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민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1,2」를 읽고

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평택시민신문] 네루(1889~1964)는 인도의 독립의 어머니쯤 된다. 2차 대전 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에는 초대 인도 총리를 지냈다. 명문가 출신으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했고 변호사로 활동한 최고 스펙의 인물이다. 전도양양했던 네루의 삶을 크게 변화시킨 것은 간디와의 만남이다. 1919년 간디를 만난 뒤 그는 독립투사가 되었다. 성품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이었던 탓에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 나중에는 부인과 아버지마저 감옥에 갇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장 걱정되는 것은 자녀교육이었다. 1930년 병든 부인과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네루는 집에 홀로 남은 13세의 딸 인디라를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편지는 네루가 출옥했던 1933년까지 196회에 걸쳐 계속되었다. 네루의 편지는 일상적 안부편지와는 달랐다. 사춘기의 딸에게 인도와 세계역사를 통해 역사를 보는 안목과 세계관, 가치관을 깨닫게 하려는 목적이 뚜렷했다. 이렇게 주고받은 편지는 나중에 「세계사 편력」이라는 제목으로 엮여 딸 인디라 뿐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필독서가 되었으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인디라는 간디의 아들과 결혼했고 나중에 인도 총리가 되었다.

1980년대 대학생활을 하면서 세상을 삐딱하게 보는 습관이 생겼다. 기성세대의 보수적 가치관과 세계관은 청산 대상으로 치부했다. 그 때의 습관 때문인지 청년시절에는 ‘거꾸로 보기’나 ‘다시보기’에 눈길을 많이 주었다. 1988년에 초판된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젊은 시절에 영향을 받은 책 가운데 하나다. 순전히 유시민이라는 인물에 대한 신뢰와 ‘거꾸로’라는 단어에 꽂혀 구입한 이 책에서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중국 공산당과 대장정, 히틀러와 전체주의의 문제점, 프랑스 최고의 지성 에밀 졸라의 용기 있는 행동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먹고 전공과목에 몰두하면서 세상을 비틀어 보려는 책들과는 점점 멀어졌다. 단편적 정보만으로는 지적 욕구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8 평택시 한 책 읽기 도서선정’ 과정에서 김형민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 1,2」를 읽게 되었다. 방송국 PD였던 저자가 <시사in>이라는 잡지에 딸에게 이야기하듯 기고한 이 책은 동기와 서술방식에서 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닮았다. 목차를 빼꼭하게 채운 소주제들에서 풍기는 문제의식도 「세계사 편력」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굳이 다른 점을 말하라면 네루는 인도 사람이고 김형민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네루는 ‘세계사를 통해 인도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서술했다면, 김형민은 ‘한국현대사를 통해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었다는 차이 뿐이다.

필자에게도 대학교 3학년짜리 딸이 있다. 그 밑으로는 고등학생 아들도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필자도 네루처럼 역사로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르치고 싶었다. 세월호 사건과 촛불시위가 있을 때는 함께 현장에 달려가고 토론하고 싶었다. 하지만 필자는 결과적으로 네루가 되는 데 실패했다. 아이들은 혹여 역사 이야기를 꺼내면 잽싸게 회피했고 역사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이라도 하면 지나치게 편협하다고 비난을 받았다. 역사서의 가장 큰 미덕은 ‘과거로부터 배운다.’는 점일 것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과거사를 공부하다보면 삶의 롤 모델이 생기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진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김형민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이야기」는 역사서의 미덕을 고루 갖췄다. 짧지만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 뒷담화 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리고 선명한 역사의식이 살아 있는 좋은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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