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음을 묻다 - 김승섭지음 동아시아(2017)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 303쪽

 

이수경 평택시립배다리도서관운영팀장

[평택시민신문] 저자는 자신의 소개글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의 책임”이라고 적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할 문장이 가슴을 울린다면 우리 사회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김승섭은『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쓴 이유가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고민”의 결과라고 말한다. 우리는 적당히 운동하고 좋은 것을 가려먹으면 질병과 상관없을 것이라 여긴다. 누군가 아프면 무의식적으로 개인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질병을 의지나 노력의 문제로 환원하면 그것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는 태도다.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는지”를 연구하는 저자는 “소방공무원, 세월호 생존 학생, 성소수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만나고 그들의 건강에 관해 연구”하며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 더 약한 사람들이 더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더 자주 아프”다는 것을 통계와 연구 자료로 증명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개인의 ‘고통’은 개인을 넘어 한 사회가 살만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가 개인의 건강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로세토 마을에서만 심장병 사망률이 낮은 이유”를 통해 들고 있다. 30여 년간의 연구로 미국의 이탈리아 이민자 마을 로세토가 인근 지역보다 심장병 사망률이 낮은 이유를 공동체적 돌봄으로 설명한다. 개인이 위험한

환경에 처했을 때 공동체가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이 사망률을 낮춘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1960년대부터 로세타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인근 지역과 비슷한 사망률을 갖게 되었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존재’에 대한 사회의 ‘존중’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해야하는지를 말한다. 개인의 ‘고통’은 사회의 작동 방식에 따라 증가할 수도, 해소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해 개인과 한 사회의 태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다가오는 노년을 생각하니『딸에 대하여』가 떠오른다. 60대 요양보호사가 돌보는 젠은 젊은 시절 헌신적인 사회 활동가였지만 이제 한낱 치매노인일 뿐이다. 치매 노인의 기저귀 한 장이 상징하는 일상의 작은 일이 존재에 대한 ‘모멸감’으로 작동한다. 60대 할머니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혐오와 배제’가 결코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이해할 수 없어 받아들일 수 없었던 딸의 삶을 다시 생각한다.

세상일이라니. 자신과 무관한 일은 죄다 세상일이고 그래서 안 보이는 데로 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그 말이 맘에 들지 않는다. 저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저렇게 말하겠지. 제 자식들에게도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하겠지. 그러면 그 자식들이 그들의 자식들에게 또 그렇게 말하게 되겠지. 그런 식으로 세상일이라고 멀리 치워 버릴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둘씩 만들어지는 거겠지. 한두 사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 단단하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거겠지.―『딸에 대하여』.김혜진.민음사. 216쪽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딸에 대하여』는 묘하게 닮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한두 사람으로는 절대 바꿀 수 없는 크고 단단하고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뭔가가 만들어지는” 사회가 살만하려면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 어야 한다. 그 아름다운 사회 속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과 행동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통계수치로, 때로는 사람과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묵직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민자 등 여러 담론을 품고 있다. 여러 목소리가 혼재할 때 누군가 불편할 수 있는 말, 행동을 돌아보는 나의 한 순간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일 수 있다.

 

이수경 평택시립배다리도서관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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