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_ 우순덕 대표 사단법인 햇살사회복지회

“법원은 미군 ‘위안부’ 관리 국가 책임 인정

이제 기지촌 할머니들의 주거와 생계 지원

위한 조례 제정에 평택시가 먼저 나서길“

 

우순덕 사단법인 햇살사회복지회 대표

[평택시민신문] 2002년 경기도 평택시 안정리에 반지하방을 빌려 ‘햇살사회복지회’를 열고 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처음 만나 매주 화요일 공동식사도 하고 정서함양 모임도 한 지 어느 덧 16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할머니들을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이것저것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했다.

2008년에는 <경기도 기지촌 여성노인 실태조사> 및 정책 토론회를 하였고, 2012년부터는 연출가 노지향 선생이 우리 할머니들이 직접 연극배우가 되어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 할머니들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연기한 연극 <숙자 이야기>는 2013년 서울변방연극제 개막작에 초청되는 등 모두 4번이나 공연하였다.

대학로의 연극 배우들이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재현하기도 했다. 연극 <일곱집매>(작: 이양구, 연출: 문삼화)는 2013년 서울 대학로에서 두 달 동안 공연되면서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안정리 바깥 세상에 알렸다. 그해 가을에는 평화박물관 SPACE 99(서울 종로구)에서 한 달 동안 사진 전시회(이성주·서현경 작)도 열렸다. 2015년에는 썬샤인 (SUNSHINE) 합창공연(강사: 유성숙 선생)도 했다. 2016년 가을에는 우리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들었다. 2016년 10월 31일에 평택의 기쁜교회에서 초연하였던 뮤지컬 『그대 있는 곳까지』(유성숙 음악감독, 이양구 구성·연출)는 2017년 9월 12일에 서울 대방역 여성플라자에서 재공연 되었다. 400명이 넘는 관객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햇살 할머니들의 뮤지컬 연습과정이 KBS 스페셜 전쟁과 여성 3부에서 보도 되었고(8.24) 김숙자 할머니의 인터뷰는 jtbc 소셜라이브에 방송을 타고 나갔다. 양색시·양공주라고 질시 받던 우리 할머니들을 사람들은 우리 안의 ‘위안부’라고 불렀다. 우리 할머니들이 양공주에서 ‘위안부’로 불리기까지 오는 시간은 참으로 길고도 멀었다.

우리 할머니들을 양공주 대신 ‘위안부’라고 다시 불러준 것은 대한민국 법원이었다. 햇살은 한국 내 기지촌 할머니 122명과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국가배상소송공동변호인단(30여 명), 두레방, 새움터 외 타 단체와 연대하여 2014년 6월 25일 <한국 내 기지촌 미군 위안부 국가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다. 대한민국 법원은 1심 판결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기지촌을 특정지역으로 분류하여 관리하면서 특구관광시설 업체(미군위안시설)을 지정하여 면세 주류를 제공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미군 등으로 한미합동위원회를 설치하고 1997년부터는 기지촌 특정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한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낙검수용소(몽키하우스)에 격리 수용하여 성병을 치료한 것이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대한민국 2심 법원은 2018년 2월 8일 한 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기지촌 위안부의 인격 자체를 국가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고 판결했다. 대한민국이 미군 ‘위안부’를 한미동맹과 외화획득을 위한 도구로 운영, 관리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고등법원은 우리 할머니들이 젊은 날 국가기관에 의해 불법 수용돼 부적절한 치료를 받고, 성매매 정당화·조장 행위로 인해 정신적 피해는 물론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한 마디로 고등법원은 한미 군사동맹과 외화 벌이를 위해서 우리 할머니들에게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입혔다고 본 것이다.

한미 동맹 관계 속에서 기지촌 여성의 성이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 연구했던 캐서린 H. S. 문은 『동맹속의 섹스』에서 한때 기지촌 여성들이 기지촌에서 벌어들인 외화 수입은 국민총생산의 25%를 차지했고, 평택 지역 경제의 60% 이상을 부양했다고 한다.

한때 민간외교관 달러벌이 역군이라 칭송받으며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로 일했던 젊은 양공주들은 지금은 늙고 병들어 외롭게 쪽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때 달러벌이 도구로 마음껏 써먹었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그들의 삶을 돌보아야 할 때이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더는 일일 것이다. 당장 급한 대로 우리 할머니들의 주거와 생계를 지원할 수 있는 조례를 평택시가 먼저 나서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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