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과 평택 3-② 두 겹의 철조망 속에서의 외로운 증언(박석수론) 중 _ 다시 시인이 되어 기지촌을 말하다

[평택시민신문] 지난 2018년 7월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K-6)에 주한미군사령부가 이전함에 따라 주한미군 이전이 완료됐으며, 본격적인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시작됐다. 이에 앞서 <평택시민신문>은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주한미군기지 건설에 따른 지역사 차원의 주둔역사를 정립하고, 미군과의 바람직한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미군 평택주둔 약사 및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책에는 평택의 각계 전문가들과 대학교수들이 참여해 평택지역의 외국군 주둔 역사와 미군주둔이 평택인의 생활과 삶에 미친 영향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더불어 주한미군 평택시대에 대처해야 할 지역사회의 과제 등 평택시민에게 주어진 미래의 과제를 살펴보는 내용도 담겼다. 주한미군 평택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시점에 지역사 차원의 미군 주둔 역사를 이해하고, 한미양국의 이질감을 줄이고 새로운 공동체 문화 조성에 기여하기 위해 <평택시민신문>은 해당 도서의 내용을 지면으로 소개한다.

이번 글은 우대식 시인의 '박석수론'을 싣는다.

 

“15불에 몸을 팔아야 하는 심청이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끝내 연꽃으로 환생할 수 없는 아픔을 이 시는 보여준다”

 

박석수

[평택시민신문]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그는 다시 시를 쓰게 된다. 이제 시도 그 내용 첫 시집과 달리 쑥고개의 수난사를 정면으로 다루며 관찰자의 시점에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이해 갔던 것이다. 1983년 11월 5일 두 번 째 시집 『방화』가 출판되었다. 시집 머리글 말미에 “아아, 세상이 깜짝 놀랄 것이라고 못난 자식 말만 믿고 『술래의 노래』를 낼 때 빚을 얻어 주신 어머님의 임종 앞에 이 못난 자식의 눈물대신 『방화』가 놓여지길 희망한다”고 적고 있다. 그가 첫 시집 이후 시를 쓰지 않아도 좋다고 쓴 적이 있지만  『방화』의 머리글을 보면 시에 대한 치열한 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스스로의 처음 생각을 배반하면서까지 이처럼 다시 두 번째 詩集 『放火』를 묶게 된 이유는 혀를 깨물며 『술래의 노래』를 찢어버려서가 아니라, 찢어진 그 詩集 속에 참혹하게 누워 있는 내 영혼의 불꽃이 채 사그러지지 않았음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시에 대한 영혼의 불꽃이 그의 내면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박석수의 일생

1985년 직장에서 쓰러져 잡지 생활 12년을 청산하고 충남 당진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서울 생활을 잠시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일상생활이 그리 행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두 번의 결혼 생활이 바로 그것이다. 방황으로 거듭되던 젊은 시절의 첫 여인과 그는 헤어졌다. 아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쓰러져 충남 당진으로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갔을 때는 이미 두 번째 부인과 동행을 했던 것이다. 아동 문학가 손진동 시인은 고향인 당진으로 다니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영랑사라는 절에서 박석수 시인을 만나게 되고 일건의 제의를 받게 된다. 『대한유도학교 10년사』를 함께 쓰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손진동 시인은 절집 요사체에서 박석수 시인의 달변인 문단 언저리 얘기를 귀를 열어놓고 들으면서 시간을 죽여 나갔다고 했다. 3개월 정도 함께 절집 생활을 하면서 박석수 시인은 일보다 술을 찾는 날이 많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는 몸도 몸이었거니와 아마 마음을 쉬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해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외로운 증언」을 『소설문학』에 발표한다.
1987년은 그에게 기억할만한 해였다. 1년 8개월을 쉬면서 많은 것을 정리하고 생각할 수 있었으며 2월 1일 상경해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에 입학하였고 시집 『방화』가 <미국의회도서관>에 비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특히 작품의 생산 면에서는 획기적인 한 해였다. 중편 「동거인」(『소설문학』), 단편 「거울」(『현대문학』), 중편 「우렁이와 거머리」(『한국문학』), 중편 「설행」(『월간문학』) 등 중단편을 쏟아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시집 『쑥고개』를 상자하였다.


치열한 고발정신이 담긴 시

시집 『쑥고개』의 해설에서 이윤택 시인은 다음과 같이 박석수 시인의 시세계를 논하고 있다.

 필자는 이를 절망의 늪에서 간구하는 상상력 사냥이란 말로 표현하고 싶다. 박석수는 자신과 이웃을 싸고 있는 쑥고개의 척박한 기억에 ‘이미지’의 누공을 뚫는다. 여기서 박석수가 기대하는 것은 척박한 삶 자체가 아니라, 척박한 삶의 쓰레기더미에서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직관의 맥류’ 바로 그것이다. 이 점에서 박석수의 『쑥고개』는 김명인의 『동두천』과 구별되고 여타의 70년대 이후 기지촌 소재 민중시와 구별된다.

기지촌의 부조리한 삶의 국면들이 정점에 있었을 때 김명인의 시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에 방점을 찍지만 박석수의 문학은 치열한 고발정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이윤택의 구별은 보다 명백해진다. 이러한 평가는 쑥고개 연작을 꼼꼼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예를 들어 「축-쑥고개·24」나 「걸레-쑥고개·25」와 같은 작품을 보면 쑥고개의 척박한 삶을 그대로 쏟아놓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 이미지로 시를 형상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림받은 목숨 하나/ 몰릴 때까지 몰리다가/ 연기처럼 하늘로/ 떠 올라가/ 구름이 된다./ 구름이 되어서도/ 끝끝내 축으로만/ 몰리다가 자결,/ 노을이 된다’와 같은 시구들은 쑥고개의 구체적 상황에서 이끌어 낸 낭자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쑥고개의 수난사

1987년 발행된 박석수의 시집  『쑥고개』는 송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기지촌 모순과 비극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보고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무지개가 잠깐 보였어.
거미줄에 걸려 필사의 몸부림을 치는
한 마리 잠자리의 날개빛에 어린
내 영혼의 넓이를 잴 수 있었네.
허물어진 담벽 사이로 보이는
핏빛 하늘엔
굶주린 구름의 일가(一家)가
마지막 혓바닥을 길게 빼물고
죽어 버렸고
거미는 네 쌍의 긴 발을 교묘히 움직여
마침내는
하나의 슬픔을 완벽히 가두고 있었지.
아, 무지개가 보고 싶어.

                        (「소묘-쑥고개·19」전문)

 

박석수의 많은 시편들은 쑥고개라고 하는 기지촌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들의 척박한 삶을 그대로 쏟아놓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을 딛고 일어선 낭자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이 시는 잘 보여준다. 거미의 교묘한 발은 하나의 메타포로서 작용하며 필사의 몸부림을 치는 잠자리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이다. 구름의 일가마저 죽어버렸다는 비극적 상황은 절체절명의 세계 인식을 보여준다. “하나의 슬픔을 완벽히”가두고 있는 거미와 “무지개가 보고 싶”다고 절규하는 잠자리 사이의 긴장은 박석수가 기지촌에서 마주친 실존의 비극을 선명한 이미지로 형상화한 결과이다. 또한 “버림받은 목숨 하나 / 몰릴 때까지 몰리다가 / 연기처럼 하늘로 / 떠 올라가/ 구름이 된다. / 구름이 되어서도 / 끝끝내 축으로만 / 몰리다가 자결, / 노을이 된다”(「축-쑥고개·24)」부분)와 같은 시구들은 쑥고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끌어 낸 직관의 상상력이라 할만하다. 


    
미군에게 세 번
소박맞고 다시 미군홀에서
퇴역으로 눈칫밥 먹고 있다는 정순이,
양계장하다 망한 해병대 출신
털보는 진일이와 함께 요즘
k55 비행장에 노가다로 나가고 있고,
목천에서 농사짓던
영농후계자 금영이는
새파랗게 젊은 처자식을 남겨두고
허망하게 죽었는데,
무명의 조각가 조순조는
집도 없이 직장도 없이 이 악물고
조각칼로 자신의 살점을 후비듯
쑥고개의 어둠을 파내고 있는데,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분노를 키우고 있는데……

                    (「조각칼-쑥고개·38」 부분)

 

 그가 전해 듣는 고향 소식은 척박하기 짝이 없었다. 6·25 전쟁 후 미군의 공군기지는 확장에 확장을 거듭했다. 6·25 직후에 미군의 헬기장은 현재 오산 공설 운동장 부근에 있었다. 더 큰 규모의 비행기장과 활주로가 필요해지게 되자 송탄 즉 쑥고개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일반인들은 오산 비행기장으로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군 자신들도 오산 에어 베이스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미군에게 이곳이 오산이든 송탄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정순이’와 ‘털보’, ‘진일이’의 삶은 박석수 시인이 해석한 쑥고개의 지형도이다. 송탄의 원래 지명은 숯고개이다.
유난히 소나무가 많았던 이곳에서는 숯을 구워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숯고개가 쑥고개로 발음되면서 일반화되는 듯싶었지만 미군의 진주와 함께 기지촌 특유의 저속한 대칭 명사인 씹고개라는 말이 오가면서 서둘러 송탄이라는 지명으로 바꾸었다. 1954년 미군이 주둔하며 백팔십만 평의 땅을 보상도 없이 송두리째 빼앗긴 기지촌 사람들의 삶이란 이렇듯 힘들고도 조악한 것이었다.
‘무명의 조각가 조순조’야말로 쑥고개의 어둠과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가난한 예술가였던 것이다.
 
헐벗은 우리의 가슴에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기 위하여

인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양키들의 털부숭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누이야.

네 몸과 바꾼 15불의 화대로도
애비들의 눈은
띄어지지 않는다.

아름다운 연꽃은
끝끝내
피어나지 않는다.

내의(內衣) 껴입을수록 더 추워지는
이 겨울을
맨 정신으로 살아내기 위하여,

눈 부릅뜰수록 더 어두워지는
이 세상을
좀더 바로보기 위하여

인당수보다 더 깊고 깊은
수렁 속에 던져진
우리들 마지막 기다림 하나.

                      (「심청을 위하여-쑥고개․1」전문)

심청전을 인유한 이 작품은 당대 송탄의 현실을 사실적이고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15불의 화대에 몸을 팔아야 하는 수많은 심청이들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끝내 연꽃으로 환생할 수 없는 아픔을 이 시는 보여준다. 또한 그 행위를 통하여 애비의 눈도 뜨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비애의 감정 외에 무엇이 남겠는가? 이러한 상황을 그는 ‘겨울’이라 말하고 있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맨 정신’이야말로 그가 대면한 세상에 대한 투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인당수로 들어간 심청을 기다리고야 말겠다는 인고의 정신 속에 박석수 시인의 시정신도 오롯이 담겨있는 것이다. “눈이의 눈물은 피가 되었다. / 철수하는 미군의 가슴이나 / 태평양이나 아메리카로도 / 닦여지지 않는 / 누이의 눈물은 피가 되었다. / 십자가에 못박힌 한반도의 / 가장 참혹한 노을이 되었다.”(「노을-쑥고개․4」). 「沈淸을 위하여-쑥고개․1」이 심청과 애비의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면 「노을-쑥고개․4」는 십자가와 한반도라는 보다 포괄적인 비유로 쑥고개의 수난을 증언하고 있다.

평택에서 박석수 시인의 문학 정신을 널리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회가 2017년 9월 창립돼 박 시인에 대한 재조명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박석수기념사업회 창립기념식 후 가진 관계자들의 기념촬영.
글: 우대식 시인

※다음호 ‘두 겹의 철조망 속에서의 외로운 증언(박석수론) 하_한국문학의 중견작가 박석수’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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