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길과 나의 만남 (27)

"어느 시인은 부부를 긴 교자상을 드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이 쉬운 듯 하면서도
한순간 어긋나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경험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

 

박경순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시지부장 / 시민기자

[평택시민신문] 섶길 표지판 작업은 참으로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리본으로 시작하여 돌 작업, 솟대 세우기, 나무판에 새기기 등 걷는 사람들이 섶길 코스를 잘 알아볼 수 있고 주변 경관과 잘 조화를 이루도록 구상하며 작업하고 있다.

돌을 구하여 운반하고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할까 고심하던 중 붓으로 쓰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돌에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종이에도 붓이 잘 내려가지 않아 삐뚤빼뚤 습작을 하던 특별활동 시간이 생각났다.

돌 작업하는데 동행하게 되었다. 서예가이신 권 선생님 부부가 커다란 시장바구니에 서예 도구를 챙겨 오셨다. 오랜 만에 보는 시장바구니도 정겨웠지만, 그 안에는 마치 소꿉놀이 도구처럼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것들이 소풍 나온 것처럼 정겨웠다. 먹에 붓을 묻혀 돌에 글씨를 쓰는 걸 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그 거칠고 딱딱하게만 느꼈던 돌의 성질이 바뀐 것인지 붓에 마술이라도 걸은 것인지 일필휘지로 글자가 탄생하는 걸 지켜보았다. 글씨는 길의 이름에 따라 길의 역사적 의미에 따라 각각 다른 글씨체로 탄생했다. 남편이 정성스레 글씨를 쓰고 나면 아내는 먹물이 마른 뒤 락카를 뿌려 방수 효과를 냈다. 곁에서 달인의 경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부부의 협력이 더욱 흐뭇하게 했다. 부부가 손발을 맞춰 일을 척척 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부부로 사는 사람들은 알고도 남을 것이다.

더욱이 두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돌 위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것을 뒤에서 바라보다보면 살짝(?) 질투심이 유발되기도 했다. 부부의 금슬을 재기에 좋은 작업으로 도배를 들기도 한다.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도배지가 팽팽하게 잘 붙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시인은 부부를 긴 교자상을 드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긴 상을 양쪽에서 들고 걸음걸이에 박자를 잘 맞춰야 상을 안전하게 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것이 쉬운 듯 하면서도 한순간 어긋나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경험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

나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호흡을 맞춰 보려고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남편은 카이트 서핑과 색소폰을 즐기고 있다. 운동신경이 무딘 내가 카이트 서핑을 한다는 건 가당치 않다고 여겨 악기를 함께 연주하면 어떨까 싶어 기타를 배우기로 하였다. 남편과 함께 합주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꿈만 같았다. 열심히 코드를 익히며 기타 연습에 열을 올렸다. 약 2년 정도는 기타에 희망을 걸고 남편과 호흡을 맞춰 멋진 연주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웠었다. 그러나 2년이 넘으면서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다. 즐겁게 배우기 시작한 기타가 과중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나는 음치일 뿐만 아니라 박치였던 것이다. 박자 감각이 없다보니, 영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였다. 결국 기타를 접었고 남편과의 꿈꾸던 이상적인 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현실의 벽은 이상을 뛰어 넘지 못하는 것인가.

권 선생님 부부와 함께 섶길 작업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하루 종일 두 분이 서로의 역할에 익숙하게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며 부부의 이름으로 아름답다. 먹물처럼 스며든 두 분의 세월을 짐작해 보게도 된다. 겉치레가 요란하고 화려한 부부의 모습이 아니라 가끔은 삐치기도 하고 끝이 매끄럽지 않은 붓글씨처럼 에돌아지기도 하는 두 분을 지켜보며 철들지 않은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짓기도 한다.

약간의 불만을 표시하는 대화도 애정표시로 느껴지고 서로를 배려하며 하는 작업에서는 오래 묵은 묵은지같은 깊은 애정도 배어 나온다.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서적, 정신적인 교감을 위주로 친밀함을 위해 노력하는 부부의 이름으로 두 분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고 기다려진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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