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표현한 예술에 대한 열정

시민들과 어우러지는 예술문화 꿈 꿔

[평택시민신문] 도자기는 흙으로 빚어서 만든 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흙의 종류, 온도의 변화, 유약 여부에 따라 자기, 옹기, 도기 등으로 나눠지지만 근본은 같다. 도조(陶彫)라는 것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법으로 만든 조각품을 지칭한다. 인문영(63) 도조작가는 흙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한다.

“원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됐기 때문에 늘 그림을 그리고 생각하면서 독학을 했죠. 직장에 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가 6월 항쟁과 노동쟁의가 사회 전반에 분출되던 80년대 말이었어요. 그때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탄압을 받았고 대자보 등에 그림을 그리면서 투쟁현장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후 그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새롭게 만난 것이 도자기예요.”

송탄에 있는 인 작가의 작업실과 바로 옆 비닐하우스에는 작은 토우부터 사람 크기의 조각까지 20여 년 넘게 만들어온 그의 작품들이 진열돼있다. 그야말로 거대한 전시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한눈에 작가로써 성공했다는 인상을 줄 만큼 좋은 작업‧전시환경이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먹고 살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개 그렇지 못해요. 직장에서 나오게 된 이후 도자기를 만들면서 생계수단으로 화원을 경영하기 시작했어요. 도조 작업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8시까지 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아침 9시에 잠을 자고 그날 정오에 일어나 그림을 그렸죠.”

그는 작품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빼면 자신이 없다고 말할 정도의 그런 삶을 살았다. 25년 동안 경영해왔던 화원은 2년 전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새벽 4시에 일어난다고 한다.

“뭘 하지 않으면 불안한데 일중독인 것 같아요. 요즘 빈부격차가 커지다보니 잘 살고 못 사는 부분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놔야하는데 놓을 수 없는 욕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요.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고, 버리지 못하고 움켜쥐는 속성을 버리고 싶습니다.”

무소유를 지향할 때 자신이 가진 물질들은 구속이 된다. 구속은 그가 이제까지 거듭 천착해왔던 주제이기도 하다. 거품처럼 수많은 구멍에 둘러싸인 인체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구멍은 인간을 옥죄는 구속과 굴레를 표현하고, 이는 빈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공기와 시간 같은 불가항력까지도 포함한다. 작품의 인간들은 굴레에 안주하고 있기도 하고 벗어나려 몸부림치고 있기도 하다.

인 작가가 가장 자기다운 작품이라고 꼽는 것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진 장승이다. 장승은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기둥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마을 또는 절 입구에 세워둔 전통 조각의 하나이다.

“장승을 보면서 과감한 생략, 과장법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피카소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는데 너무 과소평가된 게 아닌가 싶어요. 작품을 보면 작가의 자기가 드러나는데 저는 장승 속에서 가장 저다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는 인생의 경험과 시기별로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아이들과 아내의 얼굴이 아버지의 얼굴 위에 겹겹이 쌓아올려진 가족시리즈는 직장을 잃었을 때의 막막한 기분을 표현했다. 그는 가장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 암울한 삶의 무게가 지구보다 더 무거웠을 때가 있었다고 말한다. 지금은 항아리 위에 토우를 붙여 구워내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토우는 흙으로 만드는 작은 인형으로 신라 토기들과 부장품에서 자주 발견된다.

“처음 도자기를 시작할 때 토우를 많이 만들었어요. 그림을 그릴 때는 자아에 대해 생각하고 사회적 현상을 고민했는데, 도조를 하면서는 흙을 주물러서 논다는 기분을 가지고 했고 지금도 그런 기분으로 작품을 만듭니다.”

그래서인지 뭘 만들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고 한다. 작은 조각은 물론 큰 조각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밑그림도 없이 흙을 주물러서 형상을 만들어간다.

“온전히 작품에 시간을 쏟는 지금이 예전보다 더 구속된 듯이 느껴지기도 하고 그 구속이 약간은 즐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토우를 만들고, 비닐하우스의 바닥을 쓸면서 허브향기를 맡고 새벽 꿩이 우는 소리에 평화로움을 느낄 때가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일과 병행하며 치열하게 작품에 열정을 쏟아낸 그는 지금 행복한 작가다. 다만 고민하는 것은 일반 시민들과 어떻게 예술문화를 함께 하느냐는 것이다.

“작품을 보려면 미술관에 가야하고 티켓도 사야하죠. 이것이 일반과 동떨어지고 기득권 문화가 된다고도 느꼈어요. 예술이 특별한 것이 아닌, 대중과 호흡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열린 전시 공간인 대안공간 루트에서 작품을 전시하며 시민을 만나기도 하고, 민예총 등의 예술협회 활동을 통해 재능기부, 벽화 그리기 등의 문화운동을 활발히 주도‧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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