카향나무가 심겨져있어 뽑아낸 적이 있고 그 외 여러 지역에서 카이스카 향나무 뽑아내기가 진행되고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지역은 어떤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공원과 가로가 많이 늘어나고 있고 각 가정에서 카이스카향나무를 즐겨 심는 것으로 안다. 가정에서 심고 즐기는 것이야 말릴 수 없는 일이지만 공공장소, 특히 외세에 항거했던 지역이나 기념물 주변이 카이스카로 둘려있다면 이런 망신이 어디 있겠는가. 특별히 내년 3.1만세혁명 100주년을 맞아 세심히 살펴보아 바로 잡아야한다. 계두봉 일원에 자리 잡은 충혼탑 주변에 수십 그루의 카이스카 향나무가 심겨져 있다는 것은 평택인의 수치다. 백번을 모여서 3.1만세운동을 기념하고 소리 높여 만세를 불러 봐도 말짱 헛일이다. 이미 왜향나무가 식재됐다는 것을 아는 시민주체나 행정당국이 그것하나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찌 선열들 앞에 향을 올리고 고개를 숙일 수 있을 것인가.

우리주변의 일제적폐를 청산하지도 못한 채 3.1만세혁명 100년을 맞이하는 시민들의 맘은 무겁기만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마지막 총독이 아베 노부유키 라고 한다. 그자가 조선 땅에서 물러날 때 남긴 말을 우리는 기억하고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패배했으나 조선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교육을 심어 놓았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식민지교육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나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