섶길 _ 권혁철 송탄장로교회 목사

[평택시민신문]

열기 쏟아지는 아프리카 북단의 사하라 사막
만년설에 뒤덮인 알프스의 봉우리들
상인들의 거친 숨결이 잠들어 있는 베니스의 수상 골목
모든 길이 시작되는 로마의 광장
전설이 살아있는 산타루치아 미항
달에서도 보인다는 만리장성의 누각
중앙아시아의 복판 텐진 산맥
이집트 가자지구의 피라밋
대영, 르브루, 시스티나 세계 3대 박물관
대서양의 안개가 자욱한 런던 브릿지
근대사를 뒤바꾼 파리의 혁명광장
3대 종교의 발상지 예루살렘 성
기암괴석의 절경 페트라
검은 황금이 분출하고 있는 중동의 카타르
광활한 가파도기아의 기암괴석
수도사들의 고행이 깃든 메떼오라
민주 정치의 발상지 아테네
절제의 미를 보여주는 스파르타
가는 곳 마다 아름답고 놀랍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정경과 풍경에 맞지 않게 예외 없이 가난에 찌들고
시대의 중심에서 빗겨간 남루한 자들이 하루를 구걸하고 있었다.
허리 굽은 백발성성한 노인.
조막손을 펼쳐든 어린 아이.
간난 아이를 들쳐 업은 여인.
그들 모두는 비굴한 웃음과 연민의 눈망울을 굴리며
1달러의 온정을 구하며 조잡한 기념품을 흔들고 있었다.

섶길에서 촬영한 권혁철 목사와 아들들

아! 나는 무엇을 보려고 머나먼 길을 찾아다녔던가?

찬란한 문명이요 대자연의 웅장함이요 심오한 종교적 심성 아니었던가?

그리고 젊음의 방황 속에서 바른 인생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어디에나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이 먼저 보였다.

약간의 여유를 갖고 조금만 나누면..., 조금만 비우면..., 조금만 베풀면 될 텐데.

늦둥이로 얻은 세 아들과 함께 나는 자주 섶길을 찾는다.

길 그대로의 길에 푯말과 인식표만 해 놓은 섶길,

사라져 가는 아버지 시대의 문화와 풍경을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는 섶 길,

더위와 추위, 바람과 먼지를 뚫고 전지하는 길,

실개천이 흐르는 넓은 들판으로 벼가 익어가고 온갖 꽃들이 반기는 길,

구릉 여기저기로 오랜 세월을 짊어지고 쇠락해가는 마을들에서 고향을 느끼는 길,

시커멓게 그을린 촌 노들을 만나 정겹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길,

사납게 짖어대는 개에게 잠깐 놀라 혼비백산하고도 깔깔 대는 길,

악취 나는 거름 냄새를 고향 냄새라고 설득시켜 향기로 승화시키는 길,

물이 떨어지면 적당한 집에 들어가 물을 구하고 덤으로 간식까지 안겨주는 인심이 살아 있는 길, 때론 방향을 잃어 한 참을 헤맨 끝에 다시 서는 길,

속도 보다는 여유를, 목표 보다는 행복을 향해 나가는 길,

난 섶길을 열린 교실 삼아 내 아들들에게 인생을 가르친다.

섶길 12구간 중, 모두가 함께 걷는 배꽃 만발한 과수원 길

4부자가 호젓하게 걷는 것도 좋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생경한 사람들과 함께 걸음도 좋다. 쉬어가는 곳에서 맛 좋은 ‘신고 배’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신고 배꽃에는 꿀이 들어있지 않아 향기가 없어 벌과 나비가 찾지 않는단다.

그래서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암술과 수술을 만나게 해 줘야만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꿀이 없는 꽃으로 시작하여 벌과 나비에게 천대 받지만 결국 신고 배는 꿀이 가득한 최고의 배가 되는 것이다.

신고배의 이야기가 애잔하게 느껴짐은 꼭 섶 길의 현주소 같기 때문인가 보다.

이 아름답고 행복한 섶 길의 가치를 대부분은 잘 모른다.

섶 길은 꿀이 가득하다.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사람이 있고 자연이라는 갖은 향기를 가진 꿀이 있다. 그러나 ‘돈’ 이라는 꿀만을 좇는 사람 벌과 사람 나비들에게는 전혀 향취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세 아들과 함께 섶 길에서 마음껏 꿀을 따며 두고두고 그리운 추억을 만든다. 젊은 날, 꿀을 찾아 고독하게 떠난 수많았던 길에서 따지 못한 꿀을 나는 우리 아들들과 섶 길에서 따고 있다.

오늘은 날머리에서 섶 길 추진 위원회가 준비한 바로 슬픈 사연을 담은 ‘신고배’로 갈하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생각지 못한 시원하고 달콤함에 기뻐하는 내 아들들이 작은 배려, 작은 섬김, 작은 나눔으로 행복하게 되는 삶을 배웠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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