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삼 비전고 수석교사

"공부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동물과 다른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임종삼 비전고 수석교사

[평택시민신문] 지난 7월, 방학을 며칠 앞두고 여유가 생긴 수업 시간을 빌려 ‘공부’를 주제로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공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주고 요즘 교실 수업에서 유행하는 비주얼 씽킹(visual thinking) 활동지로 그림을 그려보게도 했다. 그리고 물었다. “왜 공부하는가?” 우리가 애써 배워야 하는 이유를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좋은 대학 가려고요.”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하잖아요.” “돈 많이 벌려고요.” 표현은 약간씩 달라도 첫 번째 부류의 답변은 이렇게 3가지로 요약된다.

씁쓸하지만 솔직하고 현실적인 답변이다. 엄밀히 말해 공부가 돈과 권력을 보장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아이들에게 그런 답안을 만들어주었다. 문제는 두 번째 부류의 답변에서 심각해진다. “엄마가 하라니까요!” “다른 애들도 하니까 해야죠!” “그냥요!” “몰라요!” 왜 이런 걸 왜 물어보느냐는 듯 짜증 섞인 표정과 불만을 보이기도 했다. 예상된 반응이고 이해도 간다.

그런데 두 부류의 답변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 내가 빠져 있는 공부다. 공부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공부철학 없이 외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에 빠져 공부를 하고 있고, 더 많은 학생들은 아예 공부하는 목적을 모르고 있다. 어쩌면 우리 교육의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최근 학교현장, 특히 교실 수업에서 겪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공부철학의 부재에서 생겨난 문제로 이해될 수 있다.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공부철학을 만들지 못한 학생들이다. 사실 공부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공부철학이 필요할까?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배움을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각자의 사유(思惟)와 성찰(省察)에서 얻어질 내용이다. 다만 자신만의 공부철학 세우기에 도움을 주기 위해 다음 내용을 소개한다.

우리는 왜 공부하는가? 먼저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배움은 반드시 가르침을 전제로 한다. 내가 새롭게 깨우친 지식과 기능은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누군가를 가르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존재하고 역사가 만들어진다. 공부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우리는 동물과 다른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배움이 있어야 자녀를 건강하게 길러 내고 가족과 소통하며 다른 사람과 만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우리가 배움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결국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잘 가르치기 위해 우리는 제대로 배워야 하고 많이 공부해야 한다.

왜 공부하는가? 또 하나의 공부철학은 자유롭기 위함이다. 내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모르면 불편하다.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있으면 마음과 행동에 제약이 따른다. 그 일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고 남 앞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작 공부해 두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래서 공부가 따르지 않으면 주어진 기회는 사라진다.

설령 행운이 따랐다 해도 그 성공과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결국,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은 내 생활을 자유롭게 가꾸기 위함이다. 종속적이지 않은 삶, 무언가에 얽매이지 않는 당당함은 앎의 경지에서 나온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깊은 공부가 자신에게 더 많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수업을 끝내며 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공부 하나로 세계를 놀라게 한 재미교포 2세 이형진의 공부철학이다.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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