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억한다는 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과 열정을 지니는 기억이며,

진정하게 기억하기란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아픔을 책임과 연대의 사건으로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 시민기자

[평택시민신문] 올봄에도 안산 고잔동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416. 그렇다. 우리가 함께 마주해야 할 네 번째 봄이 왔다. 4월 흐드러진 꽃들은 세월호 참사를 진정으로 기억한다는 게 뭘까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시간이 약’이라고. 또 누군가는 말한다 ‘터널에 끝이 있듯이 슬픔에도 끝이 있다’고.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잃은 이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은 물리적인 시간을 통해서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터널처럼 분명한 ‘끝’으로 매듭짓는 것도 아니다. 그 슬픔은 살아남은 자들이 죽을 때까지 가슴에 품고 살아내야 하는 응어리며 치명적인 상처로 남아있다. 그렇기에 ‘시간은 약’이 될 수 없고 ‘슬픔의 끝’을 만날 수도 없다. 그리하여 ‘이제는 슬픔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몇몇 기득권 세력의 말은, 어쩌면 격려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폭력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일상이 모두 깨어졌기 때문이다.

네 번째 봄을 마주하는 우리에게 세월호를 ‘진정으로 기억한다는 것’과 ‘함께 기억하기’의 의미는 뭘까? 세월호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는 ‘홀로 기억’이 아닌 ‘함께 기억’이 필요하다. 간혹 세월호 참사를 아주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로만 이해하고 기억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광화문의 유가족을 바라보며 슬픈 눈물을 흘린다. 또한 세월호 ‘기억의 숲’에서 조용히 가슴을 묻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 하지만 그 눈물에는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 연대를 만들어내고 책임을 다하는 눈물로 이어지지 않는다. 연대와 책임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홀로 기억’이 가지는 한계이며 함정이기도 하다.

함께 기억한다는 건,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과 열정을 지니는 기억이다. 또한 권력유지와 확장에만 관심이 있고 평범한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방치하는 정치세력에 대한 예리하고 끊임없는 비판으로 이어지는 기억이기도 하다. 그리고 행동하는 기억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는 일회적이거나 사적이고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이며 정치적 사건이며 국가적 참사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를 진정하게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약속 또한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슬픔‘없이’가 아니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슬픔이 우리들의 일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그리고 그 고통과 슬픔이 평범한 시민들에게 어떤 연대의식과 책임을 부여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정하게 기억하기란 ‘함께 기억’하는 것이며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아픔을 책임과 연대의 사건으로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마주하는 네 번째 봄이다. 지역에서 416 함께 기억하는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다. 죽은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 차르르 흘러내리던 딸아이의 검은 머리,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깔깔 웃던 입술, 아들이 동네에서 축구 하고 돌아온 저녁의 땀 냄새... 그 소소하고 일상적 것, 그것을 기억하려 한다. 이 사소한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세월호를 통해 우리는 알게 되었고 모두 함께 기억을 나누려 한다. 416 기억 문화제는 ‘지금 여기’ 이 공간의 사람 냄새와 흙냄새, 바람과 햇볕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우리가 가진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자리이기도 하다. 또한 서로를 위로하며 함께 기억을 만드는 자리다. 함께 기억하는 힘으로 슬픔과 분노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걸 믿는 자리이기도 하다.

기억한다는 건 언제나 ‘둘’에서 시작한다. 이것과 저것이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듯, 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다른 무엇을 만나 둘을 이루고, 열을 이루고, 무한을 이루는 힘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왜냐하면 삶을, 일상을 쇄신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함께 기억하는 봄, 다시 마주하는 네 번째 봄이다.

임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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