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책 하나되는 평택, 연중 릴레이기고 1

김종만 평택시립도서관장

[평택시민신문]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가?

「 회색인간」의 도입부다. 소설은 인간의 이기심앞에서 문화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적나라 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듯한 절망의 순간에, 인간이기를 포기한 극한의 상황을 이기는 힘은 결국은 인간다움의 회복임을 보여준다. 회색의 인간들은 노래하는 여인이 나타났을 때 그림을 그리는 청년이 나타났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누군가가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회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는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유일한 희망인 ‘벽너머 세상’을 찾아나선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어미와 함께 길을 떠났던 소녀는 어미도 세상을 떠나자 홀로 배고픔을 참아가며 벽앞에 당도했다.

무리와 함께 길을 떠났던 소년은 벽너머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되자 무리의 남은 식량을 모두 훔쳐서 무리를 떠났다. 곧 소년도 벽앞에 도착했다.

벽너머 세상도 사정이 좋지는 않아 소년과 소녀중 한명만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모니터 너머로 둘을 지켜보았다. 소년과 소녀는 마침내 벽에 도착했지만 아무리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배가 고팠다. 둘은 서로를 경계했고 자신이 가진 비상식량을 떠올리자 서로가 더 불편해졌다. 소년에게는 콩 통조림이 하나 남았고 소녀에게는 초코바가 있었다. 죽어가던 어미가 남겨준 초코바였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않고 자신의 생일인 바로 내일에 먹으려고 남겨두었던 것이다. 결국 소녀가 품을 뒤져 초코바를 꺼낸 뒤 반으로 갈라 소년과 나누어 먹었다

소녀는 어미를 떠올리며 초코바를 쉽사리 삼키지도 못하고 경건해 보일 정도로 천천히 먹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지켜보던 벽너머 어른의 대표는 소년을 받아 들이기도 결정했다. 소녀의 죄목은 초코바 봉지 즉 쓰레기 무단 투기였던 것이다. 그들은 초코바를 나누는 선행을 베푼 소녀가 아니라 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소년을 구제했을까?

지난 4월 7일 있었던 한책 선포식에서 청중이 작가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글을 쓰던 당시 한 사건의 기사를 보고 우리가 맹신하는 기준이 때로는 얼마나 부당할 수 있는 지? 권력자가 쉽게 내린 결정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절박한 문제인 지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의 기사는 부모에 대하여 부양책임을 지지 않는 자식이라도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 사각지대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노인에 대한 기사였다고 한다.

작가는 짧은 글들을 통해 인간의 편견과 왜곡, 가식에 대하여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통괘한 한 방을 날린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가 믿었던 것이 얼마나 가변적인지, 때로는 선과 악의 경계가 얼마나 무의미 한 지 꼬집는다. 극한의 상황에서 목숨부지를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몰염치 해 질 수 있는지, 그 몰염치가 어떤 화를 자초하는 지 목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거침없는 이야기 전개와 예측불허의 반전 앞에서도 이 책을 재미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을 마주해야 하는 순간조차도 진정한 인간다움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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